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개근생이여. 엥간해서는 안 빠져”
“우리는 개근생이여. 엥간해서는 안 빠져”
  •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8.03.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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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장터의 겨울-눈보라 속에도 성성한 좌판
▲ ‘장터 한 귀퉁이 거울 속에 담긴 무안 일로장 풍경. 그속에 끼여들고 싶다.

 

“못 벌어 오늘은. 요라고 땡땡 얼게 춘 날 뭐더러 사람들이 나오겄어.”

그래도 기어이 장은 벌어진다. 눈보라 치는 날이건만 장터의 좌판들은 오늘도 성성하다. 누가 정해놓은 적 없어도 출근시간은 여느 날처럼 깜깜새복.

“묵고살란께 다 나오제. 묵고사는 일이 그러코 무솨. 오늘은 손님 없을 줄 알아. 오늘은 딱 살 사람만 오는 날이여.”

무안장 어물전의 김미심(61) 아짐한테 오늘은 ‘손님 없을 날’. 하지만 ‘딱 살 사람만 오는 날’이라는 희망은 접지 않는다.

“장날마동 새복 니시 반에 나와. 암만 아파도 뽁뽁 기어서라도 나와. 일케 춘 날은 차말로 나오기 싫제, 속으로 및 번을 용기를 내갖고 나오제. 용기 아니문 못 나와.”

오늘도 뿔끙 용기내어 한뎃바람 몰아치는 장바닥에 앉은 강진장의 할매 말씀이다.

 

▲ 눈 쌓인 추운 날에도 성성한 좌판. 무안장 곡물전.
▲ ‘포근함’이 병풍처럼 늘어선 이불 좌판 앞엔 어물전의 흥정이 한창. 무안 일로장.

 

광주떡(71)은 오늘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서 해남장까지 가려다 펄펄 날리는 눈발을 보고 무안 일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여 일로장 한 귀퉁이에는 꽃이 피어나듯 고운 이불이 내걸렸다.

“장에 오는 어매들 호주머니에 맞촤서 물견 내. 너머 비싸서 쳐다만 보고 가시문 집에 가서 속 애리신께.”

포근한 이불 같은 마음 한 자락이 따숩다.

장터 들머리에 나란히 어물전 좌판을 차리고 앉은 정경숙(60) 아짐과 오영례(69) 아짐은 일로장의 단짝이다. 눈발이 날려 이른 손님은 없을 줄 알면서도 정해진 그 시각에 물건을 차렸다.

“빼묵고 싶은 생각이 왜 안나. 그래도 떨치고 인나서 나와. 궁금헌께. 옆에 언니는 나오겄제,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이 오셔서 나를 찾으실까. 궁금해서 꼭 나오게 되야.”

 

▲ 일로장의 단짝 정경숙, 오영례 아짐. 눈발 날리는데 오늘도 정해진 그 시각에 일찌감치 물건을 차렸다.
▲ “오늘은 손님 없을 줄 알아. 오늘은 딱 살 사람만 오는 날이여.” 눈발 날리는 영광 법성포 선창 어물전.

 

자고새면 오늘이 궁금한 사람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얼어붙은 장터를 녹인다.

눈 펄펄 날리는 장터엔 군데군데 할매들의 좌판이 비어 있기 마련.

“옆에 동무들은 다 안 나왔구만. 꼬치장사도 안 오고 곡물장사도 안 오고.”

무안장 곡물전 주양순(82) 할매. 대체나, 할매 앉은 자리만 덩그렇다.

“여그 젊은 각시들이 ‘오매 전화하제 그랬소? 쌀 떨어지고 없으문 우리들이 쌀 한 가마니 보낼 것인디 뭘라고 이 춘(추운) 날씨에 나왔소’ 그럼서 웃어. 나를 놀리니라고, 또 나를 꺽정하니라고 하는 말이제.”

할매는 오늘 아침에는 오자마자 눈부터 치우느라고 애를 썼다.

 

▲ 이 추운 날에도 장으로 오는 걸음은 이어지고. 일로장.

 

“장날에는 엥간하문 안 빠져. 누가 뭐시락하도 안한디 이날까지 결석을 안해 봤어. 이러트먼 개근생이여. 장사를 잘 하든 못해. 학생으로 치문 공부는 못해도 꾀를 부릴 줄 모르는 그짝이여, 하하.”

“나는 이날팽상 혹석이 없다”는 할매. 스물 여섯부터 시작한 장사이니, 햇수로 56년째다.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곡물전이었다.

“하래 한시를 논 참이 없이 살았어. 천원 이천원 벌어서 뭔 큰돈을 벌겄소. 그래도 열심히 벌어서 3남1녀 자석들 다 키우고 여웠소. 나는 이날까지 큰돈 욕심없어. 놈들 부러워라고도 안해. 이명박이 돈 많다고 해도 좋아 뵈입디여. 자기만 모르제, 놈 우세스럽제.”

천원 이천원…. 큰 돈 욕심없이 작은 돈으로만 꾸준히 열심히 벌고자 하는 그 마음들이 겨울 장터를 성성히 밝히는 힘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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