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 유동 박시 봉방'에 수선화를 심으리라
'남신의주 유동 박시 봉방'에 수선화를 심으리라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8.04.13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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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바람이 대나무를 흔들어댄다. 바람 든 대나무들이 서로의 몸을 비벼대며 따닥, 따닥 그 무슨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낸다. 보통 바람이 아니다. 봄바람인가 했는데 봄바람 같지도 않다. 바람은 어제도 불어오고 그제도 불어왔다. 그 이전에도 불었으니 아마 내일도, 모레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바람은 대나무들만 흔들어댄 게 아니다. 꽃을 품고 있는 거의 모든 식물들을 바람 나게 해버렸다. 그리하여 금년에는, 꽃들이 일찍도 피어버렸다. 이 꽃, 저 꽃, 온갖 꽃들이 그야말로 앞을 다퉈 한꺼번에 마구 다 피어나는 진풍경이 어디 멀리도 아니고 우리 집 마당에서 매일 벌어졌다.

 

▲ 수선화

 

눈 한 번 깜빡이고 나면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이 환장할 것만 같은 바람 든 계절에 나는 꿈을 꾼다. 날마다 꿈을 꾼다. 아침에도 꿈을 꾸고 한낮에도 꿈을 꾸고 저녁에도 꿈을 꾼다. 봄날의 백일몽이 아니다.

설렌다. 꿈을 꾸고 난 뒤의 내 마음이, 내 정신이, 내 영혼이 설렌다. 아침에도 설레고 한낮에도 설레고 저녁에도 설렌다. 그 바람에 나는 다른 아무 짓도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하지만 기쁘다. 너무 기쁘다.

아, 굶어 죽는다 해도 기쁠 것 같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이런 놈의 세상을 어찌 사람으로 살겠냐고, 어서 빨리 사라져 버려야지 않겠냐고, 비분강개해서 그만 덜컥 자살이라도 해버릴 것 같았던 지난 세월이 눈앞으로 획획 지나간다.

한 사람의 생각이, 한 사람의 힘이, 한 사람의 역량이 이렇게도 대단한 희망을 만들어낼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알았다 해도 관념이었을 뿐 실감할 수는 없었다.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실감할 수 있으랴.

한 사람의 생각이,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치졸하고 나쁘게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경험이 너무 많았다. 멀쩡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들어서 먹고사는 자들이 판을 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희망은 너무 사치스러웠다. 내 옆에서, 내 뒤에서, 내 친구가 무단히 얻어맞고 비명을 지르는 판에 무슨 놈의 희망을 노래할 것인가. 은밀한 폭력이 합법성을 띄고 횡행하는 나라에서 희망은 마약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사치스러운 희망이, 마약이라 치부하고 멀리 밀어내 버렸던 그 희망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나를 꿈꾸게 하고, 나를 설레게 해서, 굶어 죽어도 기쁘겠다는 호언까지 하게 한다.

 

▲ 가녀린...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갠지가 “무릇 소설을 쓰고자 하는 자 굶어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 깊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의 말을 내 말처럼 공감한다. 아마도 희망이란 그런 것일 게다.

‘지금 여기 이것’이 아닌 다른 무엇을 내가 원하고 있고, 그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눈에 보이는 듯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은 대단히 황홀하고 풍성해서 그 자체가 포만감이기 마련이다. 먹고 사는 문제 같은 것은 저 멀리 생각 밖으로 밀려나 버린다.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은 그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어리석은 자는 어쩔 수 없다고 나를 잡아먹을 듯이 나무라겠지만, 하지만 나는 그런 평론 하나도 안 무서워할 것이다. 굶어죽는 것도 안 무서운 판에 어리석다는 평론 따위를 무서워하랴.

따지고 보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쩌고 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유포시킨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들이다. 만약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들 손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노래는 옛날 옛적에 주사파의 세례를 받았다는 둥 집중포화를 받았을 것이다. ‘사랑도 명에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랬듯이 말이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아무 생각도 없이 따라 부르곤 했었다. 통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당연히 몰랐다. 학교에서는 사전 교육도 없이 그저 통일, 통일,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통일은 흡수통일을 원하는 권력자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일종의 이데올로기였던 셈이다. 이데올로기는 대체로 개인의 각성에 의해 혁파되기 마련이지만, 통일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만든 자들을 거꾸로 무너뜨리고 우뚝 솟아오르는 신기한 자생력이 있었다.

 

▲ 물고기를 노리는 고양이 앞의 개나리

 

어쨌든 나는 가고 싶다. 남신의주에 가고 싶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서 다시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는 남신의주가 아니라, 내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나 혹은 자전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 개성을 지나 평양을 거치는 그런 남신의주를 가고 싶다. 가서 시인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 봉방’을 온 몸으로 절절하게 느껴보고 싶기도 하지만, 아무런 목적도 기대도 없이 그냥 가고 싶기도 하다.

사람이 살면 몇 년을 산다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도 못 간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도 가볼 생각을 못 하고 살아온 지난 시절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그런 치 떨리는 세월을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리라.

“야 참, 대단하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야.”

“언제는 나쁜 것들이라고 하더니?”

뉴스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데 내 옆의 그녀가 살짝 눈을 흘긴다.

“나는 김정은 개인을 욕한 게 아니야. 공화국을 표방하면서 왕조 시대처럼 대대로 세습을 하는 그들의 체제가 어이없다는 것이었지.”

