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사람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 (1)

▲ 농기계센터 내부

가끔, 문득, 갑자기, 인생이란 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주제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나마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는 인생 뭐 별 것 있겠느냐 하는 식의 건방진 호언장담으로 대충 비켜가기라도 했지만, 검은 머리가 점차 파뿌리를 닮아가고 보니 그런 건방을 떨기도 차마 어려워져 간다.

어쨌든 주저앉지 않고 그럭저럭이나마 씩씩하게 살자면 뭔가 몸을 대고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마 종교가 그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이름을 떨치는 것이겠지만, 종교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같은 못난이는 기껏 한다는 짓이 이런저런 온갖 책이나 뒤적거릴 따름이다. 책속에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답이 있을까?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내가 언제부터인지 ‘좋은 생각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문장을 내가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감히 내가 그런 대단한 문장을 창안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누구에게서 들었다는 기억도 없고, 어떤 책에서 읽었다는 기억 또한 없고 보니 ‘그 말은 내 말’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누군가에게 대놓고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다. 나 혼자서만 속으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계기가 되어 그런 주문을 언제부터 외고 다니기 시작했던 것일까. 어느 하루 문득 그런 의문이 들어서 곰곰 생각해 보니 놀라워라, 정정태씨가 그 주인공으로 떠올라 왔다. 안면을 익힌 지는 꽤 됐지만 개인적으로 만나서 소줏잔이나마 기울인 게 처음이었던 그 날, 그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종종 그가 살아온 궤적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때 어느 순간 “아 그래, 인생이란 좋은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을 때 선물처럼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일 거야”하는 일종의 결론 같은 것이 도출되고 있었다.

 

▲ 외출복 차림으로 잠깐

 

웃는 소리가 예술인 사람 정정태. 옆에 있는 사람 누구라도 자신의 웃음 바이러스로 전염시켜서 기어이 웃게 만들어놓는 사람 정정태. 고창에서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그는 고창이 타향인 사람이다. 이른바 사랑의 도피처로 선택한 곳이 고창군 상하면이었더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두 손 꼭 잡고 살자고, 애인과 함께 가만히 숨어들어온 상하면 소재지에서 경운기센터를 운영해 온 지도 벌써 삼십 년이 훌쩍 넘은 그는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기도 하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입지전적이 아니고, 무슨 대단한 직위를 얻어서 입지전적인 것도 아니다. 사실 그는 딱히 뚜렷하게 내놓을 만한 무엇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그렇게 말해야만 말이 되는 사람이다. 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떤 발언을 연상케 하는 그의 언행 자체가 입지전적이라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 언제 돌아봐도 엄숙하다. 도대체가 외로움에 치를 떨어야만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아끼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아끼고 존중할 것인가 하는 성찰이 나오는 까닭으로 이 테제는 엄중하다 못해 심각하기까지 하다. 맹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측은지심 사상을 알기 쉽게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나 함부로 그런 발언을 싸구려 땡처리 하듯이 쏟아내 놓으면 발언 당사자가 매우 위험한 사기꾼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내가 말이요 잉?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어찌케나 그렇게도 가슴이 에리고 아픈지 견딜 수가 없당게요.”

그날 식당에서 무슨 말 끝에서인지 정정태씨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아무나’류의 기회주의 냄새를 폴폴 풍기고 다니는 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아마 입안에 든 밥알을 죄다 뿜어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정태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는 심사가 되고 있었다. 세상사 모든 것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듯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런 말을 해도 좋을 만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해야지만 설득력도 있고 신뢰감도 가슴에서 절로 막 생성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농기계전시 행사를 주최하던 날

 

그는 사람을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바가 없는 사람이다. 공교육은 물론 가정에서도 그런 교육을 받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사람을 함부로 막 대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대한항공의 조 회장은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그런 교육을 해 왔다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정정태씨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눈앞에 안 보일 때나 겨우 잠깐씩 자식들 걱정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가난을 직업처럼, 숙명처럼, 아니 어쩌면 취미처럼 온 몸에 붙이고 다니는 부모님을 둔 덕분에 정정태씨는 매우 일찍 세상공부를 할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십 년도 채 안 된 나이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그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소년이 학교가 아닌 공사현장에서 기계를 만져야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현장에서 큰 부상을 입고 몇 달씩이나 입원 치료를 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사고는, 엄밀하게 보자면 그 사고는 예견된, 혹은 예고된 불행이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시절이었고, 공사장 관리자들은 사람의 안전은 개뿔이나 무슨 안전이냐 하는 투로 비용을 줄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던 시절이었다. 공사기간 단축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던 시절이었으며, 감독관청이나 원청회사 간부들을 상대로 노름을 해서 돈 잃어주는 일로 사세확장을 꾀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정태씨의 아버지는 건설회사의 직원도 아니고, 일용직이나마 직접 고용된 신분도 아닌, 이를테면 자영업자 신분이었다. 오늘날이야 뭐 흔해빠진 물건이지만, 당시만 해도 귀한 기계였던 양수기 한 대가 정정태씨 아버지의 유일한 사업 수단이었다. 양수기를 필요로 하는 공사현장에 불려가서 물을 뿜어내거나 물을 끌어들여 주는 게 아버지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세살바기 꼬마 시절부터 공구나 작은 기계 같은 것들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기를 좋아했던 정정태씨는 눈썰미가 제법 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버지가 병원에서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양수기가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아홉 살 꼬마 소년 혼자서도 대충은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 밥먹으러 가던 중에 손님을 만났다.

