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등섬 가슴앓이섬 자라섬...
소등섬 가슴앓이섬 자라섬...
  •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8.05.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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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장흥 갯길 따라-장흥해안길 곳곳
▲ 겨울이면 섬 가운데 소나무 위로 해가 뜬다. 새해 첫 날 첫 해를 만나기에 좋은 곳. 소등섬

 

새해 첫 날의 첫 해를 만나기에 좋은 소등섬.

‘갯것 잘 하는 며느리는 쳐도 술 잘 담그는 며느리는 치지 않는다.’

남포(용산면) 어매들이 흔히 내놓는 말씀이 그러하다.

소등섬 앞 해변에 굴껍데기 포대가 섬만큼이나 높이높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만 보아도 남포 마을 어매들의 지난 겨울이 헤아려진다.

“꽉 찍어갖고 잦히면 그만이여”

조새 한나 잡고 나가 꿀을 까는 대회가 있다면 당연히 ‘금은동’을 다 따올 것이라는 남포 어매들.

“옛날에 장흥장 관산장 대덕장 할 것 없이 ‘남포꿀’ ‘남포반지락’ 하믄 호랭이 무섭게 폴렸어.”

겨울 한 철 굴로 이름이 났던 고즈넉한 포구 남포는 영화 <축제>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열 평 남짓 무인도에 이 언저리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의 가심 애린 추억이 많은 성 부르다. ‘가시마리섬’

 

썰물 때면 활처럼 굽어진 노두길을 따라 뭍과 연결되는 소등섬. 섬 가운데 바위 위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란다.

겨울이면 이 소나무 위로 해가 뜬다. 새해 첫 날 처음 만나는 해를 이곳에서 보려고 머나먼 남쪽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일출 명소’로 검색되는 소등섬은 정월 대보름날이면 풍어제를 올리는 신성한 곳이었다. 이방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던 섬이 열리면서 새로운 볼거리도 생겨났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그 바위에 호롱불을 켜두고 무사귀환을 빌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진 소등(小燈)섬. 돌로 만든 아낙네가 섬을 지키고 있다.

신동리(관산읍) 앞바다에는 열 평 남짓 조그만 무인도가 떠 있다. 신동리가 고향인 소설가 이승우는 두 봉우리가 봉긋 솟은 이 섬을 <샘섬>이라는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섬에 있는 ‘거멍바구’(검은바위)를 두고 거문고가 있다고 한 것이 가야금으로 바뀌어 전해지면서 가금도 혹은 가야도라고도 불린다. 현지 사람들은 ‘가시마리섬’이라 부른다.

“돌들이 얌전해. 튀어나온 구석이 없어.”

돌섬이지만 아무 데나 배를 댈 수 있다 한다.

“전에 사람 많이 살 적에는 여그 처녀총각들이 목선을 저어서 가시마리섬으로 건너가서 놀았드라요. 바다 가상이 툭 터져서 살째기 정분 나눌 데가 없응께 그랬겄제.”

쳐다보문 가심 애린 추억이 많아서 ‘가시마리섬(가슴앓이섬)’이라 했을 성 부르다는 신동리 할배의 말씀이다.

 

▲ 삼신할매의 치마에 구멍이 뚫려 쏟아진 흙이 섬이 됐다고. 자라섬

 

‘관산향우회’ 까페에 올린 이승훈씨의 가시마리섬 추억담이 재미나다.

<우리 학교 동창들 중에는 신동 친구들이 많다. 신동은 관산국민학교에서 십리가 넘은 먼 거리라서 그 친구들은 책보를 허리에 매고 뛰어다녔다. 그래서 신동 친구들에겐 땀냄새 갯냄새가 몸에 배었었고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면 일등자가 많이 나왔었다. 신동 친구 중에는 학교를 가다 중간에 포기하고 놀아버리고 중간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6년 동안 결석은 물론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졸업을 한 친구가 신동에서 나와 그 시절 관산국민학교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 시절 신동 친구들한테서 신동 앞바다에 큰 소나무가 서 있는 가시마리섬(가슴앓이섬)이 있다는 것을 들은 이승훈씨.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문제 중 하나가 우리나라 남해에 있는 섬 다섯 개를 쓰라는 것이었다. 남해에 있는 섬 네 개를 쓰고 다른 섬이 생각나지 않아 가시마리섬이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시험지에 맞았다는 표의 동그래미가 아닌 반만 맞았다는 삼각형을 그려놨었다.>

장환도 가는 길에 바라보이는 솔섬. ‘자라섬’이라 한다.

 

▲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쪽은 정동진, 정북쪽은 중강진. 중간진과 일직선 땅끝이 정남진. 국립지리원은 경도 126도 59분 위도 34도 32분에 자리한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 앞 지점을 ‘정남진(正南津)’으로 공식확인했다. 정남진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정남진 전망대’

 

‘옛날 삼신할매가 치마에 흙을 담아 노두를 놓고 고흥을 건너가려다 치마에 구멍이 뚫려 쏟아진 것이 자라섬’이라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워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다리를 걸쳐놓고 자는 걸 좋아했다는 제주 설망대 할멈이랑 동무이신가. 그 할매 역시 치마폭에 흙을 모아서 퍼 나르다가 흙이랑 돌들이 여기저기 좀 튀는 바람에 생긴 것이 제주 오름들이라지 않는가.

두 발로 바다를 건너 다니는 스케일 큰 삼신할매를 떠올리는 바닷가. 치마 구멍에서 떨어진 흙부스러기로 섬 하나쯤은 거뜬히 만드는 거인 할매.

이 바다를 마주하고 갯바닥을 일구어 살아온 어매들이 거인이었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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