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도 원주민 쫓아내는 ‘김광석길’에는 반대할 것”
“김광석도 원주민 쫓아내는 ‘김광석길’에는 반대할 것”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8.03.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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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대구의 명소 ‘김광석길’이 시끄러운 이유는?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김광석 ‘서른 즈음에’中

1996년 김광석이 세상을 떴다. 예상치 못한 비보였다. 허무에 가득 찬 그의 노랫말처럼 갈 사람이 갔다 식의 ‘자살론’,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는 식의 ‘타살론’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논란만큼이나 그의 생애와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식지 않고 있다. 김광석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이를 소재로 한 공연과 축제는 계속 이어진다.

그 관심은 한 지자체의 사업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김광석이 어린 시절을 보낸 대구 중구 일대엔 수년 전 ‘김광석길’이 조성되었다. 한해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어섰고, 대구 중구를 찾는 200만명 중 대부분이 이 곳을 방문한다. 사망한지 20년이 훌쩍 넘은 김광석.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전히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위클리서울>은 ‘김광석길’에서 그를 추억해봤다.

 

시대를 초월한 가수

수많은 사람들에게 김광석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등 주옥 같은 곡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되풀이돼 불려지고 있다.

김광석에 얽힌 추억은 공적 공간에 한정돼 있는 게 아니다.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한다’는 평가 등 많은 사람들의 개인사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김광석이 사망하기 얼마 전 TV의 어느 방송 클로징에서는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당시 뮤직비디오들은 지금 기준으로 ‘도저히 끝까지 봐주기 힘든’ 낯간지러운 상황들이 연출되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들이 연출되었음에도 기자와 기자의 모친은 김광석 목소리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뮤비가 엉망이어도 노래는 일품. 패티김에만 열광했던, 김광석 세대와 거리가 있었던, TV 앞에서 주걱을 들고 있던 모친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저 가수 누구야? 노래 정말 잘하네.”

 

 

김광석에 얽힌 추억은 ‘김광석길’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 남모(남. 40) 씨는 십수년 전 군복무 시절 행정반 근무 당시 군 기상 노래로 군가가 아닌 김광석의 ‘일어나’를 틀었다가 얼차려를 받았다고 했다. 부친과의 경험담도 털어놓았다. 술 취한 부친을 승용차로 모시고 오던 길, 김광석 팬이었던 남 씨는 차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틀었단다. 노래가 끝나갈 때 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특전사 출신인 부친이 눈물을 훔치며 들뜬 목소리로 그랬단다. “이 노래 누구 노래야? 술이 깬다.” 그 이후 남 씨의 부친은 아들의 차만 타면 김광석 노래를 틀어달라 했단다. 부친은 김광석의 모든 노래를 외울 정도로 열정적인 팬이 되었다.

‘김광석길’은 중고생들도 많이 찾는다. 김광석의 노래는 그만큼 매 시대를 움켜쥐는 힘을 갖고 있다. 김광석을 알지 못했던 ‘아이돌 세대’조차도 ‘김광석 가요제’에 지망할 정도로 세대를 초월하는 가수로 남아있다. 거리엔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도 부쩍 눈에 띈다. 어느덧 술집 스피커에선 김광석의 대표곡 중 하나인 ‘거리에서’가 울려 퍼지고 그의 음성은 온 거리를 가득 메운다. ‘거리에서’는 서양의 저명 대중음악 평론가가 뽑은 90년대 한국가요 ‘톱 텐’이었다.

 

개발은 계속되고…

“말없이 그대를 보며, 소리 없이 걸었던 날처럼.” - 김광석 ‘말하지 못한 내 사랑’中

청년에서 노년층까지 ‘김광석길’은 사랑의 거리다. 거리에선 연인들의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를 끄는 것이다. 벽화 곳곳에선 김광석 노래의 가사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다는 심모(24. 여) 씨는 김광석이 자살한 게 맞다면 자신의 노래 가사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아쉬워했다.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김광석 노래들은 가사나 곡이나 모두 우울하고 슬프게만 들려요.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들어도 덜컥 겁이 나게 하는 가사들이잖아요. 특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노래 제목부터가 그래요. 그 노래가 유작이라고 하던데….”

 

 

‘우울의 아이콘’인 김광석이지만 ‘김광석길’만큼은 활기차다. 길 입구엔 기타를 든 김광석 동상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김광석길’은 대구 중구 디자인 개선사업의 백미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길은 2011년 열린 세계육상대회를 계기로 조성되었다. 대회를 앞두고 마라톤 코스에 포함된 방천시장의 외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광석을 떠올렸다. 2013년까지 3회에 걸쳐 김광석의 생애와 음악을 소재로 한 벽화를 그렸다. 이후 야외 콘서트홀과 골목 방송국이 들어섰고, 김광석스토리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2015년엔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 지난해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년 관광객은 100만명이 넘는다.

내침 김에 인근 대구지하철 3호선인 ‘대봉교역’ 이름을 ‘김광석역’으로 바꾸자는 얘기도 나온다. 중구 대봉동 전체를 김광석과 관련된 콘텐츠로 꾸미겠다는 계획이다. 이 일대 웨딩골목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테마로 거리 리마인드 웨딩을, 김광석역에서는 ‘이등병의 편지’를 테마로 공간을 연출하겠다는 내용 등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김광석길’이 관광명물로 자리하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동시에 올라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길’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방천시장을 포함한 이 일대 상권이 빠르게 살아난 점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런데 그 결과 기존 상인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떠난 것. 현재 김광석길 주변에는 50여 개의 고급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구시에선 모처럼 대구가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며 들떠있는 상황. 원주민들과의 원만한 협의과정을 거쳐 이 일대를 혁신하겠다는 계획이다.

 

김광석 정신은?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 김광석 ‘일어나’中

대구시의 대대적인 선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원주민들을 대하는 명쾌한 해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지역 언론들의 관심도 2개월 전부터는 끊어졌다. 상인들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중구청장에게 묻겠다.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것인지, 안 쫓겨나는 것인지 명확히 답해 달라. 둘러대지 말고 그것만 답해주시오.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양하기로 해놓고, ‘김광석역’ 계획까지 논의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김광석길’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직시하고 있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은 한편으로 이해하지만 무차별적인 개발은 ‘김광석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입장에서다. 관광객 김모(45. 남) 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광석은 집값과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것에 절대 반대할 것”이라며 “사실 이 거리가 북적거리는 게 반갑지만은 않다. 김광석 분위기에 맞게 거리를 둘러보면서 조용히 사색하고 싶은 이들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김광석은 어린 시절 이곳에서 5년도 채 살지 않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 5살 때 서울로 간 그를 두고, “이곳이 과연 ‘김광석길’로 적합한가”라는 문제도 제기돼오던 터다. 지자체가 김광석을 빌미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광석이 살았다고 하기엔 정서적으로 뭔가 부족하지 않나요. 차라리 김광석이 주로 공연했던 서울 혜화동 일대가 ‘김광석길’로 어울리죠. 지금 이곳은 김광석이라는 정서보다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로 작동하는 거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과연 하늘에 있는 김광석이 이 거리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이처럼 한편에선 ‘김광석길’이 지역사회의 욕망의 길로 추락하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지자체와 원주민들, 나아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까지 ‘김광석길’에서의 ‘상생의 길’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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