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논어』에서 공자는 제자 자하(子夏)에게 “너는 군자인 선비(君子儒)가 되어야지 소인인 선비(小人儒)가 되어서는 안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선비라면 모두 훌륭한 학자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거기에도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다니 선비가 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주자(朱子)는 “선비란 학자를 일컫는 말이다”라고 했는데, 다산은 “선비란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뉘앙스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도를 배우는 사람(學道之人)의 학습하는 일은 시(詩)·서(書)·예(禮)·악(樂)·전장(典章)·법도(法度)라고 풀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학습하면서 그 마음이 도(道)를 위하는 사람은 군자의 선비이지만, 그 마음이 명성을 얻으려는데 있으면 소인인 선비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학문을 연구하고 몸을 닦는 일이 도(道)를 얻어내 참다운 군자가 되려는 뜻이 있으면 군자인 선비이지만, 명리(名利)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는 한 소인인 선비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자의 집주(集注)에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일 뿐이다”라고 쉽게 말하고, “이른바 이(利)라고 하는 것이 돈과 재물만을 벌어들이려는 마음만을 말하겠는가. 사욕(私慾)만 남기고 공익(公益)은 없애버려 자기에게만 적합하고 편하게 하느라 천리(天理)에 해롭게 하는 모든 것이 이(利)라는 것이다”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세상에는 군자인 선비도 많지만 소인인 선비도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군자인 선비야 정당한 표현이지만 소인인 선비라면 말 자체가 매우 어색한 표현인데, 공자께서 사용한 말이니 어떻게 변통할 방법도 없습니다. 우리 집 사랑방에서 들었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소인치고 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 다시 말해 글 잘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소인배가 되지, 글도 말도 못하는 사람은 소인이 될 수 없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제대로 갖추고, 누구보다 영리하고 재주가 있어야 하며, 잘 생기기도 했지만 글씨까지 잘 써야만 큰 소인이 된다는 뜻이니, 소인인 선비라고 일컫는 말은 그런 지식만 지닌 소인배를 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명문 대학을 나와 참으로 어려운 사시나 행시에 합격하여 만인이 부러워하는 권력자가 되었고, 말 잘하고 글 잘하는 명성을 얻어 국회의원도 되고, 고관대작이 된 사람들이 공심(公心)에서 벗어나 사심(私心)으로 내려가 의(義)가 아닌 이(利)를 추구한다면 바로 그들이 소인인 먹물이 되어버립니다.

한 세기 가까이 분단되어, 적과 적으로 싸우며 일촉즉발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남한과 북한, 그래도 국운이 돌아왔는지, 남북 화해의 분위기로 돌아가고, 남과 북 정상들이 다시는 전쟁이 없고 무력분쟁은 막자고 서로를 포옹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기쁘고 즐겁게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사욕과 자기 당의 이익만 위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만 퍼붓고 있는 소인인 먹물들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요. 평상의 선비라도 되어야지 소인인 선비라면 그게 어디 사람의 도리로서 해야 할 일인가요. 해도 해도 너무들 하십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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