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나의 불안은 계속됐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를 데려가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한 상태였지만, 어머니가 집을 출발하실 때까지 난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밤에 잠을 잘 시간에도 불안은 여전했다. 난 반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은 밤늦게까지 무슨 얘기인가를 계속 나누고 계셨다.

난 그 얘기들에 귀를 기울였으나 도통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잠이 들었다 깨고 다시 잠이 들고 하다가 어느 새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에야 난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눈을 뜨니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했던 아버지가 세수를 하시고 머리 빗질을 하시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장터에 가실 때마다 입으셨던 두루마기 옷까지 챙겨 입으셨다.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덕희야, 나도 너랑 같이 어머니가 사는 통영에 가서 살 게다…."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살겠다고 하셨던 아버지가 하루만에 어머니를 따라가 함께 살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와 똑같이 말씀을 하셨다. 난 밤 사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행동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아침 밥상을 차리셨다. 모두 조용했다. 그저 숟가락과 젓가락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슬쩍슬쩍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과연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궁금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태어나고 아홉 살때까지 자란 당직골을 떠날 시간이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외삼촌, 여동생 그리고 나까지 다섯은 각자 약간씩의 짐을 챙긴 뒤 산비탈을 내려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버스가 왔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죽산 읍내까지 나왔다. 거기서 안성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안성에 간 다음엔 서울행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다시 통영행 버스를 타야 한다고 외삼촌이 설명을 해주셨다.

 

 

그런데 죽산 읍내에서 안성가는 버스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으셨다. 아까부터 들었던 이상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난 몹시 긴장했다.

그리고 30여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안성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출입문 쪽에 서 계시던 외삼촌이 맨 먼저 나를 태웠다. 뒤이어 여동생,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께서 차에 오르셨다. 창가 자리에 앉은 뒤 계속해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뿔사, 그런데 아버지께서 차에 오르지 않으시는 게 아닌가. 안내양은 이미 버스 문을 닫고 있었다.

순간 나는 와락 겁이 났다.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문 앞으로 내달렸다. 버스가 마악 출발하려는 참이었다. 외삼촌이 달려와 내 팔을 붙잡았다. 뒤이어 어머니도 달려오셨다. 난 몸부림을 쳤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버스 문을 닫으려는 안내양을 밀치고 잽싸게 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내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씩씩, 거리면서 당신을 노려보는 내 소매를 붙잡아 다시 버스에 태우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손마저 힘껏 뿌리치고는 시장통으로 마구 뛰어 도망갔다.

한참을 도망치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버스에서 내린 어머니와 외삼촌이 내 뒤를 쫓아오고 계셨다. 난 앞만 보고 내달렸다. 어디로 가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와 외삼촌도 절대 지지 않았다. 끝까지 나를 쫓아오고 계셨다.

그날 죽산읍내를 몇바퀴를 돌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그리고 결국 난 차오르는 숨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따라온 외삼촌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죽산읍내 사람들은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마냥 가는 곳마다 모여 우리 가족의 쫓고 쫓기는 달리기 경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삼촌에게 붙잡힌 나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제발 놓아달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나는 외삼촌에 질질 끌려 어머니와 여동생,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다. 아버지는 먼 하늘만 쳐다보며 담배만 피우셨다.

외삼촌은 이번엔 택시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택시에 나를 강제로 밀어넣었다. 나는 그 안에서 엉엉 울었다. 끌려가면 끝장이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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