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사람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 (2)

▲ 지게차와 크레인 없이는 일이 안 되는 시대

 

세월 참 빠르기도 하다. 난생 처음 접하는 동계 올림픽, 그 중에서도 컬링 경기에 빠져서 와아, 와아, 소리를 질러대며 세상에 이렇게도 이상한 게임이 다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를 수천 번도 더했던 그때가 겨우 사나흘 전 같건만, 어느새 벌써 모내기철이 되었다. 앞을 봐도 흰 눈이요, 뒤를 봐도 흰 눈이었던 그때 그 시절은 언제 어디로 가버렸는지 흔적조차 없고, 지금은 아침에도 개구리 소리요, 저녁에 온통 개구리들 소리뿐이다.

이 계절의 경운기센터는 문자 그대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단 눈을 떴다 하면 다시 감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피곤해서 눈 좀 붙이려고 하면 여기서 전화가 오고, 이제 됐는가 하고 한숨 돌리려 하면 또 저기서 전화가 온다. 아예 오토바이 같은 것을 타고 달려와서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슨 큰 일이 났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은 고장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부주의한 탓이지.”

정정태씨는 우스워 죽겠다는 투로 말한다. 하긴 그럴 것이다. 뭔가를 아는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마련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큰일이다. 그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전화를 안 받으면 달려간다. 달려가서 큰일났다고 소리를 친다. 세상이 금방 무너질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달려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볼트 하나가 빠졌거나, 너트가 뭔가에 부딪혀서 휘어진 정도일 뿐이다.

 

▲ 믓이 잘 안 되네

 

“어떤 때는 그냥 미친당게요, 미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처럼 우는 소리를 내니 안 가 볼 수도 없고, 해서 달려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고 보니 그 허탈감에 그만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전화로 설명을 듣고, 전화로 처방을 해주고자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가 않다. 기계의 성질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다만 하나 기계가 모든 일을 다 해준다는 믿음만 있는 사람에게 기계의 작동원리를 설명한다는 게 쉬운 일일 수는 없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기계를 별로 사랑하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는다. 사랑도 없고 아낌도 없다 보니 기계를 마구 함부로 부리고, 부려먹고 나서는 아무 데나 방치해 버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기계의 특성상 녹이 슬고, 볼트와 너트가 따로 노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고장도 아닌 것을, 고장이 났다고 빨리 와서 고쳐달라고 호들갑을 떠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니, 경운기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트랙터 시절의 새로운 풍속도인 셈이다.

정정태씨가 운영하는 경운기센터는 시작이 경운기였던 까닭에 경운기센터라고 부르는 것일 뿐, 사실은 경운기를 고쳐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들판으로 경운기를 끌고 나오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트랙터가 없는 사람도 요즘은 경운기로 논밭을 갈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당 얼마 하고, 가격만 정해지면 트랙터가 달려와서 논밭을 갈고 써래질까지 다 해버린다. 경운기로 하자면 사흘 나흘 걸리는 일을, 트랙터가 한 시간여 만에 뚝딱 해치워 버리니, 경운기는 끼어들 틈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끼어들 이유가 없어져 버린 셈이다.

 

▲ 아따 이놈의 것이 으째 안 빠진다냐

 

그 바람에 정정태씨의 부담은 커져만 갔다. 경운기 시절에는 몽키 스패너 등 공구 몇 가지만 있으면 뚝딱뚝딱, 어떻게든 경험과 창의력과 응용력에 의지해서 수리를 해낼 수 있었지만, 트랙터 시절이 되고 보니 창의력이나 응용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덩치 큰 기계를 다루자니 지게차도 있어야 되고, 크레인이 장착된 대형 트럭도 필요하고, 이런저런 각종 새로운 공구를 구입해야만 하는데 이것들이 모두 빚이다. 빚을 지고 싶어서 지는 게 아니다. 없으면 안 되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빚을 지는 것일 뿐이다.

