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진실과 어떻게 만나는가, 5.18 힌츠페터 스토리
영화는 진실과 어떻게 만나는가, 5.18 힌츠페터 스토리
  • 진수미
  • 승인 2018.05.2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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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진수미 칼럼

<5.18 힌츠페터 스토리>(2018, 장영주)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진실

문학예술과 역사는 진실 탐구를 목표로 한다. 진실의 사전적 정의는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다소 애매한 감이 있는 단어이지만 진실에 도달하는 경로는 무한히 다양하다. 꾸며낸 이야기인 문학예술을 통해서도 우리는 삶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

진실이란 우리를 압도하고 삶을 바꿔놓는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2018, 장영주)는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고 그에 압도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중적 픽션에 가려진 다큐적 진실

<택시운전사>(2017, 장훈)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작년 8월에 개봉, 1200만 관객을 동원했던 2017년 최고의 흥행작. 택시 운전기사 김사복(송강호 분)을 중심으로 힌츠페터(토마스 크래취만 분)의 5.18 광주 취재를 다룬 픽션/허구 영화이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동일한 사건을,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를 중심으로 다룬 논픽션/다큐멘터리이다.

이 차이가 만들어내는 간극은 예상보다 크다. <택시운전사>에서 김사복이라는 캐릭터는 하나뿐인 딸과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 외에 무관심한 소시민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5.18 힌츠페터 스토리>에 따르면, 김사복은 정치의식을 갖추고 힌터페츠의 취재에 일관되게 조력한 사람이었다.

대중 영화로서 <택시운전사>는 메인 캐릭터 김사복과 힌터페츠의 갈등과 캐릭터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영화에서 처음 만났고 힌터페츠의 사명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80년대 한국인 김사복과 안주하는 소시민의 삶을 냉소하는 기자 힌터페츠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역사적 진실을 겨냥하는 다큐멘터리로서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재미를 위한 허구의 삽입을 자제한다. 비디오에 찍힌 인물이 총탄에 쓰러졌던 사건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의 목소리로 술회함으로써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목격한 김사복은 동포애에 휩싸여 역사적 진실의 참혹함에 무너져내린 힌터페츠를 각성시킨다. 그의 통역으로 함께 시위에 참여, 정을 나누던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의 죽음은 힌터페츠를 무너뜨리게 했고, 김사복은 서울로 가던 핸들을 꺾고 광주로 돌아와 그를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물론 픽션이다. 광주를 잘 모르는 일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인 주인공을 영웅화하는 것. 이것이 <택시운전사>의 목적인 것이다.

 

목격자도 지나치지 않는 참상의 트라우마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카메라 뒤에 선 기록자의 냉정함과 초연함의 선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눈물 때문에 촬영을 지속할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인간으로서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은 2003년 인터뷰에서이다. 그는 1986년 광화문 취재 도중 군인의 폭행으로 목과 척추에 부상을 입고 기자 생활을 기대만큼 오래 할 수 없었다. 1995년 은퇴, 잘츠부르크에 정착한 후에도 반복적인 수술을 견뎌야 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기 전이나 쇠약해졌을 때 광주 군인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고 그의 부인은 전한다. 2차 트라우마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택시운전사>의 성공 이후 김사복 씨의 아들이 나타나 여러 매체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증언하였다. 김사복 씨는 1984년 간암으로 별세했는데 그 역시 광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에는 김사복 씨의 아들도 출연하여 <택시운전사>의 허구가 만들어낸 구멍을 메우는 증언을 한다.

 

다큐가 보완하는 진실의 힘

오늘날에는 다큐멘터리에 내재한 서사성에 주목, 완전한 논픽션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이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 여분의 반쪽 이야기로서 진실을 전한다. <택시운전사>의 허구도 문화생산물로서 진실을 전달한다. 정치와 역사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달, 각성하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한편,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이다.

대중영화는 오락물로서 쉽게 폄하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불만 앞에서 무력해지지만 대중 접근도 면에서는 탁월한 힘이 있다. 아마도 <택시운전사>로 인해 <5.18 힌츠페터 스토리>가 대중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택시운전사>를 인상 깊게 보신 분에게 <5.18 힌츠페터 스토리>를 필견의 영화로 추천한다. 픽션 영화가 대중 속으로 비상하며 떨어뜨린 깃털들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진수미 님은 글쟁이이며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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