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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자응’의 고요한 소란

<전라도닷컴> 장흥 갯길 따라- ‘검은 보배’ 미역 올리기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5.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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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서 좋다. 봄이 와서 참 좋다.

“시한이 춥제 따술 것이냐 그란 맘으로 나와.”

눈 펄펄 날리는 날에도 물길이 열리면 다라이 하나 끼고 호멩이 들고 그 바닥을 헤집어야 하는 어매들의 굽은 등 위로 오늘은 봄햇살 다수워서 좋다.

봄날의 ‘자응’ (장흥 사람들에게 장흥은 ‘자응’이다) 바다는 분주하다.

“득량만이 밥이 좋아. 뻘이 좋아. 여그서 건진 것은 껍딱만 봐도 속이 괜찮겄다 짐작이 되야.”

수문에서 삭금까지(수문-사촌리-장재도-해창리-남포-장환도-신동리-노력도-덕산리-진목리-신상리) 봄날의 장흥해안길에는 껍딱도 속도 한가지로 꽉 찬 삶의 숨결들이 가득하였다.

갯벌에서 바다에서 물밑에서 물위에서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가노라 애쓰는 고요한 소란이 있었다.

 

▲ 봄철은 노력도 사람들에게 미역추수철이다. 바다 위에는 미역을 실은 줄배가 줄을 잇고 바닷가에는 길위에서 공중에서 미역들이 말라간다.

파도를 이기고 뭍에 올라온

필경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일 것이다. 장환도에서 제 머리통만한 숭어 대가리 물고 가는 고양이를 보았다.

“갯갓에 살문 고양이들이 괴기 좀 묵제.”

김육동(84) 할배가 이제부터 고양이가 누릴 성찬을 덩달아 흐뭇해하며 풀어놓는 이야기가 재미지다.

“전에 어짠 개는 물고 간 것이 해필 양태 대그빡이었던 것이여. 암것도 묵자것이 없어. 긍께 저 건네를 봄시롱 한숨만 쉬었드라요.”

‘양태머리는 미운 며느리 목시(몫)’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 말줄임표처럼, 말없음표처럼. 검은 미역을 실은 곽배의 행렬. 푸른 바다를 건너온다. 시방은 미역철.

 

내 몫이 된 양태 대그빡을 앞에 놓은 어떤 며느리는 참말 수말스러웠던가 보다.

“양태 대그빡에 씨엄씨 모르는 살이 많애라.”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니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구를 번안한 말씀이랄까. ‘양태 대그빡’에서 ‘씨엄씨 모르는 살’ 찾듯 곤고한 생애일망정 호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장흥 갯길에는 갯것도 푸지고 이야기도 걸었다. 김육동 할배는 젊어서 서른 자 돛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그물 없는 배에 오직 낚시로, 오직 바람에 의지해서 추자도까지, 흑산도까지 고기잡이를 다녔다.

“물가에 살문 내일을 몰라. 오늘 나가서 오늘 살아서 올란가를 몰라. 그란께 정월 대보름에는 당제 지내고 하드레(2월 초하룻날)에는 용왕제를 정성스레 지내.”

 

▲ 전에는 사람이 하던 일이다. 기계손을 빌려 물에서 뭍으로 미역을 옮기고 있다.

 

바다에 목숨을 맡겨놓은 사람들의 기원은 간절하였다.

“남해바다 요왕님네 지발부디 굽어보고 많썩 잡게 해주시오 뭐이든지 풍년이고 무탈무사 돌보씨요, 그런 식으로 빌어.”

그래서 용왕님이 지켜주었던 것이라고 할배는 믿고 있다.

“한번은 너이(넷이) 돛배를 타고 나갔는디 완도 소안도라고 거그서 태풍을 만내 불었어. 청산도까지 떠나라가 갖고 또 보름 동안을 떠나라간께 일본에 닿드만. 일본에다가 우리 배는 땡개불고 거그서 여수로 돌아오는 삼치 무역선 타고 들왔소. 지내는 배한테 연기 내서 뵈일라고 고무신짝까지 다 태와불었는디 게다짝 줘서 신고 왔소. 신체(시체)도 못 건지겄다고 울고만 있던 안식구가 남편이 걸어서 올라온께 말을 못헙디다.”

그리 영금을 보고도 배를 타야 했다.

“새끼들 믹일란께.”

바닷가의 아비를 태풍 앞에서도 파도 앞에서도 굳세게 하는 것은 애리디 애린 새끼고둥 같은 자식들이었다.

 

▲ 해안선을 따라 쌓여 있는 부표들. 바다에서 미역을 붙들어 미역을 자라게 한다.

막 건진다고 ‘조리섬’

“요 달력 잔 보씨요. 벚꽃이 이라고 멋있게 피고 난린디 일만 허고 있당께. 이 꽃봄을 우리는 달력으로만 보요.”

비닐 작업복에 온통 거뭇거뭇 얼룩덜룩 미역 쪼가리가 들러붙은 채로 집에 들어선 여경호(노력도)씨가 달력을 가리키며 하는 말. 새벽에 나가 점심때를 훌쩍 넘기고서야 바다에서 퇴근했다.

