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강진수의 '요즘 시 읽기' - 3회

우리는 시에서 스토리 라인을 완전히 읽을 수 없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시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먼 곳의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게끔 독자들을 유도한다. 그 이야기들이 풍기는 향기는 너무나 다양해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한 줄씩 천천히 읽어나가야만 한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무언가 플롯이 있는 것처럼 굴다가도, 시는 선명한 이야깃거리의 경로를 벗어나 다양한 초점들을 잡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이미지들이 하나의 제목 아래 집결한다. 이미지들이 분명하지 않아서 이 시는 수채화마냥 어떤 그림을 그려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시를 읽는 힘은 상상력이다. 시인은 무슨 감정으로 한 행씩 써내려갔는지 주목해보자.

 

비밀 하나를 이야기 해야겠다

누군가 올 거라는 가정 하에
가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간다는 비밀 하나를

어디서 누가 올 것인지
그것이 몇 시인지

남의 단추를 내 셔츠에
채울 수 없는 것처럼 모른다

녹는 시간을 붙잡자며
그때마다 억세게 터미널엘 나갔다

한 말의 소금을
한 잔의 물로 녹이자는 사람처럼
출발하고 도착하는 시간들을 기다렸다

떠난다는 말도 도착한다는 말도
결국은 헛된 말일 것이므로
터미널에 가서 봄처럼 아팠다

나직하게 비밀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가끔 내가 사라지는 것은
차갑게 없어지기 위해서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오해가 걷힐 것 같아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말하건대
내가 가끔씩 사라져서
한사코 터미널에 가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이 저녁을 앞세워 올 것 같아서다

이병률, <이구아수 폭포 가는 방법>, 《바다는 잘 있습니다》

 

제목은 이구아수 폭포를 연상시키는데, 시의 내용은 전혀 그것과 관련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시를 읽는 내내 이구아수 폭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구아수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구아수 마을의 터미널도 떠오르고, 오가는 버스들과 사람들의 풍경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그 마을의 터미널이지, 이구아수가 아니다. 이병률 시인은 무슨 이유로 이구아수 폭포가 아닌, 터미널에 대한 이야기를 시에서 풀어놓고 있을까. 그리고 그 터미널에서 그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병률 시인은 자신의 여행 속에서 시를 구성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분명 자신의 여행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그 전개와 끝은 먼 곳까지 뻗어있다. 한 마디로 여행이라는 주제에 자신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시는 그의 사상과 마음처럼 자유로워서 어디로까지나 뻗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제목과 내용이 분리되어버린다. 좀 더 자유로운 전개를 추구하기 위하여 시는 제목과 내용이 따로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거대한 순환 속에서 제목과 내용은 다시 만나지만, 그 전까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시를 들여다보자. 이구아수가 아니라 이병률 시인이 왜 버스와 터미널에 집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여행지를 오가는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터미널이다. 여행지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곳이 바로 터미널이다. 그런 터미널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구아수라는 다른 사람들의 구미를 확 끌 수 있는 주제가 제시됨에도 왜 시인은 터미널에서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만 있을까. 차라리 이구아수의 모습에 대해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냈다면 이 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시가 아니라 수채화다. 풍경을 선명하게 캔버스 위로 담아내는 것. 시는 단순히 풍경을 보고 옮기는 작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시는 현실 세계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즐기는 것 같이 남들에게 보이지만, 실은 또 다른 현실들을 경험하는 행위다. 그런 여행의 틀 속에서 쓰이는 시가 현실과 가깝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건 시는 현실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시는 애초에 흐릿한 이미지들에 의존해서 어떤 것을 이야기한다. 그 어떤 것이란 풍경이나 자아의 바깥에 있는 세계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자아의 속에 있다. 시는 그 자아의 속이 폭발하는 과정이다. 굉음을 내며 폭발하기도 하고, 아무런 소리 없이 빛만 번쩍거리기도 하고, 진동만 있기도 하는 등 그 폭발의 과정은 다양하다. 이병률 시인의 시는 강한 진동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수수하게 시를 전개해나가는 것 같지만, 시는 강한 진동을 가진다. 여행지에 집중하지 않고, 그곳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상상하게끔 한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의 일을 상상하게 만드는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시가 어디에 있을까.

“한사코 터미널에 가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이 저녁을 앞세워 올 것 같아서다.” 이 구절은 시를 마무리하고 있음에도 여진을 남긴다. 저녁을 앞세워 오지 않을 사람을 상상하게끔 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는 다양한 표현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구아수라는 미지의 공간은 시를 더욱 호기심의 한가운데에 밀어 넣는다. 이구아수라는 곳의 터미널은 어떤 모양새일까. 시인은 그곳에서 누구를 그토록 기다렸을까.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오지는 않더라도, 오기를 그토록 희망한 것이 아닐까. 시인의 삶과 관계,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시구 하나하나에 얽혀 있는 것이겠지만, 이병률에게는 단 한 줄에서도 애절함을 읽을 수 있다. 상상력은 시인이 가지는 또 하나의 힘. 시를 따라 우리도 미지의 공간에 머물러 보자. 터미널에 앉아 시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지도 모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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