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통신> 남북 정상 얼싸안던 날 잠 못 이룬 스웨덴

▲ 손 맞잡고 번쩍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김정은이 남한으로 역사적인 발걸음을 떼었다(Kim Jong-Un tog historiskt steg in i Sydkorea).” -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

“놀라운 김정은이 국경을 넘었다(Förbluffande Kim Jong-Un tog i hand över gränsen).” -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anska Dagbladet)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손에 손을 잡고 국경을 넘었다(Nord- och Sydkoreas ledare gick hand i hand över gränsen).” - TV4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예상보다 더 파격적인 역사에 스웨덴도 깜짝 놀랐다.

지난 27일 새벽 2시 29분,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27일 오전 9시 29분. 잠들지 않은 스웨덴 시민들은 8000km 떨어진 한반도의 배꼽 ‘판문점’에서 벌어진 ‘희대의 드라마’ 한 편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스웨덴의 주요 언론들도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국무위원장을 맞는 장면을 일제히 보도했다.

진보성향이며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N)는 “김정은이 남한으로 역사적인 발걸음을 떼었다”고 보도했다. DN은 특히 남한으로 넘어온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한으로 다시 넘어가는 장면에 대해 “21세기 가장 인상적인 정치 이벤트”라고 극찬했다.

DN의 토르뵈른 페테르손 특파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을 때 그들은 마치 형제처럼 보였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페테르손 특파원은 남북정상회담이 시작하기도 전, 서로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미 이들은 가족과 같은 관계였다고 언급하며 남북정상회담이 긍정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왼쪽)와 다겐스 뉘헤테르 등 스웨덴의 주요 신문들은 앞다퉈 남북정상회담에 임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집중 조명했다.

 

DN에 이어 스웨덴 양대 조간신문으로 일컬어지는 보수 신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D)는 김 위원장에 대해 ‘놀라운, 굉장한(Förbluffande)’이라고 수식하며 그가 북한 최고 지도자들 중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은 것을 대서특필했다.

스웨덴 최대 미디어 그룹인 보니어 그룹에서 운영하는 방송사인 TV4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을 특별히 비중 있게 보도했다. 특히 남한으로 넘어와 문 대통령과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던 김 위원장이 갑자기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다시 북한 지역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온 것을 놓고 TV4의 앵커는 “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 위원장의 뛰어난 재치가 회담의 성공을 예감시켰다”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날이 밝고 스웨덴에 아침이 밝아오면서 언론들의 논조는 더욱 격앙되기 시작했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함께 나무를 심고,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자연스러운 단독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모습에 대해 흥분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두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악수와 포옹을 한 후 기자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할 때는 마치 자기들 일인 양 감정이 고조됐다.

스웨덴 국영방송 SVT는 “남북한이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군축에 동의했다(Nord- och Sydkorea överens om mål för nedrustning av kärnvapnen på koreanska halvön)”고 보도했다.

SVT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섀넌 키일(Shannon Kile)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남북의)금요일 정상회담의 흥미로운 결과는 양쪽이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Ett troligt resultat av toppmötet på fredagen är att parterna kommer meddela att kriget är över)”이라고 보도했다. 한반도에서의 종전 선언을 의미한 것이다.

 

▲ 스웨덴 공영 방송인 SVT(왼쪽)을 비롯해 TV4 등은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보도했다.

 

DN의 기사 제목이 특히 눈에 띈다. DN은 헤드라인 제목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포옹으로 바뀌었다(Krigshot har bytts mot kramkalas på Koreahalvön)”였다.

DN은 “역사적인 회의에서 북한과 남한은 한반도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하기로 합의했다. 연말까지 한국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전이 선언될 것이다. 평화가 휴전을 대체한다”고 보도했다. 또 “북한 최고 지도자가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급부상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더욱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없게 됐다”며 북․미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역사적인 회담이 끝나갈 무렵, 스웨덴 한인 사회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미 지난 밤 한숨도 자지 않고 양 정상의 첫 만남부터 보도다리 단독회담, 그리고 판문점 선언까지를 지켜봤다는 한국 교민 김호성 씨는 “혼자서 울다가 박수치다가, 또 울다가 파안대소하다가 정말 미친 사람이 된 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정말 그 순간 순간들 미쳐도 좋았다”고 회담을 지켜본 소회를 밝혔다.

스스로를 ‘서태지 세대’라고 부르는 장현성 씨는 “남북한의 정상 부부들이 만찬을 끝내고 평화의 집 앞마당에 나올 때 울려 퍼지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를 듣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며 “함께 중국에서 공부했던 북한의 친구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들도 나와 똑같이 흥분하고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친구 덕에 한국어를 조금 하는 스웨덴 대학원생 에릭은 “여자 친구와 함께 한국 TV를 보는데, ‘조금 더 있으면 한국인인 여자 친구와 함께 평양 여행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얘기했다. 이미 평양을 3번 다녀온 경험이 있는 에릭은 “그들의 말 한 마디도 못하는 나도 3번이나 다녀온 평양을 그들과 같은 언어를 쓰는 여자 친구가 갈 수 없다는 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결국 그 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 믿게 됐다”고 덧붙였다.

스웨덴은 서방 세계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그리고 스톡홀름 한복판에는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이 공존하고, 스톡홀름의 한식당에서는 우연히 남북한의 주민들이 조우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스웨덴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남북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였고, 또 그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더 큰 감흥을 받았을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이석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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