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옛날에는 정보가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언론기관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통신시설도 턱없이 빈약하여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알아보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통신수단이라는 것이 겨우 편지나 공문서를 통해서만 멀고 가까운 지역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을 뿐, 정확한 사건의 내용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시절에 가장 큰 위력을 과시하던 것은 이른바 ‘가짜 뉴스’였습니다. 전혀 사실과 다르게 꾸며낸 이야기는 파급력이 높아서 순식간에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엔 정보가 빠르고 통신이 발달하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가짜 뉴스는 맹위를 떨치면서 선량한 사람이 공모와 음해에 걸려 엉뚱한 불행을 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목민심서』는 200년 전의 책인데, 그 내용에도 가짜 뉴스에 걸려 억울하게 불행을 당한 목민관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납(貢納)」 조항에 훌륭한 목민관 한 사람이 밝은 행정을 펴서 백성들에게는 큰 혜택을 입게 하였으나, 목민관이 직접 세금수납 업무를 집행하는 바람에 아전들은 전혀 농간을 부릴 수 없게 되자, 아전들이 공모하여 목민관을 음해하는 가짜 뉴스를 조작해내서 마침 암행어사로 파견된 관원이 목민관을 파면시킨 불행을 당한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의 부담으로 가장 힘들게 하는 세금은 전조(田租)와 전포(田布)였습니다. 전조는 쌀로 내는 전세(田稅)이고, 전포는 무명베로 대납하는 전세였습니다. 국가재정을 충당하는 세금이어서 이 세금은 징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백성들은 반드시 그런 세금을 납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훌륭한 목민관이라면 여유가 있고 넉넉한 살림의 백성들에게서 먼저 징수하여 충당하고, 가능한 빈한한 백성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인 백성들에게는 적게 걷도록 하라는 것이 다산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목민관이 밝은 행정을 못하는 경우는 아전들이 부자나 넉넉한 집안보다는 반대로 망해버린 집안, 홀아비, 과부, 아버지 없는 집안, 아들 없는 아버지, 노인, 병자와 환자, 황폐한 농경지 소유자, 쑥대가 우거지고 자갈이 뒹구는 땅의 소유자들의 살을 벗기고 뼈를 긁어내려도 어쩔 도리가 없는 무리들에게 강제 징수하여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고을이 대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산은 자신이 귀양살이하며 강진 주변 모든 고을에서 그런 포악한 아전들의 착취행위를 목격했는데, 유독 해남현의 현감 이복수(李馥秀)라는 사람은 그와 반대로 여유 있고 넉넉한 집안에서 먼저 세금을 징수하여 해당 액수를 충당했고, 그걸 본 아전들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없게 되자 공모하고 음해해 암행어사에게 가짜 뉴스를 보고하게 되고 현감은 즉각 파면처분을 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다산은 ‘오호석재(嗚呼惜哉)!’라고 통탄하면서 시대의 아픔에 가슴 태우는 글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가짜 뉴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세상이 올까요. 요즘도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접하면 세상이 온통 가짜 뉴스로 얽혀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오호라! 애석한 일이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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