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뽕밭의 초보신선 오-형렬

그는 오형렬이다. 나는 그를 오-형렬, 이라 부르기로 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삼십 분도 채 안 됐는데 녀석이 쓱쓱 다가와서는 “막걸리 한 잔 하고 하자” 해서 “난 아직 술시간 안 됐어” 했더니 “시간은 무슨,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거지” 하고 투덜거리며 혼자 막걸리를 마시러 가버린다. 그 자세가 흡사 “이런 촌놈, 세상을 왜 그렇게 맛없이 사느냐”하고 나를 비아냥거리는 것만 같아서 정신이 번쩍 든다는 느낌이었다.

 

▲ 가끔은 개도 만져주고..

 

원 세상에, 작업 시작한 지 삼십 분도 안 됐는데 막걸리를 마시자니. 이런 녀석을 평범하게 그냥 오형렬이라 부르면 아무래도 뭔가 크게 잘못 하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오-형렬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보니 그는 정말로 그런 사람 같아 보인다. 평범한 오형렬이 아니라 뭔가 비범한 오-형렬.

그런데 뭔가가 빠진 것 같다. 오-형렬만으로 되겠는가, 하는 의문이 살짝 든다. 그렇다면 한량 오-형렬은 어떨까. 게으름뱅이 오-형렬은? 아니다. 기왕지사 별명을 새로 짓기로 했자면 까짓 거,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조금 더 써서 신선이라 불러줄까? 아니면 도사 오-형렬?

도사보다는 신선이 낫겠다. 도사라면 뭔가 ‘사’자 냄새가 풍겨서 뒷맛이 개운치 못하지만, 신선이라고 하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 뭔가 새로움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원숙한 신선까지는 아니겠고, 초보신선 오-형렬 말이다.

“으히히. 초보신선 오-형렬이라. 으히히.”

우리는, 그러니까 그녀와 나는 막걸리를 마시러 간다고 뽕나무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오-형렬의 뒷모습을 보면서 시시덕거렸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웃어댔다. 들판을 보면서도 웃었고, 곡괭이질을 하면서도 웃었다. 웃고자 해서 웃는 것은 아니었다. 웃음은 마치 공기처럼, 산소처럼 우리의 주위를 감싸 돌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웃지 않고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우슬 뿌리를 캐러 간 길이었다. 오-형렬 부부가 관리하는 뽕나무 밭에 우슬이 많았다. 작년에 그것을 발견한 내가 그것을 캐다가 술을 담가야겠다고 생각했더랬다. 우슬은 ‘쇠물팍’이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듯이, 무릎 관절에 효험이 좋다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말씀을 나는 성경 이상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집짓기 작업에 빠져 있느라 가을을 고스란히 그냥 보내 버렸다. 겨울도 그렇게 그냥 보내버리고, 봄이 되어 새싹들이 막 나오려고 하니 내 마음이 바빠졌다.

 

▲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아야 행렬아. 나 느그 집으로 우슬 뿌리 캐러 갈란디 너 집에 있냐.”

“나 시방 서울이여.”

“서울을? 뭔 지랄한다고 서울까지 끼데 갔다냐?”

“아이 저기, 울 메누리가 애 낳는다고 해서.”

“음마. 며느리 애 낳는디 시에비가 뭘 얻어먹겠다고 갔다냐?”

“지랄허네. 너는 인마 몰라.”

듣고 보니 그렇다. 나는 모른다. 며느리는커녕 아들도 딸도 있어본 적이 없는 내가 뭘 알 수 있으랴. 다만 알겠다는 느낌이 조금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앎이라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쨌든 내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 한 명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인식이랄까 의식 같은 것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요즘 생겼다.

어찌 생각하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균치의 가정생활을 했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설령 혼자 살고 있다 해도 어딘가에 자식은 있다. 자식이 잘 풀렸건 못 풀렸건 그들은 틈만 나면 자식들 얘기를 한다.

