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장터의 겨울-겨울장터의 어매들

▲ “보고 가셔” 하는 말씀 대신 “불 쬐요” 그 말씀만 건네고 있다. 오수장 심삼남 할매

# “불 쫴요” 따뜻한 그 한 마디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가야 할 곳이라고 작심하면 어쨌든간에 닿고야 마는 그이의 발자국.

“내 혼자 약속이제. 누가 시긴다고 허겄어.”

임실 오수장 심삼남(75) 할매는 오늘 새복 다섯 시에 오포대 옆 자리에 첫 구루마를 끄서다 댔다. 시장통에 있는 집에서 여덟 번을 왕복으로 걸음하여 차려낸 어물전.

“장사는 항시 그 자리에 채려놓고 갖촤놓고 내 손님 지달리는 것이여.”

여름으로는 새복 네 시, 시한으로는 새복 다섯 시. 47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켜 온 ‘심삼남 어물전’의 개점 시각이다.

영하 15도의 새벽, 꽁꽁 언 진어물을 난전에 펴려니 하도 손이 시려워서 눈물이 찌끔 나왔더라는 할매.

“글도 어물 장사는 겨울이 좋아. 더 씽씽허니 판게.”

일찍하니 장을 보러 온 어매가 좌판을 들여다 본다.

“구세미(대구 아가미)가 나왔네.”

사는 사람이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구세미.

“썰어서 뼈다구 조사서 무시 나박나박 썰어서 깍두기 담아.”

전북에서 주로 먹는다는 구세미깍두기 조리법을 찬찬히 일러주는 할매.

동태 달라는 아짐은 값도 묻지 않는다.

“요새 무시가 맛나. 육수 내서 무시 얄풋하게 저며넣고 고칫가리 옇고 매움허니 폭폭 낄애.”

꽝꽝 언 동태를 아홉 토막으로 나누어 꺼멍봉다리에 담아 주며 친정엄마처럼 이르는 말씀이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고 가셔” 하는 말씀 대신 “불 쫴요” 그 말씀만 건네는 심삼남 할매. 추운 거리에 따뜻한 불씨를 자꾸만 피우는 그 마음이다.

 

▲ “장바닥은 여름에는 덥고 시한에는 추와. 그란 대목도 없이 어치고 산다요.” 무안장 고산임 할매

# “내 뇌력으로 헌께 깨깟헌 돈이여”

눈이 허옇게 쌓인 오늘도 할매는 전을 차렸다. 무안장 채소전 고산임(77) 할매를 빙 둘러싸고 있는 ‘물견들’은 다 할매 손으로 장만한 것.

“집을 뺑뺑 돌라서 다 밭이여. 신발 뀌자마자 걸음발로 디딘 자리가 다 밭이여.”

나를 둘러싼 것이 온통 일거리인데 그 밭을 가꾸고 그 밭에서 거두는 수고에 푸념도 엄살도 없다.

“딸싹딸싹 허문되야.”

각시 때부터 장에 나온 40년 세월이 한결같았다.

“놈 속히고 쉽게 버는 돈은 깨깟허들 안해. 나는 내 뇌력으로 깨깟한 돈 벌고 살아. 이것도 뇌력 안허고 어치고 산다요. 장바닥은 여름에는 덥고 시한에는 추와. 그란 대목도 없이 어치고 산다요. 그 목을 넘어감서 ‘와따 넘어갔다 잘했다’ 허고 살아. 요거 힘들어서 어찌야쓰까 그런 맘이 없어. 야튼 나는 전딘다 그런 맘으로 이겨내문 재밌제.”

노상 스스로 이겨내는 게임의 여왕 고산임 할매인 것이다.

“나 직장여성이여. 고산임 내 이름자 내놓고 내야 물견포는 재미가 있어. 돈 쟁여놨다 내 새끼한테 억을 주문 뭣해. 내 이름을 빛내고 살다 가야제. ‘그 망구 갔다드라’ ‘고산임 할매 죽었다드라’ 헐 때 참 존 사람이 가 불었다 서운하다 그래야제. 나 간 뒤로 내 이름 석 자가 좋게 남아야제.”

그리하여 할매는 틈틈이 덕을 쌓고 공을 쌓으며 이 장터를 지키고 있다.

“어야 이것 잔 갖고가 봐. 배추 싸묵어봐. 어야 꼬치 한 주먹 갖고 가. 된장국에 여.”

 

▲ “한 사람이 오더라도 하루종일 문 열고 있어야 장사여.” 법성포 선창가 어물전 김양임 어매

# “모다들 팍팍해. 나라도 덜 받고 더 줘야제”

영광 법성포 선창가 어물전 김양임(63) 아짐은 굴비하고 보낸 세월이 30년째다.

“경기가 안 좋아. 모다들 팍팍해. 1500원 벌 것 1000원 번다 생각하고 글케 팔아. 나라도 덜 받고 더 줘야제.”

눈보라 몰아치는 선창가엔 지나는 사람도 드문데 아짐의 어물전엔 온갖 고기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농어 부새 반어(수조기) 달고기 서대 장대 삼치 꼬지 민어에 두 마리씩 푸른 리본으로 묶은 병어까지.

“손님 없다고 문 닫으문 장사 아녀. 한 사람이 오더라도 하루종일 문 열고 있어야 장사제.”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메뚜기 이마에 앉아서라도/ 전은 펴야 한다./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김연대, ‘상인 일기’ 중)

 

▲ “요 뱅애는 우리 영감이 어지께 잡은 거여.” 장흥장 김숙자 할매가 영감님과 협업으로 차려낸 작은 점방

# “버릇이 돼갖고 맨나 폴러 나와”

오로지 쟁반 하나 앞에 두고 덩그러니 길바닥에 앉은 김숙자(77) 할매. 쟁반엔 병어가 뱅뱅 돌려 놓였다.

“새복 여섯 시에 왔어. 한 다라 갖고 왔는디 아즉도 다 못 폴았어. 얼른 떨이 해 불라고.”

파장 무렵의 장흥장. 돌아갈 버스 놓치기 전에 어떻게든 완판하려고 할매는 원래 자리를 두고 길 한복판으로 진출했다.

“요 뱅애는 우리 영감이 어지께 잡은 거여. 나이가 솔찬해도 솔찬히 잡아오셔.”

여든 잡순 영감님이 잡은 병어들을 할매는 장날마다 버스 타고 팔러 나온다.

“번 돈은 영감한테 다 갖다줘. 뱅애 잡을라문 밑천도 들어가고 뇌력도 많이 들어가. 주벅(그물)도 사야 허고 그물이 뜯어지문 쭈매야 허고.”

이 엄동에 다라이 이고 나와 장터에 앉은 자신의 몸공에는 값을 매기지 않다니! 자신에게 불공평한 할매.

“겨울에 잡히는 것은 뱅애배끼여. 날마다 드는 것이 아녀. 날마다 잡으문 돈벼락 쳐불게?”

돈벼락은 부당하다는 듯 짐짓 고개를 젓는 할매. 그물에든 고기를 털어 다라이를 채우고 다시 다라이를 비우고, 그렇게 ‘도래미타불(도로아미타불)’ 같은 하루하루를 생애를 두고 이어온 할매.

“버릇이 돼갖고 맨나 폴러 나와. 인자 (설)대목에는 안 나와야제. (장에) 안 간치끼 딱 곱게 하고 있어야제. 애기들이 알문 지그 어매 고상헌다고 속상허제.”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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