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장흥 갯길 따라-수문리 바다에서 키조개 캐기

 

안양면 수문리 앞바다. 봄 오는 기척이 전해질 무렵부터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 깊은 바닷 속 뻘바닥에 박혀 자라는 키조개를 캐는 잠수부들이다.

곡식을 까부르는 ‘키’를 닮았다 하여 키조개. 전라도쪽에서는 ‘개두’ ‘게지’, 경상도쪽에서는 ‘채이(챙이)조개’라 불린다.

갈퀴로 긇어내면 쉬운 일을 뻘속에서 하나씩 일일이 캐낸다. 몸공이 들어가는 만치 수문리 키조개는 껍데기가 온전하다. 작업은 산란기를 앞둔 6월까지 이어진다.

 

 

김복용(63)씨의 잠수부 이력은 40년.

“물속에서 산 세월이 반절이요.”

수심 10m 가량의 바닥에서 해야 하는 작업. 허리에 두르는 납덩이는 평균 30kg. 만만치 않은 무게다.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듯이, 열 길 물속도 알기 쉽지 않다.

“막 인어공주도 돌아다니고 뭐이 나풀나풀 허고 그래야헌디 캄캄해. 눈 뜨나 감으나 똑같애.”

장흥 앞바다 득량만의 물은 투명하지 않다. 그만치 키조개가 좋아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풍부한 바다다.

“사리 때 조류가 씨고 그럴 직에는 뻘이라 꾸정물이 일어나. 암것도 안 뵈여. 모든 것을 더듬아서 해야제.”

그 누구도 곁에 있지 않다. 매순간 홀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는 절대고독의 물속이다.

“거그는 아조 막막한 세상이여. 뭐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이녁 숨소리만 디켜.”

 

▲ 수산물로서는 처음으로 원산지 이름을 상표로 인정해 주는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된 장흥 키조개. 키조개는 수문마을의 자부심이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키조개 조형물이 서 있다.

 

개펄 속에 묻혀 끝이 보일 듯 말 듯한 키조개를 갈고리로 딱딱 캐내서 목에 건 그물망태에 담는다. 키조개는 칼보다 예리하다. 두꺼운 실장갑이 찢어지는 일이 많아 여벌의 장갑을 꼭 챙긴다.

두 개의 줄이 잠수부를 따라 물 속으로 늘어진다. 하나는 망태를 끌어올릴 줄, 다른 하나는 산소를 공급해주는 노란호스. 잠수부의 생명줄이다. 잠수부가 바다에 들어가면 선원들은 호스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줄이 꼬이지 않도록 부지런히 산소 호스를 풀어준다.

1시간쯤이면 키조개 600개 정도를 채운 녹색 그물망을 물 위로 올려보내고 배 위에 올라와 잠시 쉰 후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 작업은 아침 7시에서 오후2시쯤까지. 두 사람이 한 조로 하루 7000개 정도를 채취한다.

 

 

1년생 종패를 하나하나 뻘밭에 심는 일도 물론 잠수부들이 한다. 모 심듯이 새끼 키조개를 심는 ‘이식(移植)’이다.

사료를 먹여서 키우는 ‘양식’이 아니어서 자연산이라고 할 수 있다.

‘키조개는 이식이 안 된다’는 설을 깨고 수문포 앞바다에서 이식되고 있다.

“득량만 뻘이 상답이여, 옥답이여. 뻘 수온 수심 삼박자가 맞아. 3년 정도 크면 어른이 두 손바닥 펼친 것보다 더 커.”

서해안 키조개가 모래밭에 박힌 데 비해 수문리 키조개는 개펄 속에서 산다.

“서해안은 떡모래라 작업화로 뿔 달린 축구화를 신는디 여그서는 뻘장화 신어. 진뻘땅이라 키조개한테는 밥이 겁나 좋아.”

 

 

‘진흙 속의 보약’이라 불리는 키조개. 작업배에 타면 키조개 몇 개를 까서 냄비에다 폭 끓인다. ‘개두국’이다.

“국물이 우유같이 아조 뽀애. 입에 딱딱 엉글 정도로 맛이 진해. 대접으로 막걸리처럼 마시는 거여. 배 위에서 글케 마시고 힘을 쓰는 거여.”

물고기도 아닌데 물속으로 출근하는 사람.

“항시 위험허제. 그런께 물 위로 올아와 고무옷 벗을 때마다 새 세상이제.”

‘숨쉬는 것처럼 쉽다’는 말이 그이에겐 틀린 말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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