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굶주린 배, 그리고 쌀창고에서의 도둑질①

<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김덕희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4.11 12:5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술버릇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젠 당신 몸도 스스로 추스릴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배고픔의 나날이었다. 집에는 항상 먹을 게 없었다. 다른 집에 가서 밥동냥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물론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름 날의 일이었다. 집에는 이미 쌀이 떨어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술만 드실 뿐 떨어진 양식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나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어느집 쌀 창고를 몰래 열고 쌀을 도둑질해왔다.

우리 마을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삼거리라는 마을의 한 집이었다. 그 근처를 지나다 우연히 커다란 열쇠 한 개를 주운 게 발단이었다. 그 마을에 쌀을 파는 창고가 있었는데 난 호기심에 열쇠를 쥔채 쌀 창고로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운 열쇠를 쌀창고 자물쇠에 끼워보니 자물쇠가 열리는 게 아닌가. 순간 더럭 겁이 났다. 훤한 대낮이었다. 누가 볼까봐 잽싸게 자물쇠를 다시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운 열쇠는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많은 갈등이 일었다. 원인은 물론 배고픔이었다. 하루 세끼는 커녕 하루 한끼도 먹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갈등 끝에 까짓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쌀창고로 가서 자물쇠를 열고 쌀을 퍼와야겠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더욱 심해졌다. 약 2년여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었다. 그 삼거리 쌀창고 주인 아저씨는 쌀장사를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술장사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그 술집의 오랜 단골이었다.

술 마시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그 집 방안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시골의 허름한 술집이다 보니 술 마시는 장소가 따로 있지 않고 주로 방안에서 마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드셨다. 나는 심심해서 방 구석 자그마한 바구니에 들어 있는 실과 바늘을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바늘이 부러지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피니 다행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에게 얘기했다가는 혼이 날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바늘을 훔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도둑을 본 적도 있었다.

눈이 소복이 내린 한 겨울 새벽녘, 옆집 아저씨네가 소를 도둑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온 동네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소와 도둑의 발자국을 쫓았고 결국 그 도둑을 잡을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일들이 자꾸 겹쳐 떠오르면서 나중에 커서 진짜 소도둑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때 아마도 보름 정도는 끙끙 앓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결국은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면서 우리 집에 있는 바늘을 아주머니에게 갖다드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음날 학교 다녀오는 길에 들러서 아주머니에게 사실을 얘기했고 바늘을 드렸다. 아주머니는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 그 생각이 떠오를게 뭐람…. 배는 고프고 저녁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쌀을 훔쳐와야 하는데.

그날 밤, 나는 계속해서 주운 열쇠를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을 했다. 시간이 늦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남들이 다 잘 무렵 집을 나와 쌀창고가 있는 마을로 발걸음을 뗐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삼거리마을까지는 산속에 난 길을 통해 가야 했다. 길을 꼬불꼬불했다. 하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쌀을 퍼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삼거리 쌀집에 도착해서 먼저 주변을 살폈다.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 당직골의 초가집들은 모두 불을 끄고 잠이 든 상태였는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당직골과는 달리 이곳은 이미 전깃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몇몇 집들에서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불빛이 모두 꺼질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쌀창고에서 좀 떨어진 마을 모퉁이 구석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하나 둘씩 불빛이 사라지더니 온 동네가 깜깜한 어둠에 휩싸이자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살금살금 쌀창고로 다가갔다. <다음에 계속>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광고국장 : 황석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