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여기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가 있다

<영화 다시보기> ‘이퀄스’(2016년. 8월 개봉/ 리들리 스콧 감독) 정다은 기자lpanda157@weeklyseoul.netl승인2018.05.17 11:4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영화 ‘이퀄스’ 포스터

모든 생물은 감정이 있다. 사람과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도.

사람들은 점점 감정을 숨기고 산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은 사라지고 이성만이 살아남는다. 감정을 내비쳤다간 멘탈이 약하다는 둥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 마련.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린 감정을 숨기고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삭막하다.

‘하트시그널2’, ‘선다방’ 등 일반인 남녀들의 만남을 보여주는 예능이 대세다. 단순히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SNS엔 ‘대리 만족’, ‘대리 설렘’ 등의 후기가 올라온다. 이젠 하다못해 남들의 연애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정작 본인의 감정은 표출하지 못하니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속내를 푼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기계화, 정보화된 사회 환경이 일차적 원인일 것이다. 손을 대지 않고도 모든 일이 척척 해결된다. 육체와 감정을 소비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든다. 움직이지 않고도 핸드폰 하나로 여행, 문화생활, 스포츠 등 모든 걸 경험할 수 있다. 최소한의 시간과 움직임으로 최대 이윤을 내려는 게 현대인들이 원하는 삶이다. 이젠 목소리로 명령만 하면 날씨도 알려주고, 노래도 켜주고, 텔레비전도 켜주는 인공지능 기계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를 참 잘 보여주는 영화 한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세상 사람들의 감정이 사라진다. 적당한 식사와 적당한 운동, 일을 하며 기계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삭막한 세상에서 피어난 사랑을 그린 영화 ‘이퀄스(2016년 8월 개봉)’다.

‘이퀄스’는 ‘마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프로메테우스’ 등을 연출한 할리우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과 국내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로맨틱코미디 ‘어바웃 타임’의 제작진 등이 참여했다.

영화 ‘웜 바디스’에서 로맨틱한 좀비로 분해 전 세계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니콜라스 홀트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통해 판타지 로맨스 여신으로 자리매김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만났다. 이들은 감정통제구역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사일러스와 니아 역을 맡았다.

모든 감정이 통제되고, 사랑만이 유일한 범죄가 되는 감정통제구역. 어느 날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현장에서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고 그녀가 감정보균자임을 알게 된다. 니아를 관찰하던 사일러스는 생전 처음으로 낯선 감정을 느끼고 감정 억제 치료를 받지만, 니아를 향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사일러스와 니아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뜻하지 않은 위기에 처한다.

 

▲ 영화 ‘이퀄스’ 스틸컷

 

영화에서 나온 감정보균자란,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환자로 취급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킨다.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낸 듯하다. 영화의 배경은 SF영화처럼 머나먼 미래지만, 사회의 발전 속도를 따지면 바로 내일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우린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혈질, 우울증, 감성충(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벌레 ‘충’자를 붙여 비아냥거리는 은어) 등 갖은 치욕적인 말을 쓰며 사회에서 격리시키려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최근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20대 후반의 남녀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사랑을 할 때 자꾸 재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만 좇기엔 겁이 나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 오고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사랑조차 마치 하나의 이윤을 위한 수단인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사랑보다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이윤을 줄 수 있는가를 먼저 따진다. 외모가 얼마나 뛰어나고, 돈은 얼마나 많은지, 직업은 안정적인지, 가정은 화목한지 등등. 사랑하기 위해선 참 많은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이다.

영화에선 모든 게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사랑을 보여준다. 순수한 사랑이다. 모든 게 움직이지만 죽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 그 속에서 두 주인공만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둘의 대화와 숨소리, 눈빛만으로도 영화에는 생기가 넘쳐난다. 특별한 노출 없이도 영화가 섹시하다고 느껴진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 소통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멀지 않은 미래다. 사람들이 감정을 컨트롤당하는 것은 물론 사랑조차 죄를 짓는 것이라며 벌을 받는 그 때가. 더 늦기 전에 사소한 행동부터 조금씩 바꾸어나간다면 삭막한 사회에서도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만날 때 휴대폰 사용을 줄이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추는 것. 또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서핑을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보단 느릿느릿 걸으며 뭇생명들과 만나는 것. 이게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방법이다.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체로서의 감정’이 파닥파닥 살아 숨 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광고국장 : 황석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