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에세이> 금강초롱꽃 이야기

▲ 금강초롱꽃

금강산의 최고 봉우리, 비로봉을 아시는지요?

하늘에 닿을 듯 층층이 솟은 바위벼랑이 창끝을 묶어세운 듯, 긴 칼을 거꾸로 박아 놓은 듯 송곳처럼 뾰족뾰족하게 생긴 금사다리, 은사다리를 지나면 마침내 금강산 최고 봉우리인 비로봉에 닿게 됩니다.

아직은 갈 수 없는 곳.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곳. 비로봉을 껴안고 있는 내금강은 사철 절경이지요.

비로봉 정상에서는 금강산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암소 등처럼 휘어진 갖가지 봉우리들과 계곡들, 그리고 해금강과 쪽빛 동해 바다까지 가슴 가득 안겨오지요.

비로봉이 거느린 수많은 봉우리들. 이를테면 북쪽의 옥녀봉 상등봉 온정령 오봉 금수봉, 남쪽의 월출봉 일출봉 차일봉 호룡봉 국사봉 등이 보여주는 기묘한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외금강이 웅장하고 기발하며 억세고 강인한 산악미를 자랑한다면 내금강은 푸른 융단 같은 소와 눈발 같은 폭포들로 계곡미가 넘친다고 할까요.

개울이 온통 폭포와 소로 이뤄진 만폭동은 물소리가 골 안을 가득 메워 귀가 멍멍할 지경입니다.

잣나무 전나무 소나무 측백나무들이 우거진 설옥동의 설옥담과 황옥담에는 산봉우리들과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나무숲과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내고요.

내금강에는 고구려 때 7미터 높이의 절벽에 구리기둥 하나로 받쳐 지은 단칸 보덕암, 푸른 학이 깃들여 살았다는 청학대와 다섯 선녀가 내렸다는 오선대, 나무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표훈사 등등 역사 유물, 유적들도 즐비하답니다.

 

▲ 국립수목원제공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천만년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긴 층층 바위가 조각상처럼 서있는 망군대하며 아득한 바위절벽이 겹겹이 솟아 있는 백운대는 또 어떻고요. 아침에는 흰구름이 흩어지고 저녁에는 흰구름이 모여 든다는 백운대는 흰구름과 흰학이 어울려 노는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지요.

예로부터 백운대에 오르지 않고서는 내금강을 보았다는 말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목 사이사이로 화사한 모습을 드러낸 꽃들의 자태가 연지 찍고 시집가는 산골처녀의 볼처럼 수줍어 보이며.

금강산 줄기의 최남단에 자리한 백마봉 마루! 골 안이 깊고 아늑해 신선이 사는 곳 같다는 영원골의 기운을 받아서일까요. 백마봉 마루의 여름은 유난히 생기 있고 찬란하답니다.

내금강은 꽃이 있어 더 아름답습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 금강산에서 자란다는 금강초롱꽃에 관한 것입니다.

금강산에서만 자라고 초롱처럼 생겨 금강초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꽃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옛날 금강산 비로봉 밑에 부모를 잃은 다정한 오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오빠는 재주가 많은 석공이었습니다. 그는 바위들을 다듬어 금강산을 천하의 명산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년 후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사랑하는 동생과 헤어져 금강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 국립수목원제공

 

달이 가고 해가 지나 어느덧 3년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오빠가 좋아하는 산나물로 음식을 만들고 집도 알뜰히 거두면서 오빠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빠가 돌아오다 길을 잃고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게 아닐까?’

소녀는 내심 걱정이 돼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아침, 소녀는 오빠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오빠! 오빠!”

금강산 봉우리와 계곡마다에는 오빠를 찾는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오빠를 찾아 이산 저산 헤매다 보니 어느 새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아 , 이럴 때 초롱불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발을 구르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녀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초롱처럼 생긴 고운 꽃이 피어나는 게 아니겠어요. 소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초롱꽃은 빨간 불빛으로 어둠을 밝혀 주었습니다.

소녀는 너무도 기뻐 꽃송이를 꺾어들고 불빛을 따라 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듬더듬 걸어갔을 때였습니다. 저만큼 바위 밑에 오빠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오빠! 오빠!”

소녀는 오빠를 붙잡고 애타게 소리쳐 불렀으나 오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소녀가 들고 왔던 초롱꽃에서 향기가 풍겨 나오더니 오빠가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네가 어떻게 왔니?”

오빠는 너무 기뻐 동생을 얼싸 안았습니다.

“오빠, 이 초롱꽃이 오빠를 찾아내고 살려 주었어요.”

소녀는 오빠에게 그간의 일을 다 들려주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구나. 초롱꽃이 날 살려내다니.”

소녀는 오빠의 손을 잡고 무사히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후 오누이는 금강산을 구경 온 사람들이 길을 잃거나 지치면 이 꽃을 꺾어 들라고 산 곳곳에 초롱꽃을 심고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바로 금강산을 아끼고 사랑해온 오누이의 아름다운 마음이 꽃으로 피어나 금강초롱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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