 

▲ 미나리아재비와 오글재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북한 체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안다고 말할 만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을 안다고 생각해 왔을 뿐이었다. 안다고 생각해 온 것들도 사실은 하나같이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에서 생산된 뉴스들뿐이었다.

아아 이럴 때가 아니구나.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는 느낌이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통일은 대박’ 어쩌고 하는 말로 통일이라는 가치 자체의 품격을 한없이 떨어트리다 못해 희화화 해버렸던 박근혜의 통일관과 나의 통일관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헷갈렸다. 요즘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툭하면 내로남불, 내로남불 하는데 나야말로 내로남불이나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그들과 다르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 어디 가서 무슨 정보를 새롭게 입수하지? 아니 그보다도, 통일과 관련해서 내가 할 만한 일은 무엇이지?

거대한 숙제 하나를 스스로 발굴해낸 격이었다. 당면한 통일 과제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박태기

 

그러나 어려웠다. 너무 어려웠다. 나는 너무나 작고, 통일은 너무나 크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스스로 끝장내지 못한 후유증을 칠십 년도 넘게 앓고 있는 이 엄연한 사태 앞에서, 통일 과제마저 외세의 적극적인 개입을 허용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무엇이 될 것인가.

날아다니는 나비와도 같이, 지저귀는 새들과도 같이, 꿈인 듯이 생시인 듯이, 허청허청 마당을 서성거리며 온갖 생각에 공상에 망상까지 거듭하기를 며칠이나 했던가. 어느 하루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아저씨, 저 꽃구경 좀 할게요.”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었다. 어쩌면 꿈을 꾼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녀의 모습은 꿈속 같았다. 무슨 특징이 있어서 꿈속처럼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돌연한 출현이 나는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녀를 보면서도 실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그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벌써 몇 시간째나 마당에 있었거늘, 마당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를 발견한 것이니 이게 무슨 꿈속 같은 일인가 말이다. 어쨌든 나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꽃구경 왔다는 그녀의 말에 응대를 할 수 있었다.

“꽃이야 뭐 다 시들어 버려서, 볼 게 있어야죠.”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러면서 그녀는 이 꽃, 저 꽃, 온갖 꽃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그녀는 구경 잘 했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마당을 빠져나갔다. 알고 보니 그녀는 출근 중이었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요양원에서 야간 근무를 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 애기똥풀

 

짐작컨대 그 아주머니가 매일 우리 집 옆 골목을 지나면서 마당에 핀 수선화를 보았던 모양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 가까이를 수선화 구경하는 재미로 자동차는 마을회관 앞에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갔다. 그런데 이제 수선화가 시들어 가니, 그녀의 마음에 그 무슨 애달픔 같은 것이 생겼다. 그 애달픔이 그녀로 하여금 아무 생각도 없이 남의 집 마당으로 쓱 들어가게 한 것이었다.

“아, 이것이다.”

그녀가 돌아간 지 십 분도 채 안 돼서 나는 탄성을 질렀다. 수선화를 길러야겠다. 수선화를 부지런히 번식시켜서, 통일이 되면 그날 수선화 알뿌리를 쌀포대에 담아 자동차에 싣고 남신의주에 가서 심어야겠다.

우리 집 마당의 수선화는 보통 수선화가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족보가 있는 수선화인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서 피고 지는 수많은 꽃들 중에 그 이력을, 족보를 내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수선화가 유일하다.

다른 꽃들은 원예 전문가들에게서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니 내가 그 태생을 알 수 없지만, 수선화는 외할머니께서 주신 알뿌리 십여 개를 내가 기르고, 내가 객지로 나간 뒤에는 어머니가 기르고, 내가 다시 돌아온 뒤에는 내가 다시 기르기 시작한 것이니, 그 족보와 내력을 나만큼이나 깊이 있게 그리고 절절하게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 의기양양한...

 

그 세월이 물경 사십 년도 훨씬 넘었다. 사십여 년 전에 십여 개였던 수선화 알뿌리가 지금 몇 개나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뭉뚱그려서 엄청나게 많아졌다. 엄청나게 많아진 이유는 간단하다. 심어놓고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해마다 포기 나눔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매년 봄이면 수선화 포기 나눔하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더랬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그런 재미도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세월이 육 년이었다. 육 년 동안이나 포기 나눔을 안 해주니 수선화는 알뿌리만 엄청나게 많아졌을 뿐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새로 생긴 알뿌리가 공간 확보를 못해서 덩치를 키우지 못하니 꽃도 못 피어내는 것이다.

물론 나도 눈은 있어서, 매년 봄이면 생각을 하곤 했었다. 저 녀석들 포기 나눔을 해줘야 할 텐데, 할 텐데, 생각만 했을 뿐 실행은 못 했다. 일단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많은 것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캐서 새로 심는단 말인가.

그랬던 내가 이제, 엄두가 났다. 저 많은 수선화 알뿌리를 일일이 다 캐서 새로 심어주면, 내년에는 지금보다 최소한 삼십 퍼센트는 많아질 것이고, 그리고 내후년에는 지금보다 최소한 구십 퍼센트는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수선화 알뿌리를 자동차에 태우고 임진강을 건너 개성을 지나 평양을 거쳐 ‘남신의주 유동 박시 봉방’ 그 어드메쯤에 심으리라.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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