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도 위험

따스한 봄바람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는 여전히 차갑다. 은행권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이미 50조원을 넘겼다.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어 상환 능력 여부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전체적인 가계부채는 1450조원을 넘겼다. 이중 5대 은행의 지난달 전세대출 누적 규모는 50조 771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자영업자 대출도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비상등이 켜진 가계부채 문제를 점검해 봤다.

 

 

전세자금대출 문제가 심상치 않다.

5대 은행의 누적 규모만 50조 7712억원이다. 여기에 제2금융권과 사금융권까지 합하면 부피는 더욱 클 전망이다. 은행권의 경우 전월대비 1조 7706억원(3.61%)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무려 40.99%인 24조 3194억원이 늘어났다.

1분기에만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5조786억원 증가하며 올해 들어 급증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맞춰 전세자금대출 금리도 최근 들어 오름세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지난 4월 중순 전세대출 금리는 연 3.4%로 지난달 연 3.05%에서 0.35% 올랐다.

농협은행도 3월 연 3.31%에서 4월 연 3.34%로 0.03% 소폭 증가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기간 연 2.9%에서 연 3.28%로 올랐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지난달 2.99%에서 이번달 3.01%로 올랐다.

하나은행과 카카오뱅크가 2%대 금리를 간신히 유지해 왔지만 모두 오르면서 더 이상 2%대 금리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풍선 효과·메기 효과

전문가들은 전세대출 총량이 늘어난 것에 대해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를 꼽는다. 이로 인한 풍선효과라는 것이다.

신DTI(총부채상환비율),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등을 도입하면서 주택담보대출를 받기가 어려워진 탓에 보다 대출이 용이한 전세자금대출로 수요가 옮겨갔다는 얘기다. 전세자금대출 금리 인상은 카카오뱅크의 메기효과가 사라진 영향도 없지 않다.

지난 1월 카카오뱅크는 100% 비대면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내놓았다. 그러자 다른 시중은행들도 경쟁적으로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이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상품을 연이어 내놓는 등 카카오뱅크의 전월세대출 서비스를 따라잡으면서 금리는 다시 올랐다.

이처럼 증가한 전세자금대출은 가계 빚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리나라 가계신용 총액은 지난해 말 1450조 8939억원을 기록해 9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나는 등 경보음이 울렸다.

집값이 하락세로 바뀌고 있지만 전세자금대출이 늘고 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신호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더구나 1분기에만 5조 786억원 늘었다. 이전까지 분기별 증가액이 4조원을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전세자금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월 6.93%이던 전세자금대출 비중은 올 3월 9.49%로 2.56% 높아졌다.

전세자금대출 급증과 관련 은행권에서는 금리 상승과 월세의 전세 전환 증가 영향으로 풀이하고 있다. 저금리일 때는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월세를 선호하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전세금을 받아 여기저기 투자하고자 하는 수요가 커진다는게 은행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한국은행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빚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9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70%)를 크게 웃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가계부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곪는 것이어서 경제위기 발발 시 어떤 대책을 써도 잘 먹히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버린 원인도 그 기저에는 가계부채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이 4주 연속 하락하는 등 집값 하락세까지 겹치고 있는 것도 이상징후다. 집값 하락이 더욱 가속화하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자금 여력이 없는 개인은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집값이 전세금보다 낮아지는 ‘깡통 전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입장이다. 전세자금대출이 실수요 자금이라 부실 위험이 낮기 때문에 당장 규제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경우 상환능력이 양호한 소득 상위 40% 계층의 비중이 전체의 70%나 된다”며 “주택담보대출 위주여서 가계부채 부실화나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고 담보도 뒷받침된 만큼 이들이 원리금을 못 갚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정부측 주장이다.

하지만 고소득층 주택 대출에 집중된 가계부채 구조가 오히려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없지 않다.

한은의 ‘계간 경제분석’에 따르면 국내 가계부채의 고소득층 집중 현상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박기영 연세대 교수와 김수현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01∼2015년 한국노동패널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가 진 빚이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24.1%에서 2015년 33.3%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위 20% 가구의 부채 비중은 22.6%에서 10.9%로 감소했다.

논문은 “고소득 계층은 부채가 크게 늘어난 반면 저소득층은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면서 소득별 가계부채 분포가 더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집을 사기 위해, 저소득층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각 돈을 빌리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면 하우스푸어가 양산되는 등 고소득층 중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은 부동산경제와 가계부채 문제다. 전세자금대출은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가계부채의 뜨거운 뇌관으로 떠오른 전세자금대출 문제가 탈출구를 통해 연착륙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