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무기를 잡아도 되는가?
그대는 무기를 잡아도 되는가?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8.03.09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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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초파정 신입 김병진 씨
▲ 새내기의 주살내기 자세

 

우리의 활터 초파정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집궁식을 갖게 되었다.

성명이 김병진. 한 달여 전 그는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덮어놓고 꾸벅, 인사를 했었다. 가까이서도 아니었다. 눈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눈동자를 볼 수는 없는, 족히 이십여 미터는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는 그렇게 마치 어른을 만난 청년처럼 예를 차리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도 아마 활터에 처음 나갔을 때 그와 같았을 것이다. 누가 됐든 활터에 오는 사람은 내게 선배요 선생이 된다는 의식이 있었고, 약간은 주눅도 들어 있어서, 사람만 보면 그가 누구든 간에, 심지어는 지나가던 등산객이 화장실을 좀 빌려 쓰려고 들렀을 뿐인데도 꾸벅, 꾸벅, 덮어놓고 인사를 했더랬다.

김병진씨는 그날 사대 옆에 마련된 연습장에서 주살내기를 하고 있었다. 살촉에 구멍을 뚫고 끈을 넣어서 묶은 다음 반대쪽 끝을 장대에 묶어놓고 시위에 걸어서 당기는, 화살이 멋대로 아무 데로나 날아가지 않게 해놓고 쏘는 그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어서 국궁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삼 년여 전에 주살내기 과정을 이미 거친 나는 그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보고자 해서 본 것은 아니었다. 눈길이 그냥 절로 그의 동작을 따라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살짝 귀엽다는 느낌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순간의 내 마음은 국궁 선배라기보다 차라리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형이랄까 뭐 그런 어떤 자애로운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고 여겨진다.

 

▲ 창피하게 왜 봐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그는 금방 의기소침해져 갔다. 계면쩍다는 듯이 씨익 한 번 웃어 보이고, 얼른 시선을 피해 조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살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다가는 겨우, 간신히 시위에 걸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아차, 싶어서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찬찬히 복기해 보면 삼 년여 전의 내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새내기는 서툴고 어색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서툶을 알기 때문에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치면 쓸데없는 웃음도 나오고, 누구든 나를 쳐다봐주지 않기를 은근히 소망하면서, 가끔은 어딘가로 쏙 숨어 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젊은 나이도 아니고 연치가 무려 오십도 훨씬 넘어서 새로 시작한 일이고 보니 문득문득, 불쑥불쑥, 내가 이게 뭔 짓인가 하는 반성 같기도 하고 자괴감 같기도 한 복잡한 심사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지내 놓고 나면 그 시절은 아름답다. 나 자신의 서툶이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절로 미소가 번지는 것이니, 그것처럼 아름다운 순간도 인생에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아무렇게나 막 오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움과 민망을 견디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진공 상태와도 같은 지루함을 받아들이는 넉넉한 가슴도 있어야 한다.

 

▲ 사두로부터 궁시를 받고
▲ 함부로 날뛰지 않겠다고 선서도 하고

 

국궁에서의 주살내기는 매우 지루하다. 무슨 ‘얼라’도 아니고, 다 큰 어른씩이나 돼서 화살 끝에 줄을 묶어서 쏜다는 게 이게 영 체면이 말씀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얼라’같은 행위를 한두 시간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한 달 남짓이나 해야 한다니 이게 뭔가 하는 자괴감이 안 들 수가 없다.

먹을 만큼 나이도 먹은 사람이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렵다. 어렵지만 쉽다. 쉽고도 어렵고, 어렵고도 쉬운 까닭은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탈출을 뜻하기 때문이다. 내 몸에 익숙해서 아무 불편이 없던 것들을 버리고 낯선 것을 가까이 해야 하는데 그게 어찌 쉬울 것인가.

삼 년 전 그때, 나와 거의 같은 무렵에 주살내기를 시작했던 한 여인은 보름 남짓 나오다 말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은 그만둬 버렸다. 그만두겠다는 공식적인 통보도 없이, 그야말로 흐지부지 그만두고 말았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양궁을 했었다고, 그래서 활은 익숙하다고 했지만 활이라 해서 다 같은 활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곧 알아야 했다.

국궁은 양궁과 달라서 과녁과의 거리가 무려 일백오십 미터에 달한다. 게다가 양궁은 시위를 당겼다가 놓으면 화살이 날아가서 과녁에 탁 꽂히는 짜릿함이 있지만 국궁은 그런 성취의 순간도 없다.

