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지지 않는 꽃-꽃길 대신 꽃버선길
“나는 놈한테는 약해. 내한테만 강했어.”
세한에 푸르르고 봄 앞서 꽃등 들어올리는 동백같은 생애였다.
“왜 나를 숭글 디가 없어 여그다가 숭궈 놨나” 싶은 돌밭에서 스스로 일어나앉아 꽃으로 산 그이의 말씀이 향기로운 밭고랑이다.
“오늘 영판 푹허니(포근하니) 좋네.”
일하기 좋은 날이 할매한테는 좋은 날이다.
“우덜은 어매 배깥에 나와서 여태까정 땅에서 살았제. 우리 부모가 일을 갈쳐놔서 일을 허고 살았제. 일허문 재미지단 것도 알고 살았제.”
밭고랑을 타는 김금례(75·무안 일로읍 무령동) 할매의 흙투성이 신발 속으로 꽃버선이 곱다.
“전에는 이런 것이 어딨어. 살다 본께 이라고 끄터리라도 좋은 시상을 만내고 가네. 앞에 돌아가신 어매들이 불쌍허제.”
꽃버선 꿰어신고 밭에 나앉은 오늘을 ‘끄터리라도 좋은 시상’이라 감읍하는 할매.
“내 신 밑에 묻은 흙 찌끄래기만 모탰어도 산 한나는 맹글었을 것이여.”
어제는 흙밭에 일하였으니, 오늘은 말갛게 씻긴 채로 봄볕 아래 쉬어보는 꽃버선. 낡고 해진 자리 꿰매고 잇대었어도 숭얼숭얼 꽃송이 햇살 아래 해사하다.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기를 원하노라’는 신학자 조지 휘트필드의 말을 들은 적은 없어도 어매의 삶이 꼭 이와 같았다.
이미 망가진 것이라 해도, 이미 해진 것이라 해도, 한사코 보듬어 다독거린다. ‘흔헌 것이라곤 없었던 세상’에서 내게 온 모든 것을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온 이의 습성이 그러하다.
일구덕을 저만치 두고 볕바라기 하는 꽃버선, 혹은 ‘버선꽃’.
주인은 오늘도 필경 들에 아니면 뻘에 엎드려 있을 터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