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푸른 남강이 내게로 왔다
이 봄, 푸른 남강이 내게로 왔다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8.04.06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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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여행스케치> 진주의 4월 빛깔을 찾아서

때는 바야흐로 산천초목이 깨어나는 봄,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경남의 중심지, 진주로 간다. ‘진주라 천리 길’ ‘북평양 남진주’라 했지만 잘 뚫린 고속도로를 타면 금방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학자인 이중환(1690∼1752)은 ‘택리지’에서 진주를 이렇게 평했다.

“지리산 동쪽에 있는 큰 고을이며 장수와 정승이 될 만한 인재가 많이 나왔다. 땅이 기름지고 또 강과 산의 경치가 좋아 사대부는 넉넉한 살림을 자랑한다.”

 

▲ 논개의 넋이 서린 남강 가의 의암

1☞진주 답사 1번지 남강

진주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남강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풍치 뛰어난 진주 답사 1번지다. 남강을 따라 들어선 촉석루, 진주성, 진주박물관 같은 볼거리는 진주의 역사를 웅변해준다. 남강은 예나 이제나 그 도도한 흐름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거니와 진주성과 촉석루를 끼고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 경상남도수목원 산책길

▲ 남강 수변공원

 

남강은 언제 봐도 아름답지만 이슥한 밤, 남강에 비치는 촉석루의 불빛은 은은하면서도 고혹적이다. 매년 가을 유등축제가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촉석루 맞은편의 남강둔치와 진주교, 천수교 등에서 야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망진산 봉수대와 선학산에 오르면 남강을 비롯해 진주시내 전체 야경이 두 눈 가득 펼쳐진다.

 

▲ 남강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유물을 모아놓은 청동기문화박물관
▲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의기사

 

남강을 에두른 진주성은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다. 1차와 2차에 걸쳐 치러진 진주성 전투(임진왜란)에서 진주목사였던 김시민 장군은 왜군과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 전투로 7만 명의 민·관·군이 순국했다. 의로운 죽음을 맞은 이들 가운데 기생 논개도 있었다. 논개는 적장을 안고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투신했다. 논개는 왜장을 껴안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10개 손가락에 가락지를 꼈다고 전한다.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의암’(義巖)이라고 부르고 있다. 의암이 보이는 강가에 서서 유유히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논개의 넋이 손짓하는 듯하다. 촉석루 옆의 사당(義妓祠)에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놓았다.

 

▲ 촉석루와 남강

2☞남강변에 들어선 촉석루와 진주성

진주성(사적 제118호)은 돌로 쌓은 성이다. 어디서 보나 위엄 있게 다가온다. 진주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군데. 성의 중앙에 있는 정문(공북문)과 서쪽 끝에 있는 서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촉석문이 그것이다. 촉석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촉석루가 단정하게 앉아있고 왼쪽으론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남강의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성곽 주변으로 서장대와 북장대 등 누각과 임진왜란의 기록과 유물을 볼 수 있는 국립진주박물관, 김시민 장군 전공비, 호국사, 쌍충사적비, 영남포정사 등이 있어 역사 공부에 제격이다. 진주성 관광안내센터: 055-749-2485

 

▲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 진주성의 공북문

 

진주성 정문인 공북문(북장대) 앞에는 서울의 인사동처럼 골동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600미터 이르는 골목엔 크고 작은 석물과 옹기, 갖가지 모양의 공예품,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등 갖가지 골동품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 선물용으로 사가는 이들도 많다. 골동품과 함께 실크도 진주를 알리는 관광 상품이다. 진주는 일찍이 실크 산업의 중심지로써 130여 개의 견사 업체에서 국내 생산량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진주성 앞 상가 거리와 진주시청 내 특산품 판매점에서 질 좋은 실크를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 진주성 산책길
▲ 경상남도수목원의 습지원
▲ 실크판매장에 전시된 여성옷, 실크로 만들었다.

 

진주의 상징이 된 촉석루는 임진왜란 당시 작전 통제소로 쓰였고,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고려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가 창건한 후 여러 번의 중건 중수를 거쳤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에 병사 남이홍이 예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불탔고, 지금 건물은 1960년에 시민의 성금으로 중건했다. 진주 8경 중 제 1경인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에 든다.

 

▲ 진양호의 푸른 빛

3☞물 맑은 진양호

남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멀리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에서 시작된 덕천강이 만나 만든 진양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 마디로 광활한 인공호수다. 호수 중간 중간에 떠 있는 자그마한 섬은 올망졸망한 다도해의 그것처럼 아름답다. 호수 주변으로 선착장을 비롯해 물홍보전시관, 동물원, 산책로, 호텔, 식당 등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좋은 쉼터 구실을 한다. 특히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기린 등 야생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동물원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진양호는 물안개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새벽녘이나 노을이 깔리는 석양 무렵이 특히 아름답다. 호수 언덕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거대한 호수와 산 뒤로 떨어지는 붉은 빛줄기는 이지러진 마음에 한 줄기 희망을 샘솟게 한다. 운이 좋다면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보트도 볼 수 있고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진양호
▲ 봄이 찾아온 경상남도수목원

 