“젤로 힘든 것은 말이요 잉? 힘든 일을 해줬는디도 힘든 일을 해줬다는 사실을 몰라준다는 것이랑게요.”

경운기 시절에는 내가 못 하는 일을 네가 해줬구나 하는 마음이 사람들 가슴에 있었단다. 그래서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세 번 네 번 연거푸 인사를 하고, 무엇이든 먹을 것이 생기면 함께 먹자고 달려오는 정이 있었더란다.

트랙터 시절이 되고 보니 사람 마음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예전의 그런 정을 느낄 수가 없게 돼버렸다. 어떻게든 너한테 이익이 되니까 나한테 그 일을 해준 것 아니냐 하는 투로 변변한 인사도 없이 수리비나 대충 꺼내놓고 획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예 무슨 노예라도 부리듯이 턱짓으로 이것저것 지시를 하다가 끝내는 까닭도 없는 욕지기를 퍼붓는 사람도 생겼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더냐 하는 노래라도 흥얼거리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어려운 풍속이 아닐 수 없다.

 

▲ 이앙기 수리중

 

그래도 뭐 어쩔 것인가. 농기계 수리는 정정태씨의 직업이기 이전에 취미였다. 너무도 어린 나이 아홉 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농기계 수리는 대단한 매력적으로 그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호기심이란 대개 나이 듦과 비례해서 바뀌기 마련이지만, 정정태씨의 농기계 수리에 관한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의 영역이 아니었던 까닭에 그 설렘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물론 모른다. 글쎄,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아홉 살 소년으로 하여금 경운기센터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이십대를 넘어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에 이르도록 처음 꿈을 그대로 간직하게 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혹시 또 모른다. 처음 들어갔던 경운기 센터에서 얻어맞기를 밥 먹듯이 하다가 뛰쳐나왔을 때,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푼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의 시가지를 질주하던 그 짧은 방황의 시기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생은 어쩌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녀, 산골 마을 영암에서 광주로 유학 나와 있던 그녀를 몇 번인가 만난 뒤에 그는 결심했었단다. 그때 나이 열일곱, 그 팔팔 뛰는 이팔청춘의 당돌한 마음으로 그는 그녀에게 이런 요지의 말을 했더란다.

나는 너를 장난으로 만나지 않는다. 너도 나를 장난으로 만나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 네가 만약에 나를 장난으로 만나고 있다면 내일부터 그만 만나자. 나는 장난으로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잘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장난으로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잘 살자면 우선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는 남자가 돈을 벌자면 일찍 결혼을 해야 한다. 일찍 결혼을 하면 쓸데없는 일에 돈을 쓰는 일이 적어지니까,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참말로 힘들다 힘들어

 

너무도 진지하게 미래를 얘기하는 남자의 태도에 얼떨떨해진 그녀, 그녀도 마침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부모님이 광주로 유학을 가야 한다 해서 나와 있는 것일 뿐이었다.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결혼 얘기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는 했겠지만, 일찍 결혼해서 일찍 돈을 벌고 싶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 나니 문득 그것도 괜찮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그날 이후 그녀는 정정태의 ‘여자’가 되기로 마음을 단단히 굳힌 사람처럼 다른 남자애들은 쳐다도 안 보고 오직 한 사람 정정태 옆으로만 왔다.

그렇게 그들은 정분이 들었고, 남자는 마침내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 뵙기로 했다. 결과는 최악이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까? 아니었다. 남녀관계란 말리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당연히 당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젊은 남녀는 아무도 모르게 둘이서만 은밀히 만난다는 생각으로 만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딸년’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는 등의 경고를 수도 없이 남발했지만 어쩔 것인가.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어머니는 차마 ‘딸년’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지는 못하고, 다른 데로 감춰놓는 초보적인 전술을 채택했다. 청년 정정태는 감춰놓은 그녀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서 데리고 광주 옆동네 송정리의 부모님에게로 갔다. 부모님은 다행히도 그녀를 어여뻐하셨다.

