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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절벽위의 저 꽃을 따줄 것인가

<김초록 에세이> 가정의 달과 노년(老年) 김초록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5.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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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노년기(老年期)에 접어들면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인생의 종착점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터에서 삶을 거의 다 보낸 뒤 맞게 되는 정년(停年)은 보람과 함께 허무감이 몰려오는 때이다.

노년기는 흔히 말하는 힘없는 세대가 아니다. 뭔가 보람 있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절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오랜 사회생활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후세대에게 나눠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또한 노년기다. 노인은 한마디로 인생의 선생님이요, 훌륭한 철학가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노인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봄이 옳지 않겠는가. 가장 윗세대인 노인을 중심으로 한 집안이 결속하고 자식들은 어버이를 극진히 모심으로써 효도를 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동양사상에서는 효를 인간의 모든 가치와 행위의 근원이라고 믿어왔으며 인과 덕의 근본으로 보았다. 효를 행한다는 것은 부모의 은덕을 갚기 위하여 부모를 보살피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기’에는 효의 세 가지 중요한 조건이 제시되어 있는데,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부모에게 좋은 음식, 옷 및 따뜻한 방을 제공해드려 편안히 모시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에서 효는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일자리에서 물러난 후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여가(餘暇)이다. 중년기에는 누려보지 못한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지게 되면 그 긴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거리가 생기게 된다. 요즘 많이 참여하고 있는 자원봉사 활동은 그 좋은 본보기가 된다. 평소에 갈고 닦은 기술을 후세들에게 가르쳐준다든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여생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은 이런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 못지않게 뭔가 마음속에 내재된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를 그리워한다. 반려자를 일찍 잃은 독신 노인들은 소위 ‘미팅’ 이란 것을 통해 ‘연(緣)’을 맺는다.

여자건 남자건 노인이 이성(異性)에 대해 눈길을 보내면 ‘주책없다’ 거나 ‘망령’ 이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노인들의 관심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헌화가(獻花歌)’는 신라 제33대 성덕왕 때 한 노인에 의해 불렸다는 향가(鄕歌)다. 왕족이며 절세 미녀인 수로부인(水路夫人)이 먼 길을 가다 어느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 주변에는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었고, 그 위에는 아름다운 철쭉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하인들을 둘러보며 누가 저 꽃을 따주겠느냐고 묻자 하인들은 한결같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마침 암소를 끌고 그 곁을 지나가던 한 노인이 가사(歌詞)를 지어 부르며 절벽 위로 올라가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쳤는데 그때 부른 가사가 ‘헌화가’ 라는 것이다.

“부인께서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수로부인은 유부녀임이 분명하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에 미혹돼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 위로 올라가 꽃을 꺾어 바치는 머리 하얀 노인의 절절한 심경이 담겨 있다.

노년기의 정서적 변화는 정년퇴직, 배우자 사별, 자녀의 독립, 친구의 죽음 등 주로 역할 상실에 의해서 초래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정신적 위축과 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켜온 건강을 잘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만족한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취미를 계발하고 정신과 생리적 리듬에 맞는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는 만큼 규칙적인 운동과 휴식도 빼놓을 수 없다. 가까운 산에 오른다든가 정원 가꾸기, 독서, 간단한 운동 등등 정신과 육체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삶은 한결 활기에 넘칠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젊음이 탐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짧다고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인간은 허망함에 빠지지만 한편으로는 남은 삶을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회춘(回春)하는 노년이 아름다운 것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보잘 것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갓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싱싱함을 견지하려는 마음자세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을 두려워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경쟁사회의 한가운데 속해 있을 때는 늙는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시간이 지나 남들로부터 노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허허로움 때문이 아닐는지.

5월에 들어 있는 어버이날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인간행실의 근본인 효의 미덕을 기리는 기념일이다. 이 날에는 각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하거나 효도관광에 나서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버이날에 그 많은 꽃을 놔두고 왜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까? 1910년경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마을에 ‘안나 쟈비스’란 소녀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소녀는 몇 날 동안 슬프게 울었다. 안나는 장례식을 마친 뒤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카네이션 꽃을 심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잘 모시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였다. 안나는 한 모임에 참석하면서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산소에 있는 카네이션과 똑같은 꽃을 달고 나왔다”고 대답했다. 이것을 계기로 카네이션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부모님과 스승의 가슴에 붉은색 카네이션을 달아 드림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꼭 카네이션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따로 좋아하는 꽃이 있다면 그 꽃을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

가정과 자녀를 위하여 묵묵히 몸 바치는 어버이의 모습은 숭고함 그 자체이다. 사람들은 가장 힘들고 어렵고 절망스러울 때 어버이를 찾는다. 또한 기쁨과 결실이 찾아왔을 때도 어버이를 부르며 감동을 함께 나눈다. ‘부모은중경’에 보면 “내 목숨이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할 것을 원하고, 내가 죽은 후에는 자식의 몸을 지킬 것을 원한다󰡓라고 하여 가없는 자식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또한 ‘효경’에서는 “천지의 자연 생명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고, 사람의 행위 가운데 효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였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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