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앉은 자리마다 꽃풍경

<전라도닷컴> 지지 않는 꽃-가변형 에코백 보자기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4.12 15:0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품 넓은 어매만큼 무엇이든 품어 안는 보자기에 꽃 피고 새 날아든다. 나주 영산포장

 

보자기는 자주 저를 비워두고 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보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싸다, 메다, 끼다, 가리다, 덮다, 깔다, 들다, 이다, 차다, 쓰다….

가방과 붙어 다니는 동사가 ‘넣다’ ‘메다’ 등에 국한되는 것에 비하면 보자기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전통 에코백이다. 작게 접어 아무 데나 넣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주섬주섬 싸고 매듭을 지어 묶으면 그만이다.

 

▲ 공력스레 한 땀 한 땀 피워낸 꽃. 만재도
▲ 보따리 위에 놓아둔 소담한 꽃풍경. 나주 영산포장

 

《보자기 인문학》이라는 책을 펴낸 이어령의 보자기 예찬론을 본다.

〈보자기는 어떤 형태, 어떤 시스템이라도 거기에 적응하여 받아들인다. 보자기는 둥근 것도 싸고, 네모난 것도 싼다. 긴 것, 짧은 것,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등 싸는 물건에 따라서 보따리의 형태도 달라진다.〉

폐쇄적으로 금 긋지 않고 칸 막지 않고 무엇이든 융통성있게 유연하게 감싸안는 가변형 보자기는 이 땅 어매들의 성정과 꼭 한가지다.

 

▲ 일확천금이나 대박의 허황된 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보퉁이. 구례 산동장

 

장바닥에, 마루 위에, 방 한켠에 놓인 어매들의 보자기는 흔히 먹거리를 싸고 있거나 덮고 있다. ‘있어 보이는’ 허세나 치장 대신 소담한 꽃무늬를 얹고 있는 것도 꼭 제 주인을 닮았다.

더러는 한 땀 한 땀 꽃수를 놓거나 헝겊을 오려 만든 꽃송이들을 얹은 꽃보자기. 손때 묻어서 살가운 보자기 위에 핀 꽃들은 어매들과 함께 제가 앉은 자리마다 꽃풍경을 짓는다.

 

▲ 밥상 위에 어매가 지은 작은 꽃밭. 정읍 상흑마을
▲ 장차 어느 밭에 푸른 물결이 남실거릴거라는 예고편 같은 씨앗보따리. 남원장

 

<옛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그들은 전쟁을 겪었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땀 흘려 오래 만드는 일을 존중했고 자유를 찾아 싸웠으며 돈을 섬기지 않았다. 그들은 천박하지 않았다. 염치가 있었다. 도리를 알았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

일확천금이나 대박의 허황된 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보따리들. 천리향도 만리향도 아닌 꽃보따리들이 애잔한 향기를 폴폴 지어 올리고 있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광고국장 : 황석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