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조선시대에 조정(朝廷)이란 요즘으로는 정부(政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조정과 정부가 같은 뜻일 수 없지만, 그런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형편없는 고관대작들이 모여 있던 조정이었기에, 율곡 이이(李珥)가 당시 자신이 일하던 조정에는 사람다운 신하가 없어 조정이 텅텅 비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을까요. 다산의 『흠흠신서』라는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공정하고 실체적 진실이 밝혀졌는가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수없이 많습니다.

「절도사가 함부로 사람을 죽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산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그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대한 결과를 논하고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함경남도 절도사 소흡(蘇潝)이라는 사람이 개인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함경북도 관노(官奴) 두 사람을 죽이고 의금부에 구속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치자 대신(大臣:정승)들은 ‘함부로 형벌을 내린 법규’(濫刑규정)에 따라 처벌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수사와 재판의 실무자들이 ‘공적인 일로 자신의 관할 아래 군민(軍民)을 죽였다면 ’남형‘의 죄로 적용할 수 있겠지만, 사적인 분노로 자신의 관할 구역도 아닌 타도의 백성을 죽였으니 당연히 살인죄로 처벌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라고 설명하고 “그런 보고를 받은 임금이 2품(판서 이상) 이상 조정의 신하들의 의견을 물으니 모두 살인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사헌부와 사간원에서는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었으나 임금이 끝내 허락하지 않고 2품 이상의 의견으로 처리하고 말았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뒤늦게 알게 된 율곡 이이는 그런 잘못된 수사와 재판에 대하여 올바른 비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인다는 법이 있으니 용서해서는 안된다. 순(舜)의 아버지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이면 순의 신하 고요(皐陶)는 당연히 고수를 구속할 것이며 순임금의 힘으로도 그 구속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흡이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도 살인죄로 처벌하지 못한단 말인가. 법으로는 당연히 사형에 처해야 하고, 그러고 나서 혹 특별히 은전(恩典)을 입어 사형에서 감형될 수는 있다. 이제 살인죄를 남형죄로 처벌하는 규정을 적용했으니, 국법을 크게 문란케 했다. 2품 이상 한 사람도 정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니 조정이 텅텅 빈 지 오래로다. 어떻게 수사와 재판이 바르게 되겠는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지나친 형벌을 적용하는 것과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완전히 그 죄질이 다릅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못한다면 높은 벼슬아치의 자격이 없습니다. 역시 율곡은 현명한 신하였고, 할 말을 하는 직신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기의 재판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두 분 전직 대통령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은 죄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만 기대합니다. 그것이 율곡의 뜻이자 다산의 뜻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재판이어야만 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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