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피어난 복지의 시대, 암울한 그림자

주거복지, 청년복지, 장애인복지, 요즘은 길가에 핀 꽃만큼이나 우리는 ‘복지’라는 말을 쉽게 접한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장애인 등급제 폐지와 ‘Me too 운동’, 청년정책 등은 모두 복지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복지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 사용 또한 드문 것 같다. 앞으로 사회복지에 대한 기고를 통해 일반적인 오해와 편견을 깨고 사회복지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올린다. 

 

늦은 시각 신촌의 모 PC방.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P씨가 달가운 인사로 맞이한다. P씨의 근무시간은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10시간이다. 밤을 지새우는 것도 피곤하지만 가장 고역은 한 쉬도 앉아 쉴 수 없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앉아 있을 곳'이 없다. P씨의 업무는 매장 관리와 고객 접대. 꼬박 10시간을 일하는 동안 P씨는 서서 손님을 접대하고, 음식을 만들고, 60평대 매장의 좌석마다 라운딩을 돌며 청소(새벽에 취객이 토하고 간 화장실이 가장 상급 코스다), 잠시 앉았다 일어나 쉴 곳조차 없다. 이유인 즉, '일하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만큼 보기 싫은 게 없더라'라는 사장님의 운영정책 하에 직원 공간 내 의자를 모조리 치워버린 것. 퇴근 후 P씨가 집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부은 발을 주무르는 것이 되었다.

 

▲ 사진=pixabay.com

 

PC방 뿐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아마도 당신은 ‘앉은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으리라. 대게 일하는 자는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포털 사이트 ‘알바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3008명 중 전체의 50.2%가 ‘항상 서서 일한다’고 응답했다.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항상 서서 일한다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운반·물류(69.8%)’ ‘백화점·마트(69.7%)’ 등에서 항상 서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았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1960년대 산업화의 태동과 함께 따라왔다. 부적절한 자세나 단순 반복적인 동작, 무게가 실리는 작업 등이 원인이 되어 손목, 손가락, 팔꿈치, 목, 어깨, 허리, 무릎, 다리 등 주로 관절부위의 신경, 인대, 뼈 등에 나타나는 만성적인 장해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도 보편적인 직업병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식업, 판매업, 서비스업 등 일상영역에 보편적인 사업장 내 노동재해는 주목 받지 못한다. 노동자의 건강 관련 이슈가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단순 단기직 노동자의 문제는 소외되기 때문이다.

지식기반 사업장의 노동자는 앉아 일하는 것이 당연한 반면, 공장에서 서비스사업장으로 옮겨진 나머지 노동자는 일하면서 생기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악화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일을 하면 몸이 아프고, 우울하고, 살아가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고갈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또한 최저임금과 산재보험 도입과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권리는 금전적인 보상과 보장의 방식으로 담론이 형성되어왔고, 그 의도마저 지배계층의 감시성 수단, 이분적 계층 정당화, 정치적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에 와서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 찾기 운동이 늘어나고 있지만 역시 금전적 보상조차 불완전한 현실에서 주종 담론의 벽을 허물기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곧 생계가 되는 자본사회에서 가장 원초적인 노동권은 동일한 노동만큼 동일한 임금을 받는 일이다.

특히 2,30대 청년층이 주로 해당하는 비정규직, 알바는 "젊으니까 그정도는 괜찮다"며 개선과 보호에 대한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이다. 숙원적인 권력 비대칭이 깊게 자리 잡고 있고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의 경우 야간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어떤 사업장은 최저시급이 올라서 주휴수당을 챙겨주는 대신 식대를 빼야겠단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노사 간의 대립에서 임금 문제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앉을 권리를 비롯한 노동 환경에 대한 쟁점은 마치 사소한 것, 간소한 것으로 가장시킨다. 사업자는 "젊으니까 그 정도는 괜찮지!" 라는 말로 감추려 하고, 노동자는 임금 문제에 붙인 불이 꺼질라 덮어놓기 바쁘다. 하지만 작은 권익마저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결코 더 큰 권리가 보장될 리 없다.
 

RIGHT TO SIT : 노동자에게 의자를 허하라

2006년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의자 놓기 운동'이 펼쳐졌다. 캠페인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08년 마산 대우백화점과 사천휴게소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사업장에 의자가 놓이기 시작했다. 2013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이 출범했고, 2017년에는 <한겨레> 칼럼 '[야! 한국사회] 앉을 권리'에서 손아람 작가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저지 필리버스터를 매개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앉을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같은 해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이에 영감을 받아 일명 '앉을 권리 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앉아있는 서비스 노동자에 향하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우리 사회는 유독 권위의식이 높은 문화다. 관계에서 상하의 높이를 어림잡고, 나보다 높은 자에게는 벌떡 일어나 굳이 또 몸을 낮추지만, 낮잡아 볼만한 상대다 싶으면 상대방이 겪는 고통의 크기만큼 본인에게 권위로 돌아온다고 여긴다. 영국의 경우 서비스 노동자들을 세워 놓는 관행에 대해 ‘서비스 노동을 천시하는 시각’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양성평등실태통계에 따르면, 서 있거나 불편한 자세로 일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4,593명 중 45.6% 그렇다(매우 그렇다 포함)고 답했다. 같은 문항 응답자 특성별 차이를 살펴보면, 상용직 임금근로자는 37.9% 그렇다고 답한 데 비해, 임시직/일용직 임금근로자는 59.9% 그렇다고 답했다. 한편 직종별 각각 관리/전문직 32.8%, 사무직 20.4%가 그렇다 답한 데 비해, 판매/서비스직은 53%, 숙련/생산기능직은 61.4%, 단순노무직은 65.1% 그렇다고 답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하여야 한다”(‘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80조’)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 규정도 별도로 없고 감독관이 인지하더라도 과태료 부과 따위의 제재할 방법이 없어서 강제력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이는 아직까지 권고사항으로 고용주의 도덕적 결정, 예컨대 배려나 양심 따위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는 단순히 고용주의 선호에 따라 서서 일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 비로소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행복한 노동자를 볼 때 비로소 소비자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상해로 인한 노동자의 업무 효율과 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안전하고 건강한 직장은 고용주에게 가장 최우선의 가치여야 한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의자 놓기 운동’의 상징적 의미는 단순히 일하는 사람의 육체적 고통을 해결하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의자’는 노동자에게 건강을 지킬 도구이자 소외계층이 주로 제공하는 서비스노동과 생산기능직, 단순노무직에 대한 사회의 감수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우리 모두는 사회 구성원이 행복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에 책임이 있다. 직장이 곧 생계의 전부가 되는 우리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일하는 것이 고통이 되는 자본사회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게 일하자. 사람이 사람다운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어서 왔으면 한다. 나의 친구이자 연인, 가족 또 이웃인 노동자가 행복한,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터로 향하는 건강한 사회로 도달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 첫걸음으로 서서 일하는 자에게 의자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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