 

▲ 항꼬 해보자

 

그들의 그것은 이를테면 신혼생활이었다. 슬픔과 아픔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워낙 팔팔 뛰는 청춘이기에 둘이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했다. 게다가 언제 은신처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두 남녀의 정분은 나날이 깊어져 갔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탐문을 했던 것인지, 어느 하루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가 들이닥쳤다. 그 즈음 그녀는 이미 임신 중이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고, 당사자들도 아직은 몰랐다. 어쨌든 그녀는 어머니와 오빠의 손에 이끌려 광주로 갔고, 광주에서 다시 서울로 끌려갔다.

결혼한 그녀의 큰오빠가 서울에 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오빠가 그렇듯이, 그녀의 오빠도 그녀에게는 다정함과 무서움이 공존하는 대상이었다. 아무 일이 없을 때는 한없이 다정해서 마치 애인 같지만, 남자가 생겼다든가 하는 식의 일이 생겼을 때는 아버지보다도 열 배는 더 무서워지는 존재 오빠. 그런 오빠의 감시 속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는 못 나가는 일종의 연금생활을 그녀는 이제 해야만 했다.

그 즈음 청년 정정태는 송정리의 경운기센터에 새로이 일자리를 잡아서 그야말로 열심히 출퇴근을 해 오고 있었지만, 그녀를 빼앗긴 뒤로는 아무 일도 못 하게 돼버렸다. 경운기센터 사장을 꿈꾸며 온 종일 경운기와 씨름을 하던 그는 이제 하루 종일 먼 데를 보며 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고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따라 정정태는 전화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무슨 기대를 갖고 전화기를 지켰던 것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그냥 전화기 옆에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받았다. 그런데 놀라워라. 오빠에게 잡혀간 그녀가 아닌가.

오빠에게 연금된 그녀는 매일 매시 매초, 그야말로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바야흐로 기회가 왔다. 시간은 십분 남짓이었다. 길다면 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짧은 시간 십여 분 동안 그녀는 부리나케 대문을 빠져 나와서 동네 구멍가게의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통화를 길게 할 수는 없었다. 서로의 안부도 묻는 둥 마는 둥 해야만 했다. 그녀는 암호문이라도 읽어주듯이 오빠가 사는 동네 이름과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남자는 그것을 외웠다. 그리고 그날로 그는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우여곡절을 몇 번이나 거친 끝에 두 남녀는 바야흐로 상봉을 했고, 그길로 그냥 다시 호남선 완행열차를 타고 송정리로 왔다.

 

▲ 진짜 경운기

 

이제 아무렇게나 그냥 살 수는 없었다. 송정리에 계속 있으면 보나마나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에게 다시 끌려갈 것이었다. 두 사람은 궁리를 했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렇게 숨어들어 온 곳이 고창군 상하면 소재지였다.

그나마 운은 그럭저럭 좋았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하면에 들어오자마자 경운기센터에 취직을 했으니, 운이 나빴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와아따 그란디 그 사모님이 말이요 잉. 만약에 사모님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렇게도 일찍 내 가게를 갖겠다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오.”

정정태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혀가 내둘러진다는 듯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경운기센터 사장님은 한없이 친절하고 자상해서 형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이었지만, 그 아내는 언제 무엇 무엇을 어떻게 잘못 먹었는지 사람 보기를 내다버린 걸레 보듯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예 존재 그 자체를 무시해 버리기 일쑤였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자면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쩔 것이요. 나도 사람인디, 승질이 있는디, 까딱 잘못 하먼 살인내겠더라고요.”

그것이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 하나의 생각 때문에 경운기 센터를 그만두었고,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각오와 함께 외상으로 땅을 빌리고 공구 몇 개를 장만한 다음 경운기센터라는 이름을 단 매우 초라한 간판을 걸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모르게 둘이 손잡고 오순도순 잘살아 보자고 숨어들어온 상하면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토박이가 되어 갔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했던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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