<시리즈기획> ‘막노동꾼 이야기’-6회: 조경반장 홍상규 씨

대다수 일용직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술도 기능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노동 현장은 늘 낯설고 두렵다. 매일 새벽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른다. 현장(건설, 토목, 조경 등) 경험이 있는 일용직들에게도, ‘새로운 현장’은 그 경험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반드시 일정 부분 좌절감을 안긴다. 그러니 경험이 일천한 일용직의 좌절감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장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용역사무소에서도 경험자와 무경험자, 현장과의 조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쩌면 일용직 노동자와 각을 세우고 있을 노동 현장, 그리고 그것을 조율해야할 용역사무소. 그 복합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혼돈.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울뚝불뚝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자가 이들(현장, 용역사무소, 일용직노동자)과 마주한 시간은 흥미로웠고 풍요로웠고,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이번 회에는 조경현장 담당자(반장) 홍상규(가명. 64. 이하 홍 반장) 씨의 이야기를 풀어봤다. 조경은 막노동 중에서 수월한 편에 속한다. 특히 자연과 어울려 일하는 속성상 현장 담당자들의 성향도 부드러운 편이다. 도시 건설 현장처럼 고되지도, 일 속도가 빠르지도 않다. 호미로 풀을 벤다거나 나무를 옮겨 심는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막노동꾼이 아닌 농부처럼 비춰지는 이유다. 홍 반장의 성격도 농부처럼 느긋하다. 나무를 심을 때야 힘이 들지, 심어놓고 나면 나무가 스스로 자라주기만을 기다리는 심정. 삽을 든 시간보다 놓고 쉬는 시간이 길다. 때론 그의 현장은 쉬는 시간이 지겨울 정도여서 하루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농땡이’ 반장

새벽 6시 30분경. 용역사무소에서 현장으로 간 노동자들이 한 현장 사무실의 문을 연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라꾸라꾸’ 침대에서 단잠에 빠진 한 노인(?)이 눈을 슬그머니 뜬다. 잠이 덜 깬 건지 술이 덜 깬 건지 알 길이 없다. 정적을 깨고 짧은 멘트가 날아온다.

“음, 어? 왔냐? 커피 먹고 싶은 사람은 커피 먹고….”

그러면서 모자를 다시 눈 위에 덮는다. 매번 똑같은 멘트다. 위아래도 없다. 나이가 많은 노동자가 오든 젊은 노동자가 오든 반말 일색이다. 처음엔 다들 그랬단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 싸가지 없게.”

조경현장은 위성도시 등 주로 대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자리해 있다. 홍 반장의 사무실도 소똥 냄새 물씬 풍기는 어느 시골 컨테이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승용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곳. 그럼에도 기자를 비롯 용역사무소의 많은 동료들은 홍 반장의 현장에 가기를 고대한다. 홍 반장 스스로가 ‘농땡이’이기에.

 

 

그는 자신의 작업 현장까지 트럭을 이용,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달린다. 시속 30킬로 내외. 최대한 현장 출근 시간을 늦추는 셈이다. 때론 현장까지 1시간 가량 걸린다. 작업이 늦게 시작될 수밖에 없다. 대신 퇴근 할 때 그의 운전은 거침이 없다. 시골길에서 시속 100km를 밟는다. “야, 집에 빨리 가자.”

일용직 노동자들의 무덤과 같은 현장이 있는 반면, 홍 반장의 현장은 때론 소풍과 비교될 정도다. 많은 노동자들은 “뭐 이런 현장이 다 있냐”라며 기자에게 “내일도 나 좀 데리고 와주면 안 되느냐”고 ‘읍소’하기에 이른다. 홍 반장과 기자가 꽤 친하게 지내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하게 된 계기는 다름이 아니었다. 홍 반장과 처음 마주한 날, 일을 못한다고 꾸지람을 들었지만 매번 농담으로 받아친 게 호감 요인으로 작용했더랬다.

“일은 못하지만, 얘가 농담도 잘 하고 좀 재밌네. 가뜩이나 고된 일, 네가 옆에 있으니 심심하지는 않다. 일은 내가 다 할 테니 옆에서 웃겨만 다오.”

그 이후 한 때 기자는 그 현장의 붙박이가 되었다. 더구나 홍 반장은 20분 일하고 20분 쉬는 스타일이어서 체력이 ‘저질’인 기자랑 죽이 맞았다.

“반장님, 제가 만약 내부고발자거나 암행어사였으면, 이거 완전 팀 해체 감이네요. 반장님은 불명예 퇴직이고요.”

현장을 감시하는 젊은 상무가 나타나면 일 하는 척하는, 일머리에서는 전형적인 여우다. 그래도 일은 어느 정도 해놓고 ‘먹고 놀고 자기에’ 상무도 홍 반장에게 큰 불만은 없다.

