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집 주인 부부는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물어왔다. 당연한 질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머뭇거리며 땅 위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답을 했다간 다시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 주인 부부의 채근질은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는 곳과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얘기하라고 종용했다. 눈물이 나왔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거기다 하루종일 굶은 상태여서 배까지 고팠다. 추위에 온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나는 울면서 간신히 입을 열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더 이상 묻는 것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밥을 주겠다며 집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집에서 싸온 토끼를 꼬옥 끌어 안은 채 집 주인 부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채로 보이는 커다란 집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 또래 정도의 여자아이와 그보다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나의 갑작스런 출현에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 주변을 뱅뱅 돌며 기웃거렸다.

 

 

따뜻한 안방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또다른 어떤 여자가 밥상을 내왔다. 커다란 밥그릇에 수북히 담긴 하얀 쌀밥. 그리고 밥상 위에는 온갖 종류의 반찬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밥상을 내 온 여자는 그 집에서 식모 일을 하는 여자였다. 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먹어댔다. 우리 집에선 그런 상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할 정도로 진수성찬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도 게걸지게 밥을 먹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모습들이었다.

다시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그리고 아까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여긴 어떻게 오게 됐느냐…."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집주인 아저씨가 내 태도가 답답했는지 입을 열었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니 오늘은 여기서 재우고 내일 아침 일어나는 대로 집이 있는 곳을 물어 데려다줘라."

그 집 아들이 나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문을 열자 할머니가 계셨다. 방에 들어서자 마자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80살은 족히 돼보이는 할머니였는데 거동을 잘 못해 방안에서 대변과 소변을 다 받아내며 생활하시는 것 같았다.

난 그 냄새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까지 잠을 설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는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선 집주인 아들이 소죽을 쑤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아들에게 다가가 하는 일을 거들어주었다. 아들이 처음엔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이내 내 그런 행동들이 기특하게 느껴졌는지 이 일, 저 일을 알려주기도 했다. 일을 하다보니 어느 새 아침 해가 떠올랐다. 아침 식사를 하라고 전날 봤던 그 식모가 나를 불렀다. 밥상은 내가 잠을 청했던 할머니 방에 차려져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그 집 아들이 다시 할머니 방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전날 했던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질문에 대꾸를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나중엔 주인 부부까지 할머니 방으로 건너왔다. 한참 나를 지켜보던 부부는 나중엔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나의 딱한 사정을 어느정도 짐작했는지 결국 아주머니가 "이곳에 당분간 머물다가 집에 가고 싶을 때 가라"고 얘기하시는 게 아닌가. 난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렇게 해서 나의 머슴살이 생활은 시작됐다. 벙어리 머슴살이의 시작인 셈이었다.

그 집에 머물면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기쁨이자 변화는 하루 세끼를 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얀 쌀밥이 때만 되면 내 앞에 차려졌다. 식모 누나 역시 나처럼 더부살이를 하는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누나가 차려주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먹어 치우기에 바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머릿 속에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아버지였다. 

<다음에 계속>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