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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족(淸族)과 폐족(弊族)

<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4.0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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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무

1801년 귀양살이가 시작되어 길고 긴 18년째를 맞은 1818년 가을, 마침내 다산은 해배 명령이 내려 고향으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신유옥사(辛酉獄事)로 생사를 넘나들며 모진 고문의 국문을 당할 때만 해도,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도 못했고, 귀양살이 동안에도 수시로 다산을 잡아다가 다시 국문하여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끊임없이 이어져,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벗어나기 어렵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다산에게 18년의 독서와 저술의 충분한 기회를 마련해주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다시 만나 75세까지 18년의 노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역적 죄인으로 귀양살이하는 동안, 그 집안이야 당연히 폐족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우리 집안은 폐족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의 신분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길은 단 하나 ‘독서’ 한 가지 뿐이라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내가 앞서 누누이 말했듯이 청족은 비록 독서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저절로 존중받을 수 있으나, 폐족이 되어 세련된 교양이 없으면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남들이 천하게 여기고 세상에서 얕잡아보는 것도 서글픈 일인데 하물며 너희들은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고 얕잡아보고 있으니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p.40)라고 말하였습니다. 남들이 얕잡아 보는 것도 비참한 일인데, 스스로를 천하게 얕잡아본다면 더욱 서글픈 일이니, 아들들을 청족으로 만들어주려는 뜻이 얼마나 간절한 내용인가를 금방 짐작하게 해줍니다.

▲ 다산 정약용

그러면서 독서를 계속하여 학문의 수준이 높아져야만 아버지인 자신에 대한 평가도 올바르게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너희들의 수준이 높아 내 책을 교정하고 정리하여 후세에 전해지게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으로만 내가 평가받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겠느냐?”라고 다그치면서 “공부에 분발하여 내가 이어온 실낱같은 우리 집안의 글하는 전통을 더욱 키우고 번창하게 해보아라. 그러면 세상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될 것은 물론 아무리 대대로 벼슬 높은 집안이라 하더라도 우리 집안의 청귀(淸貴)와는 감히 견줄 수 없을 것이다”(p.41)

역적으로 귀양 사는 아버지 때문에 행여 라도 절망에 빠져 독서와 학문을 포기할까 염려하여 폐족에서 청족으로 변할 수 있는 방법을 그처럼 정확하게 가르쳐 줄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요. 지극 정성의 다산의 뜻이 지금에까지 전해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가르침에 충실히 공부한 학연(學淵)·학유(學游) 두 아들은 참으로 훌륭한 선비로 성장하여 문사(文士)로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학연은 70의 나이에 폐족에서 벗어나 나라에서 학자에게 내리는 벼슬에 올라 청족의 신분을 다시 회복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요. 다산의 뜻은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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