 

‘점심시간만 3시간’ 꿈의 노동

‘먹고 놀고 자는’ 홍 반장의 행보, 여름에는 그 경우가 더욱 심하다. 그에겐 오전 11시가 점심식사 시간이고, 오후 2시가 작업 스타트 시간이다. 점심시간이 무려 3시간에 이르는 셈이다. 물론 현장 총책임자의 눈을 피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늘 일용직 노동자들 앞에서 ‘점심시간 3시간 목표’를 실현시켜왔다.

지난여름 불볕더위 속 홍 반장과 노동자들은 그늘도 없는 고속도로의 가차선 조경 업무를 맡았다. 많은 운전자들은 남천(나무 중 가장 작은 과에 해당)이라는 나무를 고속도로 가차선이나 중앙분리대에서 흔히 마주한다. 양 가차선에는 무수한 남천들이 수놓여 있다. 그런 남천들을 전기톱이나 가위로 잘라야 하는 작업. 바람 한 점 없는 날, 유일한 바람은 고속도로 차량들의 과속에서 비롯되고, 타는 목마름에 모두 울상이 된다. 40년 경험의 홍 반장도 예외가 아니다. 현장 지리에 눈이 밝은 홍 반장이 갑자기 전기톱의 시동을 끈다.

“에라이 모르겠다. 저기 그늘 있네. 다들 저쪽으로 기어들어가자.”

그리고 미리 준비한 아이스박스 속 맥주와 막걸리를 꺼내든다. 맥주 몇 캔을 노동자들과 나눠 마신 홍 반장은 그대로 드러눕는다. 다들 홍 반장의 눈치를 본다. “다들 좀 잤다가 일하자. 왜? 다들 누우라니까, 괜찮아.”

“반장님. 우리야 용역이니 자다가 걸려도 괜찮은데, 반장님이 걱정되어서….”

1시간 쯤 지나자 예상대로 상무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장님 어디세요? 아무리 찾아도 없네.”

홍 반장은 둘러대기에 급급하다. “우리 지금 다른 구간부터 작업하고 있어. 뭐 지금 이리로 온다고?” 전화를 끊은 홍 반장은 곧바로 작업지시를 내린다. “야 지금 새참 들고 온단다. 일하자.”

도착한 상무는 “다들 고생하신다. 좀 쉬었다 하시라”며 새참을 건넨다. 1시간 동안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며 그늘에서 쉬었던 홍 반장과 일용직들은 시치미를 떼며 잔뜩 더위라도 먹은 듯한 연기로 일관한다. 이틀 연속 막노동을 한 적 없다는 한 일용직 노동자가 홍 반장 현장이라면 1년 내내 쉬지 않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이니. “나 이번에 기록이에요. 3일 연속 현장에 나온 적 없거든요.”

 

조경일은 건강 노동

홍 반장은 40년 가까이 조경 일을 해왔다. 조경기사 자격증이 없어도 일을 할 수 있던 시절부터 조경회사 하청업체를 운영했다. 현장의 젊은 상무는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했고, 자격증까지 갖고 있지만 홍 반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막노동은 결국 이론이 아닌 실전이기에 말이다. 때로 홍 반장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제안한다. 자격증 없어도 되니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라고. “일은 내 밑에서 배우면 돼. 자격증 같은 거 필요 없어.”

막노동의 특성상 퇴직시기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건설현장보다 일도 수월해 고령자들도 장기간 노동이 가능하다. 도시의 건설현장처럼 몸 축날 일도 없다. 최근 60세 이상이 조경 자격증 시험을 보는 추세가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홍 반장의 표현처럼 ‘겨울만 되면 배짱이가 된 심정’이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은 겨울에도 일이 많아. 특히 아파트 현장은 꾸준하게 일이 있잖아. 조경의 경우 일은 편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어. 겨울이면 제초작업 할 일도 없지, 산에 나무들이 꽁꽁 얼어서 나무 캘 일도 없지, 나무 심을 일도 없지. 우리보고 흔히 나무장이라고 그러거든. 그런데 나무를 만질 수 없으니 겨울엔 그저 노는 거지. 그래서 봄여름가을철 바짝 벌어놓아야 겨울철 곳간이 유지될 수 있어.”

홍 반장의 자택은 산으로 둘러싸인 전원주택이다. 하우스 농사를 소일거리 삼아 겨울을 난다. 겨울철 돈벌이는 녹록치 않아도, 먹고 사는 데엔 지장이 없다. 자녀들도 출가한 터라 아내와 한적한 시골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조경으로 돈 벌 생각 있으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연락해. 나도 20년은 더 해보려고. 그 동안 내 밑에서 전수받으면 되잖아. 이거 배워두면 돈 돼.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 도시의 건설노동자 생활보다 낫다고. 도시의 건설노동은 지저분하잖아. 조경의 큰 장점은 좋은 공기 마시며 일하는 거잖아. 건강 노동이라고 할 수 있지. 조경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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