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힘없는 민중만 스스로 역사의 희생양 되어
세월호, 힘없는 민중만 스스로 역사의 희생양 되어
  • 가톨릭일꾼 유대칠
  • 승인 2018.04.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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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유대칠 칼럼

억울한 죽음이다. 말로 담을 수 없는 너무 슬픈 죽음이다. 어찌 표현할 상상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그런 큰 슬픔이다. 그렇게 큰 슬픔인데 슬퍼하지 말라 한다. 이제 그만하라 한다. 참 잔인하다. 마음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슬프고 슬펐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남은 이에게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슬픔을 막을 수 있고 해결 할 수 있었던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저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 소리내기에 바쁘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너무나 당당하게 남의 탓이라 한다. 심지어 그 깊은 슬픔을 모독한다. 이런 중에도 힘없고 배운 것 없는 이 땅의 민중은 마치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양 슬퍼한다. 슬퍼하지 마라며 온갖 모욕을 주어도 슬퍼한다. 슬퍼하지 않기에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한 산 자들의 마음이 촛불이 된 것은 아닐까? 함석헌의 말이 떠오른다.

 

▲ 오른쪽 두번째가 함석헌옹

 

“세력 있는 자는 힘으로 짐을 떠넘기고 지식인은 교묘하게 짐을 떠넘긴다. 서로 짐을 떠넘기는 세상에서 짐은 갈수록 불어난다. 못난이, 힘없는 이, 착한 씨알들만 짐을 넘길 줄 모르고 진다. 짐을 짐으로써만 역사와 사회는 구원된다.”(함석헌)

맞는 말이다. 그 큰 슬픔에서도 힘과 지식을 가진 이들은 짐을 떠넘기기 바빴다. 힘을 가진 자들은 그 힘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떠넘겼다. 지식을 가진 자들은 그 지식의 교묘한 언변으로 그 무거운 짐을 떠넘겼다. 그러나 힘없는 민중은 달랐다. 떠넘기지 않았다. 스스로 그 무거운 역사의 짐을 받아들었다. 민중은 스스로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힘든 고통을 이겨내는 짐꾼, 역사의 주체가 되었다.

이런 민중이 ‘씨알’이다. 함석헌이 이야기하는 바로 그 씨알이다. 씨알은 남에게 역사와 자기 존재의 짐을 미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 자랑으로 스스로를 치장하지 않는다. 잎과 꽃 그리고 열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동안 씨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의 모든 존재를 바친다. 그 헌신으로 전체 생명을 살게 한다. 살아 있게 한다. 미루지 않는다. 역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기 고통과 고난을 미루지 않고 그 짐을 담담하게 이겨내는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그럼으로 전체를 살리는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존재가 된다는 말은 역사의 승리를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바치는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함석헌은 예수를 ‘너’를 ‘나’라고 부른 이라 했다. ‘너’의 아픔을 그냥 남의 것으로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를 ‘나’라고 한 이에게 ‘너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 된다. 세월호의 아픔이 그냥 너라는 남의 아픔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깊은 너의 아픔 앞에서 부끄럽다.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고 기꺼이 촛불을 든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권력으로 저들의 것이라 미루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지식으로 미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모독하지도 않고, 그 아픔 앞에서 계산기를 들며 추악한 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어찌 보면 남인 그 남의 아픔을 그냥 남의 것이라며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남의 아픔을 두고 너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고 우리의 아픔이라며 안아들기 때문이다. 씨알이란 이러한 것이다. 아픔을 외롭게 두지 않고 부끄러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역사의 그 짐을 피하지 않음이다.

 

 

세월호의 슬픔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역사의 짐을 피하지 않은 씨알의 촛불이 일어났다. 그 촛불의 빛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는 부끄럽지 않으려는 씨알의 촛불은 온 세계가 지켜 볼 만큼 강했다. 그 빛은 다시 민중 자신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임을 알렸다. 스스로 씨알의 힘을 경험하게 되었다. 역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고 더욱 더 단단한 역사적 결단을 내리는 역사 주체의 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해결해줄 힘은 바로 민중 자신임을 말이다. 어느 날 등장한 영웅이 아니다. 힘과 지식을 가진 또 다른 어떤 영웅이 아니다. 영웅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민중 바로 자신, 씨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은 자기 자신, 바로 민중이란 씨알만이 부끄러움을 덜어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의 부끄러움이 싫어 든 촛불은 이제 시작이다. 여전히 우린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아직도 역사의 주체로 마주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더 많은 일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말 이제 겨우 시작이다. 세월호 앞에서 우린 아직 더 많이 아파해야한다. 그리고 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더 많이 말이다. 어쩌면 그 깊음이 더 깊을수록 우리의 운명도 달라질지 모르니 말이다.

기억해야 한다. 절대 이 짐을 힘으로 지식으로 미루지 말고 온전히 받아드려야 한다. 우리 역사의 많은 비극 우린 보았다. 우리 민중이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그들은 살아나고 역사는 다시 비극의 시간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말이다. 힘든 일이다. 그러나 역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이런 힘든 고난의 여정이며, 이 여정으로 우린 진정 역사의 주체로 살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기억하고 기억하자.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하자. 분노하고 분노하자. 이 역사의 짐을 절대 미루지 말자. 절대.

<유대칠 님은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면서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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