진양호 전망대 오른편은 양마산 가는 길. 진양호를 옆에 끼고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져 있다. 거개의 사람들은 이 길을 모른 채 전망대를 끝으로 발길을 돌리지만 진양호의 숨은 매력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양마산 정상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진양호는 호수로서는 드물게 물이 맑다. 가파른 절벽과 산으로 둘러싸여 1급수에서 산다는 삵과 수달이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이밖에 수리부엉이, 멧돼지, 노루, 너구리, 중대백로, 왜가리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포유류와 조류들이 진양호에 나타나는 것은 먹이가 풍부하고 호수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삵(살쾡이)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고양잇과 맹수다. 환경부는 삵과 수달이 발견된 진양호 일대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 청동기문화박물관 야외에 전시한 가호동 무덤
▲ 청동기문화박물관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움집

 

진양호를 휘도는 호반도로를 달려보자. 대평교에서 진수대교를 거쳐 대평면 내촌마을-청동기문화박물관까지 연결되는 약 7㎞ 구간의 호수 길(1049번 지방도)은 드라이브 코스로 나무랄 데 없다. 호반도로 끝자락에 있는 청동기문화박물관(055-749-2518)은 남강댐 건설로 수몰된 이 지역의 각종 유물을 발굴, 전시해놓은 곳이다. 청동기시대의 생활상 등을 자세하게 둘러볼 수 있으며 야외에는 움집과 고상창고, 목책, 무덤군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전시돼 있다.

진주 도심에서 마산 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경상남도수목원(055-254-3811)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17만 평의 수목원엔 우리 자생종과 외국 수종 중 보존 가치가 있는 식물 1,5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전시실, 자연 표본실, 생태체험실, 자연학습체험실 등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산림박물관을 비롯해 열대식물원ㆍ수생식물원ㆍ무궁화공원ㆍ 야생동물원 등이 주제별로 꾸며져 있다. 산림박물관 뒤편으로 걸어가면 메타세쿼이아 길이 펼쳐진다. 수목원 입장 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매주 월요일은 휴무.

 

▲ 청곡사

4☞산과 호수를 둔 아름다운 절집

진주엔 1000년 역사(신라시대에 축조)를 가진 자연못이 있다. 월아산(해발 482미터, 달엄산 또는 달음산으로도 불린다)이 병풍처럼 둘러선 금호지가 그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청룡과 황룡이 하늘에서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길을 가던 한 용사가 이것을 보고 “이제 그만 싸움을 멈춰라”고 고함을 치자 청룡이 놀라서 아래로 내려다봤다고 한다. 그 순간 황룡이 청룡의 목을 비수로 찔렀다. 비수에 찔린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로 땅을 치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고, 그곳에 물이 고이면서 저수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금호지의 물이 항상 맑고 푸른 것은 청룡을 닮아서란다.

금호지에서 바라보는 월아산 일출은 진주 8경 중 제7경으로 지정돼 있거니와 풍광이 수려하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진주 사람들은 이를 아산토월(牙山吐月)이라 하여 진주에서 볼 만한 열두 가지 경치 중의 하나로 꼽는다. 여기에 도선국사가 세운 청곡사도 한몫한다. 해인사의 말사인 이 절집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광해군 4년(1612)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에 얽힌 전설도 흥미로운데, 어느 날 도선국사가 진주 남강변에 앉아 있는데, 문득 청학 한 마리가 강 위로 날더니 곧장 월아산 기슭으로 날아가 앉더란다. 청학이 날아가 앉은 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퍼진 것을 직감하고 당나라에서 전수받은 비보설에 따라 이곳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절 들머리에 있는 방학교(訪鶴橋)와 환학루(喚鶴樓, 찾아온 학을 불러들인다는 뜻)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경내 곳곳엔 대숲과 차나무, 동백이 자라고 대웅전을 위시해 설선당·선불장·업경전·나한전·칠성각이 길손을 반긴다. 특히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주심포 목조 팔작집인 대웅전은 경남 서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힌다. 또한 높이 10미터, 폭 5.2미터에 달하는 괘불은 조선 경종 2년(1722) 의겸(義謙)스님이 그린 것이다. 어쨌거나 물빛 고운 저수지와 푸른 산, 아담한 천년고찰이 사람들의 텅 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겠다.

 

▲ 진주성 전투때 처음 선보였다는 진주비빔밥

여행팁(지역번호 055)

♦가는 길=대전통영 고속도로 서진주 나들목으로 빠진다. 일단 진주 시내에 접어들면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부터 20∼50분 간격으로 진주행 고속버스가 다닌다. 전남, 경남(부산) 등지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나들목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진양호행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경상남도수목원은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마산 방면)를 타고 진성 나들목으로 나와 마산방면 국도로 10분 정도 가면 된다. 청동기문화박물관은 진주시내에서 11번 버스 이용. 남해고속도로 문산나들목-금산으로 가는 13번지방도-금산농협 갈전지소-갈전 버스정류장에서 약 1km-청곡사. 진주에서 청곡사 앞을 지나는 버스가 하루 24회 있다.

♦맛집=진주는 볼거리 못지않게 맛집도 즐비하다. 진주성 전투 때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진주비빔밥과 해산물로 육수를 내는 진주냉면이 유명하다. 천황식당(741-2646), 설야(762-0585), 제일식당(741-5591), 하연옥(746-0525)등.

♦숙박=진주 시내에 동방관광호텔(743-0131), 초콜릿호텔(744-5995), 힐튼모텔(744-6060)등 숙박시설이 많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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