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지지 않는 꽃-가변형 에코백 보자기
보자기는 자주 저를 비워두고 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보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싸다, 메다, 끼다, 가리다, 덮다, 깔다, 들다, 이다, 차다, 쓰다….
가방과 붙어 다니는 동사가 ‘넣다’ ‘메다’ 등에 국한되는 것에 비하면 보자기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전통 에코백이다. 작게 접어 아무 데나 넣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주섬주섬 싸고 매듭을 지어 묶으면 그만이다.
《보자기 인문학》이라는 책을 펴낸 이어령의 보자기 예찬론을 본다.
〈보자기는 어떤 형태, 어떤 시스템이라도 거기에 적응하여 받아들인다. 보자기는 둥근 것도 싸고, 네모난 것도 싼다. 긴 것, 짧은 것,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등 싸는 물건에 따라서 보따리의 형태도 달라진다.〉
폐쇄적으로 금 긋지 않고 칸 막지 않고 무엇이든 융통성있게 유연하게 감싸안는 가변형 보자기는 이 땅 어매들의 성정과 꼭 한가지다.
장바닥에, 마루 위에, 방 한켠에 놓인 어매들의 보자기는 흔히 먹거리를 싸고 있거나 덮고 있다. ‘있어 보이는’ 허세나 치장 대신 소담한 꽃무늬를 얹고 있는 것도 꼭 제 주인을 닮았다.
더러는 한 땀 한 땀 꽃수를 놓거나 헝겊을 오려 만든 꽃송이들을 얹은 꽃보자기. 손때 묻어서 살가운 보자기 위에 핀 꽃들은 어매들과 함께 제가 앉은 자리마다 꽃풍경을 짓는다.
<옛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그들은 전쟁을 겪었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땀 흘려 오래 만드는 일을 존중했고 자유를 찾아 싸웠으며 돈을 섬기지 않았다. 그들은 천박하지 않았다. 염치가 있었다. 도리를 알았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
일확천금이나 대박의 허황된 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보따리들. 천리향도 만리향도 아닌 꽃보따리들이 애잔한 향기를 폴폴 지어 올리고 있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