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스웨덴의 대학교들⓵’ 북유럽 최고의 명문 웁살라 대학교 / 이석원

옛 스웨덴의 영광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고도(古都) 웁살라(Uppsala). 그 웁살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퓌리스(Fyris) 강은, 사실 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그마하다. 총 길이가 60km 남짓이고, 웁살라 시내를 관통하는 구간에서 가장 넓은 강폭이라고 해봐야 50여m 남짓. 퓌리스를 강이라고 한다면 서울의 중량천은 차라리 바다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퓌리스 강은, 어쩌면 스웨덴을 있게 한 아주 중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고고학자들 중에는 초기 퓌리스 강변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들의 후손이 스웨덴 바이킹의 원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웁살라 대학교 본부 건물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미나. 웁살라 대학교는 스웨덴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퓌리스 강은 지금의 웁살라에서 시작해 고작 60여 km를 흘러내리다가 에콜른(Ekoln)이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에콜른 호수에 모였던 물은 다시 더 남쪽으로 흘러 지금의 스톡홀름을 이루는 멜라렌 호수를 형성하고, 이 물은 그대로 발트해에 이른다.

초기 웁살라에 정착한 스웨덴의 선조들은 물길을 따라 스톡홀름으로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고, 이는 중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교역하는 길이 됐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그리고 1523년 덴마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 국가를 이루며 수도를 스톡홀름으로 옮기기 전까지 웁살라는 스웨덴의 수도였다. 정치 경제 뿐 아니라 학문과 정신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이는 웁살라 인근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에 있는 고분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웁살라가 스웨덴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웁살라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웁살라 대학교(Uppsala Universitet) 때문이다.

웁살라가 유의미한 도시로의 모습을 갖춘 것은 1164년. 기독교 대주교구가 처음으로 이 곳에 설치되면서부터 웁살라는 스웨덴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가 된다. 물론 1397년 칼마르(Kalmar) 동맹을 통해 스웨덴의 완전한 독립국으로의 지위가 덴마크에 의해 제한되면서부터 웁살라의 영광이 다소 퇴색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웁살라는 스웨덴 왕국의 중심이었다.

그러던 1477년, 당시 웁살라의 대주교 야콥 울브손에 의해 웁살라 대학교가 설립된다. 이는 북유럽 최초의 대학이다. 그리고 이후 웁살라는 교회가 중심이 되는 도시에서 대학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변모한다.

처음 기독교의 확산에 따른 사제 양성의 필요성 때문에 설립된 웁살라 대학교지만, 이후 신학, 법학, 철학, 의학 이렇게 4개의 학부가 생기면서 유럽에서 최고 명성의 대학으로 발전한다. 그러다가 1620년 대 구스타브 아돌프 왕 때에 이르러 웁살라 대학교는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30년 전쟁을 통해 북유럽 지역의 광활한 영토를 확장한 구스타브 아돌프 왕이 점령 지역의 유능한 행정 관료를 양성하기 위해 웁살라 대학교에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한 것이다.

생물분류법인 이명법을 개발한 식물학자 칼 폰 린네를 배출한 웁살라 대학교는 자연과학과 의학 등의 획기적 업적을 쌓았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무려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

 

▲ 웁살라 대학교 중앙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는 스웨덴은 물론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도서관이다. 이곳은 4세기 울필라 주교가 성경 복음서를 고트어로 번역한 것 중 유일한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알려진 미셀 푸코는 1961년 웁살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이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이 카롤리나 레디비바(Carolina Rediviva)에서 위대한 저서인 ‘광기와 비이성 - 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를 집필한다. 이는 칼 마르크스가 대영 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집필한 것과 비교해서 이야기 되고는 한다.

그런데 굳이 남의 나라 대학교의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웁살라 대학교가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북유럽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현재 웁살라 대학교에는 교환학생을 비롯해 학사와 석사 과정에 있는 한국 유학생이 300 여명이 넘는다. 웁살라 대학교는 서울대를 비롯해 카이스트와 연세대 한양대 단국대 등 10여개 우리의 대학교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맺고 있다.

무엇보다도 웁살라 대학교는 몇 개의 전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공은 스웨덴어가 아닌 영어 강의가 이뤄진다. 그래서 웁살라 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전체 학생 2만4000여 명 중 절반가량이 세계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이들 속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유럽 최고 수준의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한다. 사실 한국 내 대학이나 기업들이 아직까지는 유럽의 우수한 대학교 유학생보다 미국의 그저 그런 대학교 유학생들을 더 인정하는 탓에 웁살라 대학교에서 공부한 한국 젊은이들의 국내 진출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보는 유럽 대학의 관계자들은 안타까워한다. 우수한 한국의 인재들이 좋은 공부를 하고도 자기 나라에서 써먹을 길이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해.

하지만 그래도 웁살라 대학교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관심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또 웁살라 대학교에서 매년 실시되는 취업 박람회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젊은이들에게 스웨덴과 유럽으로의 취업의 길을 열어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

스웨덴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지만 인구가 20만 명이 채 안되는 웁살라는 말 그대로 대학 도시다. 도시를 구성하는 인구의 상당수가 웁살라 대학교 학생이거나 교직원, 또는 웁살라 대학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여러 연구소 멤버들이다. 그런 웁살라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은 수도인 스톡홀름에서 만나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 웁살라 대학교 본부 강당 입구 머리에 쓰인 싯구 ‘자유로운 사고는 위대하다, 그러나 올바른 사고는 더 위대하다’

 

‘Tänka fritt är stort, men tänka rätt är större.’

웁살라 대학교 본부 대강당 입구 난간에 적힌 말이다. 18세기 웁살라 대학교를 졸업한 시인 트릴드의 싯구다. ‘자유로운 사고는 위대하다, 그러나 올바른 사고는 더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언뜻 비교법으로 ‘자유로운 사고’보다 ‘올바른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하지만 웁살라 대학교의 학생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올바른 사고’ 둘 다 위대하고 중요하다고 읽는다. 자유롭게 사고하되 올바른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격문으로 이해한다.

‘자유로운 사고’와 ‘올바른 사고’ 모두에 목마른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다른 것은 다 잊고 담아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분단 70년이 넘어 비로소 맞이하는 대화합의 한반도에서 이 말 하나만은 가져갔으면 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올바르게 하며 통일의 시대를 설계하기를.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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