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참 마음에 안 든다. 요즘의 내 모습 말이다. 가끔은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려가면서 시작됐다. 일이 잘 될수록 내 자신이 싫어진다. 왜냐고? 어느덧 내가 ‘보여지는 것’에 충실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40여일 전, 내가 쓴 첫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장애인 복지가 척박한 대한민국 땅에서 지적장애 아들을 키우며 보고, 겪고, 느낀 바를 써내려간 책이다.

 

 

유명 작가들의 ‘화제의 책’처럼 출간되자마자 대박을 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그런 책도 아닌 듯하다. 이 책이 가진 의미가 충분히 있었고 그 덕분인지 각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독자들과의 북콘서트도 진행했고, 라디오에도 두 번 출연했다.

또 다른 출판사에서 두 번째 책을 계약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앞으로 예정돼 있는 북콘서트와 강연 등도 9월까지 일정이 잡혀 있다.

매일 100권이 넘는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그래도 이 정도 관심을 받으면 홈런은 아니라도 1루 안타 정도는 친 격이리라.

매일이 바쁘다. 나는 바쁜 내 일상을 빠짐없이 SNS에 올린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명사 놀이’를 하고 있는 내가 그 속에 있다. ‘셀럽’이라 불리는 celebrity(유명 인사)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오늘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SNS에 일상을 기록한다. 원래 SNS의 용도라는 게 그런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서인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이제는 좋아 보이는 것들만 올린다. 전에는 솔직한 내 생각도 여과 없이 올렸는데 이제는 스스로 검열 작업을 거치게 된다. 남들 보기 좋아 보이는 일상 위주로 업데이트를 한다. ‘진짜 나’가 아닌 ‘보여지는 나’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반응을 한다. ‘유명 엄마’ 또는 ‘스타 작가’라 부르기도 하더니 급기야 ‘류 셀럽’이라 칭하는 분까지 등장했다.

진짜 스타 작가이자 유명 인사라면 말을 안 한다. 사실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이제 고작 책 한 권 낸 지 40여일 된, 아이 둘 키우는 아줌마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평범한 아줌마가 셀럽 놀이를 했기 때문에 정말 셀럽이 된 듯한 반응이 돌아온다. 이런 반응들을 이끌어 낸 게 바로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 마음에 안 들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으니 내 자신이 견디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SNS에 거짓을 올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보여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진짜 나’가 아니다.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가식’과 ‘가면’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진저리를 친다. 앞뒤가 다른 사람을 경계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말만 하는 사람도 경계한다. 솔직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까발리고 싶은 욕구도 있다.

문제는 보여지는 데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다 보니 그 가식과 가면을 이제 내가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화장을 지우지 못한 얼굴처럼 답답함이 느껴진다. 걷어내고 싶다. 웃는 얼굴로 포장된 가면을 벗고 던지고 싶다. ‘보여지는 나’가 아닌 ‘진짜 나’를 드러내던가, 아니면 내 안으로 깊숙이 침전되고 싶다.

날이 갈수록, 일이 잘 풀려 갈수록, 조금씩 더 유명해져 갈수록 이런 욕구가 끝없이 올라온다.

“나 자신으로 있고 싶어. 내 자신에게만 몰입하고 싶어.”

마음이 나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 하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온전히 내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였지만 내 자신을 찾아 떠나는 내면으로의 여행은, 살면서 겪은 그 어떤 여행보다 행복하고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물론 내 자신을 찾아 떠나다 보니 별의별 것들이 다 튀어 나왔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추악했던 과거의 한 장면도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에 따른 죄책감도 따라 나왔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도 쳐다봐야 했고, 풀어야 할 과제들도 선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다. 세상을 처음으로 접한 갓난아기처럼, 나는 매일 새롭게 발견되는 내 자신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어 미칠 듯이 좋았다.

이해하고 알아야 할 것들이 태산처럼 산적한 세상이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먼저 알고 이해해야 하는 건 바로 자신일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자신 밖의 것들로만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왠지 공허하지 않은가!

자신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내 안으로만 집중하고 싶다. 아니면 가면을 쓰지 않은 솔직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당당히 마주서고 싶다. 하지만 ‘보여지는 나’에 초점이 맞춰진 일상은 계속된다. 내 안의 괴리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마음이 힘들어지는 게 당연지사다.

SNS를 끊어버릴까?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SNS를 끊는 것으로 세상과 나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내 에너지를 내 안으로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지만 지금은 또 그러지 말아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나름의 사명감이랄까. 세상에 ‘알려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로, 활동으로. 미지의 영역이었던 ‘발달장애’라는 세계를 꺼내 보여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음 할 일은 명확해진다. 마음껏 SNS를 하고, 마음껏 알리면 된다. 다만 ‘보여지는 것’이 아닌 ‘진짜’를 내보이면 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용기는 바로 미움 받을 용기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버릴 줄 아는 용기이다.

이 용기가 없으니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당장 사진만 봐도 그렇다. 실물과는 영 딴판인 예쁜 사진만 골라서 올린다. 구멍 숭숭 난 모공과 울긋불긋한 피부는 핸드폰에 탑재된 스마트한 카메라가 알아서 아기 같은 피부로 보정을 해 준다.

각도도 중요하다. 살짝 고개를 틀고 핸드폰 위치 선정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10kg쯤 다이어트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사진만 찍고, 그런 사진만 골라서 올리다가 ‘진짜’를 내보이자며 현실의 나를 내보이자니 선뜻 용기가 안 난다.

물론 누구나가 이왕이면 예쁘게 나온 사진을 올리곤 하지만 이게 정도를 지나쳐 조작으로까지 번지니 문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나는 사진기자를 졸졸 쫓아다니며 포토샵으로 얼굴 좀 갸름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얼굴 그대로 나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며칠 뒤 기사를 보고 나서 나는 난감해졌다.

사진기자가 신경을 써서 포토샵을 해줬다. 그런데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누가 봐도 사진조작인 게 티가 날 정도로 얼굴이 작아져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 몸에 얼굴을 갖다 붙인 것처럼 어색한 얼굴 크기와 뾰족한 V라인 턱선.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난감하기만 하다. 그저 이 기사가 많이 안 읽히기를 바랄 뿐이다.

보여지는 모습에 치중하다 보니 생기게 된 에피소드다. 내가 온전한 내 자신으로 세상과 마주하지 않고 더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포장을 하고자 했기에 생긴 에피소드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어지면서 지금 이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보여지는 삶을 사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것을 내가 견뎌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셀럽 놀이를 그만해야 한다. 내 자신으로 마주해야 한다. 미움 받을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안으로 안으로 다시 침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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