 

물이 차오르면 스위치를 넣어서 물을 빼고, 물이 있어야 할 시점에 물이 없으면 호수를 옮긴 다음 스위치를 넣어서 물을 채우면 되는 그 일을 아홉 살 소년 정정태는 그런대로 훌륭하게 해냈다. 물론 주변의 어른들이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달려와서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 일은 소년 정정태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엄중하게 따져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아버지는 가난하다. 허리를 크게 다쳤으니 앞으로도 계속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뭘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열 살도 채 안 된 소년이 풀어낼 수 있는 화두가 아니었다. 다만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랬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해도, 어쨌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은 소년 정정태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의 어느 하루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작은 일화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날의 그 일을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제 인생에 전환점이 왔는데요. 계기는 담임선생님이셨어요. 저는 지금도 그 성함을 기억하는데요. 이옥희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이 그날 느닷없이 이상한 문제를 내시는 거였어요. 공부하기 싫지? 놀고 싶지? 그러면 뭘 하면서 놀 것인지, 다들 각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를 개발해서 써 내라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렇게 써 냈단 말입니다.”

<저는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놀랐다. 놀이에 관한 의견을 내라 했는데 집에 가서 할 일이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으니, 만약에 생각이 짧은 선생님이었다면 “이놈 엉뚱한 놈이네”하고 놀리며 꿀밤이나 한 대 먹이고 말았겠지만, 이옥희 선생님은 그런 가벼운 선생님이 아니었던 까닭에 소년 정정태를 따로 조용히 불러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있을라나요.

 

“집에 가서 무슨 할 일이 그렇게도 많아?”

선생님의 질문에 소년 정정태는 이제야 때가 왔다는 투로 거침없이 말했다. 아버지가 허리를 크게 다치신 이후로 일을 잘 못 하시고, 어머니가 날마다 일을 나가시기는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아서 날마다 돈 걱정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놀 시간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민에 빠졌고, 고민이 끝난 뒤에는 일단 오늘 조퇴처리를 해줄 테니 집으로 돌아가서 무엇이든 할 일을 하라고 하셨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날의 그 일을 정정태씨는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어려운 조퇴를 그렇게도 쉽게 허락한 선생님의 그 결단이 자신에게는 기적으로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적’을 체험한 소년 정정태에게 학교는 더 이상 희망도 아니고 미래는 아니었다. 양어깨에 날개라도 솟아난 듯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학교 따위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하는 기분이었다.

때마침 집안 형이 우유배달을 몇 년씩이나 해서 모은 돈으로 중고 경운기 한 대를 샀다. 경운기로 남의 농사를 지어주는 방식으로 돈을 벌겠다고, 그야말로 보무도 당당하게 경운기를 사기는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날마다 투덜거리던 형은 그만 경운기를 팽개친 채 집을 나가버렸다. 그 일은 소년 정정태에게 새로운 기적으로 다가왔다.

다른 애들이 학교로 가는 시간에 고물 경운기를 끌고 남의 농사를 지으러 다니기 시작한 소년 정정태는, 그는 이제 명실이 상부한 소년 사업가였다. 하지만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고물 경운기는 날마다 고장이 났고, 농사는 중학교 2학년쯤의 소년이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년의 꿈은 자연스럽게 경운기 고치는 일을 배워야겠다는 쪽으로 확대 개편되어 갔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경운기센터에 취직을 한다. 그때 나이 열다섯.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면 스무 살 안에 경운기센터 사장님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야말로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자 밤에도 잠을 안자고 공구를 만지작거리며 고장 난 경운기를 들여다보았다.

 

▲ 센터내부

 

소년 정정태의 부지런한 성실성은 당연하게도 경운기센터 사장님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리고 사장님의 감동은 당연한 듯이 다른 사람들의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센터에는 소년 정정태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형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이 형들이 소년 정정태의 부지런함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너 혼자 다 해 처먹어라”는 식의 욕지기를 퍼붓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스패너건 몽키건 닥치는 대로 공구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미래의 경운기센터 사장님 소년 정정태의 몸은 이제 성할 날이 없었다. 순식간에 날아온 공구에 얻어맞고 갈비뼈가 부러지는가 하면, 어깨뼈가 탈골되고, 정강이가 찢어지고, 머리통이 깨져서 피를 쏟아내는가 하면 발등이 퉁퉁 부어올라 걸음을 걸을 수도 없는 등등 상처투성이의 나날들이었다.

그렇다고 형들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싸움이야 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백전백패가 불을 보듯이 뻔한데 그런 싸움을 어찌 할 것인가. 소년 정정태는 결국 경운기센터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광주로 가서 오토바이센터에 취직을 했다. 꿈은 경운기센터 사장님인데 오토바이센터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이게 뭔가, 하는 자괴감 때문에 그는 밤마다 오토바이를 몰고 시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폭주족이 된 그는 차츰 다른 폭주족 소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명의 여인 그녀를 만나게 된다. 전라남도 산골 영암에서 광주로 유학을 나온 여고생, 그녀는 마치 거기 어디쯤에서 소년 정정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연애는, “근본도 없이 무식한 것들과는 아는 체도 말아야 한다”고 외치는 그녀의 어머니로 인해 눈물과 콧물과 핏물로 얼룩진 파란만장의 강을 건너야만 했다. 다음에 계속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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