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배, 그리고 쌀창고에서의 도둑질 ②
굶주린 배, 그리고 쌀창고에서의 도둑질 ②
  • 김덕희
  • 승인 2018.04.1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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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밤 12시가 넘자 동네 집들의 불빛이 하나, 둘 씩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드디어 온동네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난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 뒤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살금 살금 기다시피 쌀 창고로 다가갔다. 최대한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신경을 썼다. 자연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마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덜컥 겁이 났다. 창고 앞에 간신히 도착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낮에 주운 열쇠를 꺼냈다.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최대한 조심스럽게 창고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끼워넣어 돌렸다.

어렵지 않게 자물쇠가 열렸다. 문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등도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문이 열렸다. 난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핀 뒤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안을 칠흑 같이 어두웠다. 창고문을 닫았다. 그리고 집에서 미리 준비해 온 조그마한 자루를 품안에서 꺼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창고안을 나는 손으로 더듬으며 쌀자루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아뿔사, 발에 무엇인가가 걸려 넘어져버린 것이다.

 

 

그 때 마침 밖에서 사람 기침소리가 들렸다. 쌀 집 주인이 오는 걸로 생각한 나는 덜컥 겁에 질렸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밖의 동향을 살폈다. 기침소리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두런거리며 창고 앞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다행히도 창고 안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얘기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놀러갔다가 김일 선수가 하는 레슬링 시합을 보고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쌀 창고에서 멀어져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겁에 질려 움쭉달싹을 못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쌀 창고 주인이 나타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창고를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일단은 배가 너무 고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눈에 선했다.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나는 다시 창고안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신히 이미 뜯어져 있는 쌀가마니 하나를 찾았다. 나는 얼른 집에서 가져온 쌀자루를 한 손으로 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쌀을 퍼담았다. 그런데 많이 퍼 담을 수가 없었다. 손이 떨렸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손으로 대여섯번은 퍼담은 것 같다. 퍼 담는 과정중에 쌀이 자꾸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 것도 심약한 나의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 요인이다.

난 더 이상 퍼담는 것을 중단하고 쌀자루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창고의 자물쇠도 다시 잠궈놓지 않은 채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저 그 마을에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집을 향해 캄캄한 밤길을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삼거리에서 당직골로 올라오는 울퉁불퉁하게 파인 길에서 몇차례 넘어지기도 했지만 아픔을 느낄 수도 없었다. 집에까지 오는 길이 마치 몇십리는 족히 되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여전히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훔쳐온 쌀을 아버지가 찾지 못할 곳에 몰래 감추어놓았다. 아버지에게 들켰다간 몽둥이 찜질을 당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소풍 때 일이다. 학교 근처 칠장산으로 소풍을 갔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무 것도 준비해주지 않았다. 난 하는 수 없이 아버지가 잠 든 사이에 아버지 지갑에서 50원을 꺼냈다. 소풍을 가서 이것저것을 사먹고 나니 20원이 남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다시 아버지 지갑에 남은 돈 20원을 넣어두었다. 당연히 아버지가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내 몸이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옆엔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계셨다.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갑에서 돈을 도둑질해갔다고 하시며 마치 죽일 것처럼 무섭게 나를 때리셨다.

난 너무 무서웠고, 또 아팠다. 얼마나 크게 울어댔던지 울음소리에 잠을 깬 이웃집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실 정도였다. 아저씨는 내가 거꾸로 매달려 매를 맞고 있는 광경을 보시고는 아버지를 뜯어 말리셨다. 아저씨만 아니었다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런 이유로 난 그날 밤 훔쳐 온 쌀을 아버지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집을 비울 때 난 그 쌀로 혼자 몰래 밥을 해먹곤 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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