나는 없는 자식 얘기를 그들이 하고 있을 때 나는 할 말이 영 궁색해져 버린다. 두꺼비처럼 그저 눈이나 깜빡깜빡 해대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자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안 했거나, 혹은 못 했다는 어렴풋한 자의식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식 얘기가 아니라 우슬이었다. 우슬이 싹을 내기 전에 그것을 캐러 가야 했다. 사람이 미련하면 도끼로 제 발 등을 찍으면서도 모른다더라고, 지구상에 있어본 적이 없는 온전히 나만의 집을 짓는다는 허황된(?) 생각으로 집짓기 작업을 시작한 이후 내 무릎이며 팔목이며 손목이며 등등 모든 관절들이 덜그럭 소리를 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니 얼른 우슬을 캐다가 식혜도 만들어먹고 술도 담가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오는 건데?”

“난 월요일에 갈 거야. 마눌은 한 열흘 더 있겠다니까 혼자서.”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이 됐고, 오후에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막 뽕 밭에 도착했다고, 언제 올 거냐고 묻는다.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간다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단다. 내가 언제 오는지 알아야 안주거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뽕나무 가지치기를 겨울에 해 놨는데 이제 그걸 치워야 한다고, 나더러 일손을 도우라 한다.

 

▲ 뽕 술을 준다고 담고 있는 오형렬 씨

 

“얀마 나는 우슬뿌리 캐러 간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일을 돕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그녀와 그렇게 하기로 합의도 했다. 농사는 시작이 절반이라는데 새싹이 막 돋아나는 계절에 서울의 며느리 수발이나 들고 있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바쁘겠는가.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녀석은 안주거리로 돼지 족발이나 잔뜩 꺼내서 녹이고 있을 뿐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거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일 해야 한담서? 뭔 일 하자는 거였어?”

“일은 무슨, 심심헌게 해본 소리제.”

“엠병, 지랄도 천연색으로 하고 자빠졌네.”

“넌 인마 우슬 캔다며? 이것 들고 언능 따라와 봐.”

그러면서 쇠스랑을 내준다. 나는 삽으로 캘 생각이었는데, 쇠스랑을 보니 야 이게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녀석은 다시 장갑은 있냐, 하면서 장갑을 꺼내주고, 안전화도 없지, 하면서 안전화를 꺼내주는데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우슬 뿌리 몇 개 캐는데 안전화가 다 웬 말이냐 싶었던 거다. 어쨌든 그가 내주는 안전화를 신었는데, 그 또한 신고 보니 괜찮다는 느낌이어서 계속 신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와 나의 그녀는 우슬을 캐고, 친구 녀석은 겨울에 전지를 해서 여태까지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뽕나무 가지 치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사건(?)이 벌어졌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명백한 사건이었다. 작업 시작한 지 삼십 분도 안 됐는데 막걸리 마시러 가자고 당당하게 외치는 인간이 대한민국 땅 어디에 또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막걸리 한 잔 하러 간다고 작업장을 떠난 녀석이 아예 오지를 않는다. 막걸리 한 잔에 설마 세상이 낙낙해져서 그만 드러누워 하늘이나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녀석은 역시 신선은 신선인가보다. 내 입에서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 내가 온다고 족발을 준비했단다.

 

“하긴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런 신선 노릇도 하는 것이지, 믿고 후원해주는 사람이 옆에 없다면 어림도 없지. 그럼, 어림도 없고말고.”

녀석의 아내 영숙씨가 아니었다면 녀석은 아마 오늘날의 ‘초보신선’ 오-형렬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서울 특별 시민이었을 당시 주식에 손을 댔다가 폭망한 전력이 있었다. 단 한 차례의 폭망으로 그의 인생 전체가 흔들렸다. 어쩌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가 그나마 일어서서 사람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마누라’ 덕분이었다. ‘마누라’가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던 덕택으로, 그 딴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시골에 뽕나무 밭이나마 구입해서 이른바 귀농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니, 별 볼 일 없는 인간 오형렬을 오늘날의 초보신선 오-형렬로 만들어놓은 사람은 누가 뭐래도 그의 마누라 영숙씨인 것이다.