국궁에서의 화살은 과녁에 맞으면 꽂히는 게 아니라 너를 때려서 미안하다는 듯이 그냥 나가떨어져 버린다. 그런데도 온 몸의 근육을 다 동원해야 한다. 궁사가 일단 사대에 섰다 하면 누가 뒤에서 탁, 쳐도 흔들림이 없을 정도의 단단한 내공을 갖춰야 하는 게 국궁이다.

 

▲ 공손히 절을 하고
▲ 과녁신에게 술을 바치고

 

내공뿐만이 아니다. 국궁에서의 주살내기는 여러 가지 것들을 살펴보게 한다. 주살내기는 단순히 그냥 활 쏘는 연습이 아니다. 주살내기를 통해서 미래의 궁사는 겸양을 배우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차 웅숭깊어져 간다. 무엇보다 주살내기에는 자격 없는 자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활은 곧 무기이다. 무기는 힘이고, 힘은 곧 권력이 되는 것이니, 아무나 함부로 권력을 쥐어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을 국궁에서의 주살내기는 미래의 궁사로 하여금 스스로 터득하게 해준다.

무협영화를 보면 가끔 무술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복수를 위해 무술연마를 하는 사람이 등장하곤 한다. 스승이 그것을 간파했을 경우 스승은 가차 없이 그 제자를 파문한다. 개인의 원한이나 복수 같은 음습한 목적 따위는 무술 본연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술은 문자 그대로 호연지기(浩然之氣), 크게 가슴을 열고 자연의 기운과 함께 하자는 것이니, 쓸데없이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면서 살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무술을 단순한 힘으로, 권력으로 파악하면 그는 깡패 살인자가 되지만, 무술을 심신단련의 공부로 파악한다면 그는 철학자가 된다. 툭하면 총기를 난사해서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들을 살상하는 미국의 총기 문화를 접하고 있노라면, 우리의 국궁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 뒤풀이현장

 

한 달 남짓 이어지는 지루한 주살내기를 끝까지 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김병진씨가 그 지루한 과정을 마쳤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집궁식까지 갖게 되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해도 뭐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집궁식이란 물론 요식행위이기는 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요식행위는 하찮은 것이라고, 저런 짓을 왜 하느냐고 나무라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따지고 보면 요식행위에서 나온다. 요식행위가 엄숙하면 엄숙할수록 그 사람의 마음도 엄숙해지기 마련이다.

삶은 돼지머리 하나에 떡 한 시루, 삼색 과일에 북어포 하나를 상 위에 올려놓고 시작하는 집궁식은 원래 과녁 앞에서 하는 것이지만, 그날따라 날씨가 몹시 춥고 눈발까지 희끗희끗 날렸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한데서 오들오들 떨어가며 하는 집궁식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 해서 실내 행사로 전환했다.

전임 사두인 고문단의 과녁신에 대한 재배가 끝나고, 집궁식 당사자인 김병진씨의 재배와 선서 그리고 현 사두의 궁시 전달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가 한두 마디씩 뭐라고 하면서 키득거리고 있었지만 집궁식 당사자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그 모든 과정이 김병진씨에게는 아마 “그대는 무기를 손에 쥐어도 괜찮은 자격을 갖추었는가?”하는 질문으로 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사대에서의 첫 발시

 

그는 해리면 소재지에서 진미원란 간판을 건 식당을 운영했었다. 옻나무 닭백숙으로 유명해서 찾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인구수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냉난방비도 안 나오는 식당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해서 그만두고 산중마을 담박골로 들어간 그는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많지도 않은 소 열 마리를 키우면서 가끔 면소재지를 나오는 그의 눈에 활터 초파정이 보였다. 어느 하루 아들과 동행을 하는데 아들이 문득 “나도 활 쏘고 싶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그 길로 초파정을 방문했고, 마음을 굳히기는 했지만 부자가 동시에 활터 회원이 되기는 어려웠다. 아들이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입시공부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푼 꿈을 안고 투자를 했던 식당운영이 실패로 귀결된 까닭일까. 아니면 그렇게 태어난 것일까. 그는 웃을 때도 그 웃음에서 진지, 라는 두 글자가 읽히는 표정을 갖고 있었다. 함부로 나대지 않는 그 성격 또한 국궁에 매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국궁은 무술이면서 운동이고 예술이면서 철학이기도 하니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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