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 할망들 숨비소리 스웨덴 앞바다에 울려퍼지다
제주 해녀 할망들 숨비소리 스웨덴 앞바다에 울려퍼지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3.12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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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땅에서 나는 것으로는 아이를 키우고 목숨을 연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향의 여인들은 바다로 들어갔다. 그녀들이 숨을 참은 대가는 쌀이 되었고, 남편의 술과 아이들의 책과 연필이 되었다.” - 다큐 영화 ‘물숨’ 중에서

지난 2016년 9월 말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에서 고희영 감독은 자신의 고향 제주 바다에서 평생을 물질하는 해녀 할머니들의 가쁜 숨을 들려줬다. 그건 숨비소리였다. 긴 자맥질 뒤 물 위로 올라와 태왁에 몸을 기대고 마치 휘파람 불 듯 가늘게 내뱉는 호흡. 그리고 고 감독은 해녀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길 갈망했다.

 

▲ 오는 9월 14일까지 ‘제주 해녀 문화전’ 전시가 열리는 예테보리 해양박물관. (사진 = 김형선 작가 제공)

 

우도며, 애월이며, 구좌에서 성산을 거쳐 서귀포며…그렇게 제주의 곳곳에서 숨비소리 길게 내며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뭍으로 나온 해녀들을 만난 김형선 사진작가는 그들의 힘에 겨운 가녀린 몸 뒤로 하얀 천을 치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깊게 팬 주름과 지쳐서 떨리는 거친 입술을 담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가늘게 떨리는 다리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처지는 어깨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리고 김 작가는 해녀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길 소망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11월의 마지막 날, 그 제주의 해녀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리하여 지난 3월 3일 김형선 작가의 사진과 고희영 작가의 영화가 제주에서 8200km 떨어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또 다른 물질을 시작했다.

지난 해 3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그 해 11월 중국 베이징을 거쳐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 있는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에서 개막한 ‘제주 해녀 문화전(Haenyeo : Women of the sea)’. 고희영 감독의 영화 ‘물숨’과 김형선 작가의 해녀 사진, 그리고 예테보리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 고민정 씨가 제주에서부터 공수해온 해녀 소품 전시가 결합한 ‘해녀의 모든 것’이 거기에 놓였다.

지난 1월 새로 부임해 온 이정규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는 이 해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문화 대한민국’의 전위를 자처하고 나선 그에게 스웨덴을 찾아온 ‘해녀’는 마치 앞으로 그가 스웨덴에서 어떤 대한민국을 새겨놓아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그래서 예테보리 전시가 개막하기 전 김 작가와 고 감독, 그리고 고민정 씨를 스톡홀름으로 불렀다. 고 감독의 영화 ‘물숨’과 함께.

 

▲ 영화 ‘물숨’의 연출자인 고희영 감독(왼쩍)과 김형선 사진작가. (사진 = 주스웨덴 대한민국대사관 제공)

 

스톡홀름 대학교 한국학과 강의실과 스톡홀름 시내 영화관 ‘필름휘셋’에서 상영한 ‘물숨’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스웨덴에서 누구보다도 한국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화에 대한 충격이기도 했다. 평생을 바닷물에 살이 녹아버릴 지경인 해녀들의 거친 삶 앞에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스톡홀름에서 해녀들의 삶을 목도한 한국 교민들도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내 ‘물숨’을 따라 에테보리 개막식에 참석한 이 대사는 축사를 통해 “‘제주 해녀 문화전’은 한국의 가장 독특한 문화유산 중 하나를 스웨덴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제주 해녀 문화를 전시 아이템으로 선정한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의 통찰력 있는 안목에 감탄하였다”고 해양박물관 측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 대사는 “2016년 유네스코는 제주 해녀 문화를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였으며 이를 통해 제주도의 독특한 성격, 제주 사람들의 기상, 공동체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 친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고 강조하며 “이 전시회는 한국인과 스웨덴인 모두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전시라고 생각하며, 이 전시회가 한국과 한국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제주 해녀 문화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이정규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 (사진 = 주스웨덴 대한민국대사관 제공)

 

이번 전시회에 해녀 사진 26점을 선보인 김형선 사진작가는 “물속에서 물질하는 모습의 해녀를 담은 카메라는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물 밖의 해녀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고된 물질 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런 것들. 즉 행위가 아닌 주체로서 해녀 본인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숨’의 고희영 감독은 제주 출신이다. 그는 완벽한 제주도 말을 구사한다. 그러나 처음 2년 간 그는 해녀 할머니들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했다. 고 감독은 “해녀들은 상당히 배타적이다. 그들을 찍으려면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철저한 조직 사회인 그 분들이 만장일치로 촬영을 허락하지 않으면 단 한 컷의 촬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을 고스란히 그 분들과 마음을 섞었고, 그리고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제작 당시를 회상한다.

에테보리 해양박물관은 개막식 이후 연일 ‘해녀’를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개막식 날 1000여명이 관람한 것을 시작으로 매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온다. 스웨덴 뿐 아니라 멀지 않은 덴마크에서부터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어린이 단체 관람객들은 더욱 신기해한다.

전시관 입구 물안경 속에 제주 바다가 넘실거린다. 태왁이며 망사리, 빗장 호미와 뇌선(수압을 견뎌야 하는 해녀들의 진통제)을 보는 스웨덴 어린이들의 눈은 신비감에 쌓였다. 해녀들이 영등신과 용왕 할망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 불턱(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작업하다가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우던 공간)을 스웨덴식으로 표현하고, 소라껍질로 스피커를 만들어 귀에 대면 파도소리 숨비소리가 들리게 한 장치 등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 김형선 작가의 사진은 해녀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사진 = 김형선 작가 제공)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은 외국인에게 무척 인색한 곳이다. 실제 이번 ‘제주 해녀 문화전’은 이 박물관이 개관한 이래 처음으로 외국 작가에게 온전히 공간을 내준 첫 전시회다. 이에 대해 김 작가나 고 감독, 그리고 우리 대사관측도 큐레이터 고민정 씨의 특별한 수고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문화를 스웨덴에 좀 더 구체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다.

‘제주 해녀 문화전’은 내년 스톡홀름에서 다시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내년은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당연히 한국과 스웨덴 간의 좀 더 깊고 심오한 문화교류가 이뤄질 것이다. 김형선 작가와 고희영 감독도 그것을 간절히 희망했다.

한편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의 ‘제주 해녀 문화전’은 오는 9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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