돈의 속성을 제대로 잘 아는 사람은 돈에 속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는 이제 돈 버는 일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바람에 그의 ‘마누라’ 영숙씨는 이중 삼중으로 바빠졌다. 그는 바쁘게 뛰는 마누라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뻥긋뻥긋 웃는 표정으로 가끔은 지그시 바라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미안해 죽겠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끔뻑끔뻑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막걸리를 밀어내지는 않는다.

“아이고 저놈의 술, 술, 아 쪼끔만 마셔-어.”

영숙씨는 가끔 눈을 흡떠 보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그러나 금방 웃어버리고 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잔씩 홀짝거리는 남편의 막걸리 타령을 그녀는 어쩌면 지겨워하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다는 느낌조차도 든다. 그리하여 그들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니, 그 하나가 부창부수요 그 둘이 천생연분이다.

“야 뭐하냐. 안주 다 돼 가는구만.”

 

▲ 최고의 시간

 

땅에서 캔 우슬 뿌리를 물에 씻고 있는 중인데 녀석이 재촉을 한다. 뿌리 사이에 흙이 끼어 있어 씻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을, 녀석은 흙도 약이 된다고, 그냥 대충 씻어내는 게 좋다고 우긴다. 검불이 있어서 그걸 빼내려고 하면 검불도 약이 된다고, 그냥 함께 술을 담그라고 잔소리를 해대고, 우슬 뿌리 사이에 다른 뿌리가 섞여 있어서 그걸 골라내려고 하면 그것도 약이 되니까 그냥 함께 하라고 또 잔소리를 해댄다.

옆에 다른 손님이 없었다면 그도 아마 그런 잔소리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게다가 손님이 일방적으로 그냥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내가 타고 간 자동차가 방전이 돼버린 탓에 점프선을 트럭에 싣고 달려와 준, 이를테면 내가 직접 나서서 접대를 해야 마땅한 손님이었다.

전기밥통에서는 안주가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김장김치에 족발을 넣어서 푹푹 고와대는 그 냄새가 사뭇 죽여주는 것이어서, 나도 이제 더 이상은 우슬 뿌리 씻는 일에나 매달리고 있을 수가 없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대충대충, 후딱후딱 해 치우고평상에 앉았다.

알고 보니 점프선을 갖고 달려와 준 김기수씨는 하는 일 없이 놀다가 온 것이 아니었다. 보리밭에서 아내와 함께 거름 주는 작업을 하던 중에 초보신선 오-형렬의 전화를 받고 달려와 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술자리를 오랜 시간 함께 할 입장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실로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도 못하고 집에 와서야 생각이 났다.

농사를 이만여 평이나 짓고 있지만 자기 땅이 아니라서 임대료 주고 나면 농기계 운영비나 겨우 충당하고 만다는 김기수씨가 돌아간 뒤에 우리의 초보신선 오-형렬이는 새로운 잔소리 소재를 들고 나왔다.

 

▲ 초보신선의 작업 자세

 

“안전화 그거 너한테 딱 맞지? 가져가서 신어라.”

“안 가져가.”

“왜야.”

“안 가져간다니까.”

“그거 좋은 거야 인마, 너 가져.”

“아 글쎄 안 갖는다니까.”

“그러면 너 이거, 안락의자 가져갈래?”

“에이 싫어.”

“왜야.”

“이렇게 커다란 걸, 에이 싫어.”

“이거 좋은 거야 인마.”

“아 글쎄 싫다니까.”

뭐든 자꾸 주려고 하는 초보신선 오-형렬. 그가 이번에는 뽕 술을 들고 나왔다. 작년에 딴 오디로 담근 술이 이제 어지간히 익었다고, 몇 병 가져가라는데 나 또한 술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어쨌든 사양은 못 하는지라 좋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진짜 신선인 것 같기도 하다. 나한테 뭘 자꾸 주려고 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는 삶을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이니, 자본주의가 팽창일로를 걷다 못해 빵 터져버릴 지경에까지 이른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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