“저저금 자기 미역밭이 있어. 정월 대보름 뒤부터 4월 초순까지는 허제. 요새 날마동 미역 걷어올리니라고 뻗쳐.”

노력도는 ‘조리섬’이라 하였다.

“바다에서 막 건진다고. 어물이 안 떠나. 나가기만 허문 나와. 사람이 그만치 되야(고돼.)”

 

▲ 해안도로를 따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새끼줄. 미역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생명줄이다.

 

시방 조리섬 노력도 앞바다는 길다란 열차처럼 나무 각배를 줄 지어 달고 오는 배들로 꽉 차있다. 줄에 매달린 미역을 낫으로 쳐서 각배에 쌓아올려서 선착장으로 옮기는 것. 미역이 까득까득한 각배는 크기가 똑같다.

“저 배가 쌀 퍼담는 되 같애. 미역 한 줄에서 4톤이 나오고 저거 한나에 4톤이 들어차. 저거 한나가 작년에는 40만원이었는디, 올해는 20만원도 못해. 긍께 올해는 일험서도 재미가 없어.”

선착장은 각배로 실어 온 미역을 크레인으로 달아올려 가공 공장으로 옮기는 트럭들이 들고 나느라 부산하다. 선착장 뽀짝 앞 집에 사는 위정단(73) 할매는 장흥 미역을 자랑한다.

“득량만 바다가 오염이 안되고 뻘물이 좋아서 영양이 좋아. 물이 맑은 디서는 미역 못해. 미역에 병이 와불어.”

“득량만 뻘물이 모든 소독을 해분께 모든 것이 잘 되야. 고기도 딴디 고기는 커도 맛이 없어. 여그는 뻘이 좋아서 모든 고기가 다 맛있어.”

 

▲ 바람 좋고 햇살 좋은 봄날, 장흥 해안도로에는 미역 냄새가 가득하다. 미역줄기가 빨래처럼 널리고 미역귀가 오들오들 말라간다.

“바다가 우리를 다 맥여살려”

할매 자랑에 부창부수하는 김정일(78)할아버지. ‘좋은 바다를 찌고 있기 따므로’ 자식들을 옳게 키워내는 일에 덕을 보았노라 한다.

“자석이 오형제인디 다 될 만치 되았소.”

회진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내 걸음으로는 나갈 수 없는 섬이었다.

“부락에 사공이 있었어. 부락에서 쌀 나올 때 쌀 두 가마니, 보리 나올 때 보리 세 가마니 글케주문 일년내 동네사람들을 건네줘. 애기들도 배 타고 학교 댕기고.”

명절이면 자식들 운송이 큰 일이었다.

“설 같으문 눈발도 치고 그란디 어떤 놈은 밤 12시에 오고 어떤 놈은 새복 2시에도 와. 다섯 번을 실어나를라문 얼매나 힘들어. 물발은 씬디 노 저어서 갈란께.”

다리가 생겨서 “아부지, 나 왔소” 하고 지그들 발로 대문 열고 들오는 것이 참 좋다는 그 말씀에 ‘섬살이’의 이만저만한 노고가 들여다보인다.

할아버지도 여느 노력도 사람들처럼 미역일을 했다.

그 중 씨앗 뿌리는 일이 힘들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 한께. 음력 10월에 새끼줄에다 씨를 붙여.

100일쯤 지나면 다 커.” 씨를 붙인 새끼줄은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도록 물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부통(부이, 부표)을 달아서 바다에 띄운다.

“수심이 맞아야 돼. 물 아래로 70cm 정도가 좋아. 깊이 허문 녹아불고 너무 높이 허문 몰라불어.”

 

 

미역은 항상 물속에 찰방찰방 잠겨 있어야 한다.

“수확을 헐 때가 되문 때를 맞촤야제. 오래 되문 미역뿌리가 삭아불어. 미역이 안 올라오고 밑으로 빠져불어. 긍께 바람이 불어도 물이 씨어도 해야 혀.”

옛날에는 모든 것이 수작업이었다.

“일일이 손으로 올래갖고 낫으로 쳤는디 인자 기계로 감아올린께로 낫으로 탁탁 치기만 하문 되야. 옛날에다 대문 시방은 뭐이든지 쉬와졌어.”

뭐이든지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낸 할배. ‘우리는 평생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한 줄로 이력을 정리하신다.

“이 바다가 우리를 다 맥여살려. 긍께 이 바다가 오염되문 안되야.”

아직 오염되지 않아서 고마운 그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검은 보배’들이 깃발처럼 나부끼는 장흥 해안도로.

<물결을 말리면 저런 모양이 될까/ 햇살을 만나면 야멸치게 물의 뼈를 버리는/ 바짝 마른 파도 한 뭇> (성영희, ‘미역귀’ 중)

파도를 제 몸에 새기고 뭍에 올라온 자들의 행렬이 장하였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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