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일곱번째 이야기 / 강진수

13.

한참 덜컹거리던 콜렉티보가 잠잠해졌다. 캐나다 친구들이 틀어놓던 시끄러운 록 음악도 여기까지였다. 우리는 좁은 차량을 벗어나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철로가 보이기 시작했고, 트레킹의 시작점인 간이 기차역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마추픽추의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인 아구아스칼리안테스로 가는 기차들이 간이 기차역을 스쳐 지나갔다. 나와 형은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다가도,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철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괴로워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다가도 금세,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진정되곤 했다. 따스한 햇살이 점점 뜨거워져갈 때 즘, 산의 기울기와 강의 흐름, 철길 양 옆에 드리운 정글은 지친 나를 계속 앞으로 이끌어 주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고원의 정글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지칠 때면 우리는 철길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챙겨온 물을 마셨다. 나무 그늘에만 들어서도 금방 서늘해졌고, 또 그 그늘 밖으로 나서면 금방 우리의 몸에서는 땀이 삐질거렸다. 그래도 길 오른편, 시원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다. 강물의 물살은 아주 셌고 거칠었다. 물의 절반이 흙인 것 마냥 누런색의 파도가 강을 휘덮고 있었다. 몇 번씩이나 길을 걷다가 강물의 거친 모습에 놀라고 감탄을 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면 근처까지 겨우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애를 썼다. 내가 살아온 땅과 지구가 전혀 아닌 기분도 들었고, 또 낯선 나라의 낯선 대륙 속에서 정글을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갑자기 이방인이 된 느낌과 더불어 그런 느낌은 모든 것을 새로이 바라보게끔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목표 지점인 아구아스칼리안테스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즘 애석하게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한 시간을 넘게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 걷다보니 철길이 도시로 기어들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비에 흠뻑 젖어 축축해진 옷을 털어내며 마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마을은 작고 아담했으나 처음 그곳에 발을 디딘 나와 형으로서는 길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기도 하고, 경찰서인줄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간 건물에서 경찰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똑같아 보이는 길을 몇 번이고 돌고 돌아, 마을 중심부로 걸어갔을 때에는 탄사가 절로 나왔다. 산봉우리 두 개 사이로 계곡은 폭포를 이뤄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성스러운 요정이 산다고 하는, 그런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마을의 분위기는 그토록 신묘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비에도 젖었고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으므로 숙소를 구하는 일을 먼저 하기로 했다. 광장에서부터 오르막을 한참 오르며 닥치는 대로 호스텔을 들어가 숙박비를 물어보았지만, 터무니없는 금액이 너무 많았다. 빗방울은 거세진 않았지만 이미 지치고 피곤한 우리의 몸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산지라서 오르막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가, 여행객들은 잘 찾지도 않는 골목 구석에 한 숙소를 우리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도미토리만 해도 감사할 텐데, 나쁘지 않은 가격에 투 베드룸을 주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식도 무료라니. 우리는 우리에게 따르는 천운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방에 짐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마추픽추를 보러 가야하므로, 짧은 시간 내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당장 씻지도 못한 채로 트레킹 한 그대로 나와 저녁을 먹을 만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우리는 고민하다가, 이래저래 아구아스칼리안테스를 걸어오며 비싼 기차 값을 아꼈는데 너무 저렴한 것을 먹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기로 하였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화덕 피자를 먹었다. 여행자 마을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음식이나 음료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따뜻한 피자를 먹으며 몸을 쉬게 하였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는 바로 아래에 작은 카페에 들러 와인을 한 잔씩 시켰다. 이름도 종류도 모르는 와인이 가득 적힌 메뉴판, 그것도 스페인어로 적힌 메뉴판을 한참동안 훑어보다가 결국 맨 앞에 있는 와인으로 두 잔 시켰다. 나름의 호사 아닌가. 복잡한 일정에 자금도 많지 않은 여행이지만 우리는 이토록 즐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카페 바로 앞에서 한 밴드가 공연을 했다. 잉카 전통 악기들로 그들은 다양한 음악을 연주했는데, 신나다가도 애절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금방 분위기를 띄워주곤 했다. 그들의 음악이 있었기에 우리의 와인은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었다. 고급 와인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와인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또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와인을 마시고 있는 나와 배경이 되는 카페, 밴드의 공연이 와인을 빛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맛있는 와인이라기보다는, 아름답고 기억에 잘 남는 와인. 남미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 와인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카페에서 밴드의 음악을 듣다가 그들이 모자를 내밀며 팁을 구하자, 내 지갑에서 한국 돈 천원을 꺼내 넣어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그러한 기억들을 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것은, 세월이 지나고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와인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들은 사진에 찍히듯 내 마음 속에서 생동하고 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자마자, 쓰러지듯 우리는 잠에 들었다. 아니, 사실 형은 금세 잘 잤지만, 나는 한동안 잠을 설치며 깨어 있었다. 모든 것이 설렜다. 평생 바라왔던 마추픽추가 내 바로 머리 위에 있고, 나는 낯선 땅 낯선 길을 걸으며 결국에 바라던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고생길을 함께 해준, 나의 형에게 얼마나 감사한가. 하늘에서는 별이 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깊은 정글, 가로등도 꺼진 이 작은 마을에 내가 있을 수 있다니. 나는 내가 별이 되어 산봉우리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떨어지는 순간 주변이 환해졌다. 꿈에서 깨자마자 나는 이불을 개고, 다음의 여행을 기다렸다.

 

14.

조식을 입에 문 채로 새벽부터 달려 나간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가장 먼저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서 사람들은 마추픽추로 가는 전용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한 명씩 차에 오르기 시작한다. 버스가 한 번에 10대 정도 출발하지만 놓치고 나면 또 다음 버스가 오는 걸 기다려야 하므로 줄을 일찍 설수록 좋다. 우리는 아주 운 좋게 아마 다섯 번째 버스를 탔던 것 같다. 버스가 20분 정도 덜컹거리며 정글을 헤집고 산 위로 오른다. 마추픽추를 이제 정말 마주할 시간.

사람들의 숨소리에도 긴장이 엿보인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마추픽추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교과서에서만 간혹 보던 그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니.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들썩인다. 우리는 설레고 있다. 일생일대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설렘. 그것이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와 있다.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마주하는 모든 것을 껴안을 준비를 마쳤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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