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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에서 운동복 입고 응원하던 그 할아버지가 스웨덴 국왕이었다고?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왕권보다 신념과 사랑을 택한 인물 2: 칼 16세 구스타브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4.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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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스톡홀름의 드로트닝 궁전은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나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과 비교하면 아담하다. 한 때 북유럽의 지배자였던 스웨덴 국왕의 거처라고 하기에는 소박하다. 프랑스나 독일의 어느 영주도 이보다는 큰 궁전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이 궁전의 주인은 칼 16세 구스타브 왕과 그의 부인인 실비아 왕비다. 통치하지는 않지만, 입헌군주국인 스웨덴의 상징이다. 최근 인기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한 때 그는 스웨덴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 드로트닝 궁전 : 스웨덴의 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브와 그의 왕비 실비아가 살고 있는 궁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게다가 구스타브 왕은 지난 2월 20일부로 스웨덴 역사상 가장 오래 왕위를 지킨 국왕이 됐다. 1973년 9월 15일 즉위한 그는 44년 6개월을 재위했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스웨덴 시민들이 지루해 한다. 영광과 찬사를 받을 일이지만 스웨덴 시민들은 오히려 “이제 그만하지. 빅토리아(구스타브의 장녀. 왕위 계승권자)도 영국 찰스처럼 늙어만 가는데…” 하는 푸념을 한다.

구스타브 왕의 인기가 시들한 이유에는 잇단 외도 스캔들도 한 몫 한다. 그는 몇 해 전부터 해외 순방지에서 스트립 클럽에 드나들다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고, 대놓고 바람을 피우기도 했다. 스웨덴이 워낙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나라지만, 유부남의 경우는 다르다. 가족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스웨덴 시민들에게 바람피우는 국왕은 신망받기 어렵다.

그런데 구스타브의 실비아 왕비에 대한 사랑은 유명했다. 실비아와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할 뻔도 했다. 살짝 머리를 써 왕위와 실비아 둘 다 차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비아와의 결혼을 위해 엄청난 권력을 포기했다. 스웨덴 역사상 가장 ‘무늬만 왕’을 자처한 것이다.

구스타브는 1946년 증조부 구스타브 5세가 왕위에 있을 때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구스타브 6세 아돌프는 당시 왕세자였고, 아버지인 구스타브 아돌프는 그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그 바람에 그는 조부가 왕위에 오르자 4살의 나이에 왕세손이 됐다.

1968년부터 군에 복무한 구스타브 왕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독일에 갔다가 브라질계 독일 여성 실비아 좀멀라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당시 스웨덴 왕실에는 귀천상혼제라는 것이 있었다. 즉, 왕이 될 사람은 왕족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신분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만 했다. 당시 스웨덴 왕실에서 왕이 될 수 없는 자는 여자이거나 평민과 결혼한 왕족이었다. 그러니 평민인 실비아와 결혼한다면 구스타브는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조부는 손자에게 실비아와 헤어질 것을 명령한다. 실비아와 결혼하면 왕세손의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구스타브는 이미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실비아와 결혼해 왕위를 포기하는 것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는 묘안을 낸다. 할아버지에게는 ‘실비아와 결혼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구스타브 입장에서는 다행이었을까? 1973년 구스타브 6세 아돌프 왕이 승하한다. 그리고 구스타브는 왕이 된다. 그는 왕위에 오르면서 왕위계승법을 바꾼다. 평민과 결혼한 사람도 왕이 될 수 있게. 게다가 그는 남녀의 구분 없이 첫째 자녀가 왕위를 이을 수 있도록 한다.

귀천상혼제만 없앴으면 협조하지 않았을 의회는 ‘여성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구스타브 왕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3년 후 독일에 있던 실비아는 드로트닝 궁전의 안주인이 된다.

구스타브 왕은 결국 왕위도,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실비아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는 왕위계승법만 바꾼 게 아니다. 그는 스웨덴 국왕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인 총리 임면권과 법안 승인권을 의회에 내주었다.

 

▲ 현재 스웨덴 국왕과 그의 자녀들. 사진 왼쪽부터 둘째 사위 크리스토퍼 오닐, 둘째 딸 마들레이네 공주, 큰 사위 다니엘 베스틀링, 왕비 실비아, 칼 16세 구스타브, 큰 딸이자 왕위계승권자인 빅토리아 공주, 외아들 칼 필립, 며느리 소피아 헬크비스트.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지만, 1975년까지는 형식적이나마 총리와 내각에 대한 임면권을 국왕이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요식행위이긴 해도 의회가 통과 시킨 법률을 최종 추인하는 권한도 국왕에게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의회로 넘겨줘 총리는 국회의장이 임면권을 갖고, 법률은 의회를 통과하면 곧바로 효력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구스타브는 실비아를 얻기 위해 전 세계 입헌군주국의 국왕 중 가장 권한이 약한 국왕을 자처한 것이다. 이 때 구스타브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구스타브가 왕위에 오른 해 데뷔해 전 세계 팝시장을 뒤흔들었던 아바조차도 ‘칼 16세 구스타브의 아래’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왕위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왕권을 포기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실비아에 대한 사랑은 오랫동안 스웨덴 시민들의 기억을 아름답게 했다. 마치 동화 속의 왕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얼마 전 평창 동계올림픽 때 구스타브 왕은 소리 소문 없이 한국을 찾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영접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도 없었다. 그는 휴가를 내고 국왕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스웨덴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것이다.

스웨덴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 때 ‘정체모를 멋쟁이 서양 할아버지’라며 구스타브 왕의 경기 관람 사진이 한국의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 ‘그 할아버지 알고 보니 스웨덴 왕’이라느니, ‘운동복 입은 저 할아버지 자리가 로열석’이라느니 하는 말들과 함께.

같은 기간 방문한 스웨덴의 외무장관은 정부 전용기를 타고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지만, 구스타브 왕은 핀에어 비즈니스를 타고 조용히 왔다가 갔다. 심지어 방한 기간 동안 구스타브의 경호도 왕가의 공식 경호원이 아닌 국왕이 직접 고용한 최소한의 개인 경호원이 맡았다고 한다. 국비가 아닌 개인 돈으로 고용한.

2014년 SVT를 통해 방송된 구스타브 왕의 성탄 메시지는 강한 울림이 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이 성탄절에 모든 스웨덴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스웨덴에 사는 모든 분들, 여기에서 태어난 분들,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여기에온 분들, 저는 여러분들의 스웨덴에 대한 공헌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스웨덴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고귀한 화합과 상생을 나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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