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위반사례’ 집중점검

한국경제의 해묵은 숙제인 ‘부실 대출’ 문제를 놓고 금융당국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에서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 등을 포함한 기타대출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타대출이 주택담보대출보다 부실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대출의 질이 나빠진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과거처럼 주택을 담보로 대출하는 한도가 이미 한계점에 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대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대출’ 문제를 점검해 봤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예금취급기관의 기타대출 규모는 401조 836억원으로 1년 전보다 9.5%나 증가했다. 전체 가계대출 또한 7.2% 증가해 983조 4765억원으로 집계됐다.

무엇보다 기타대출 증가세가 전체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데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가계대출에서 기타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40.8%로 전 분기보다 0.1% 높아졌다.

이 같은 추세는 한은이 관련통계를 작성한 2008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37∼39%대에 머물렀지만 서서히 또 다른 뇌관으로 떠 오르고 있다.

2015년 1분기엔 37.8%까지 줄어들었지만 이후부터 꾸준히 상승해 2017년 1분기 처음으로 40%대를 돌파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대출 규제 정책의 타깃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삼으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확대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둔화했지만 상황이 어려워진 금융소비자들이 기타대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예대율 규제’ 유예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을 보면 기타대출은 2015년 3분기부터 주택담보대출을 꾸준히 앞섰다. 올 1분기에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5.8%로, 기타대출 증가율보다 3.7% 낮은 것으로 타났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와 관련 “기타대출은 연체율이 상당히 낮아 건전성은 전반적으로 양호하고 기타대출 증가도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일부 비은행 신용대출은 차주의 신용도가 낮고 대출 금리도 높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리가 인상되거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부실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체로 기타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높고 변동금리 비중도 큰 편이어서 위험 요소가 적지 않다.

이른바 풍선효과도 언급되고 있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잡기 위해 나서면서 기타대출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을 비롯한 신용대출은 금리 등을 놓고 볼 때 대부분 주택대출보다 후순위 상품”이라며 “그만큼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커지기 마련”이라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손쉬운 가계대출로 인한 은행들의 이른바 ‘이자놀이’를 막기 위해 마련된 규제안을 일정 부분 유예하기로 했다. 예대율 산정시 가중치를 최대 15% 늘리는 규제안이 당초 올 하반기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은행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2020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신용대출·개인사업자대출 증가 우려,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차주의 부실화 가능성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며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을 통해 구축된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 기반을 더욱 공고화하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또 올 10월까지 저축은행 등에 주택담보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고정금리·분할상환 등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개선 노력을 모든 업권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시범운영을 올 해 실시한 뒤 은행권은 올 하반기부터, 비은행권은 내년부터 DSR을 관리지표로 도입할 예정이다.

은행의 예금잔액에 대한 대출잔액의 비율인 예대율 산정 방식을 개선하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금융당국은 현재 은행업 감독규정을 통해 은행들이 예대율을 100% 이하로 관리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예대율 산정 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간 가중치를 차등화할 예정이다. 가계대출에 대해서는 가중치를 15% 상향하고, 기업대출은 15% 하향 적용할 계획이다. 개인사업자대출 가중치는 현행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중치를 조정한 예대율 규제는 2020년 1월부터 시행해 은행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했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업대출을 취급할 때까지 적용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개인사업자대출은 가계대출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게 당국의 입장이다.

김 부위원장은 "주택담보대출 규제회피목적인 신용대출취급, DSR의 형식적 운영, 개인사업자대출로의 우회대출을 ‘3대 위반사례’로 선정하고 강력하게 단속할 것“이라며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집중관리회사’ 선정

가계부채는 이미 1500조원에 육박하면서 한국경제의 최대 장애물로 지목되고 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업계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만큼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각종 우회대출과 DSR의 형식적 운영에 대해 집중 점검하기로 한 것은 ‘선전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감원, 은행연합회 등 관계기관과 ‘가계부채관리점검회의’를 갖고 가계부채대책 후속조치 추진실적과 가계대출 동향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올 1분기 국내 가계신용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한 1468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 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하락한 수치로 증가폭은 다소 둔화됐다. 하지만 은행권 가계대출은 대출 규제 선반영 등 일시적 요인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1조원 이상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당국은 또 대출규모가 급증한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집중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초 계획보다 대출규모가 증가하는 금융회사를 ‘집중관리회사’로 선정해 목표이행상황을 밀착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개인사업자대출 역시 가계대출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히 관리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2금융권에 개인사업자대출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는 한편 그간 대출 현황과 건전성 점검을 토대로 추가 관리방안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취약차주와 고위험가구 등에 대한 면밀한 정책대응도 준비 중이다. 지난해부터 금리상승에 대비해 추진해 온 최고금리 인하 및 연체금리 인하, 원금상환유예 등 각종 정책들의 운영효과를 분석해 미비점을 보완하겠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신용대출, 개인사업자대출 증가 우려,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차주 부실화 가능성 등 올해엔 다양한 위험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며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을 통해 구축된 안정적 관리기반을 더욱 확고하게 다져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한국경제의 암초로 불리는 ‘가계대출’ 문제가 하반기엔 좀 더 개선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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