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찬란한 태양의 축제, 천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백야! 찬란한 태양의 축제, 천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5.28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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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웨덴에게는 천국과 같은 계절이 돌아왔다. 지금 스웨덴은 찬란한 태양의 축제 속에 있다. 1년 중 가장 밝고 따뜻하고 싱그러운 계절인 것이다.

스웨덴은 남북으로 국토의 길이가 1570km, 최북단이 북위 69도이고, 최남단이 북위 55.5도다. 강원도 고성(북위 38.5도)에서 제주 서귀포(북위 33.2도)까지가 620km 정도인 한반도를 참고한다면, 같은 기간이라도 스웨덴 전국의 기후를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6월은 스웨덴 어디든지 천국 같은 계절의 시작이다.

 

▲ 스톡홀름 시청사가 건너다보이는 이바르 로스 공원(Ivar Los Park). 여름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태양을 맞기 위해 모이는 대표적인 곳이다.

 

스웨덴의 여름인 6, 7, 8월이 찬란한 태양의 축제인 것은 백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5월 말 현재 스톡홀름을 기준으로 아침 해 뜨는 시간은 새벽 3시 50분, 해지는 시간은 저녁 9시 40분이다. 백야가 좀 더 극심한 북쪽 도시 키루나(Kiruna)는 요즘 새벽 1시 30분 경 해가 떠서 밤 11시 30분 경 해가 진다.

이런 현상은 6월 20일을 전후해서 극에 달한다. 그 때쯤 스톡홀름의 해 뜨고 지는 시간이 지금의 키루나 정도가 되고, 키루나는 해가 뜨고 지는 게 없어진다. 이때부터 3개월 이상 스톡홀름의 북쪽은 해가 지지 않는다. 서쪽으로 기울던 해는 지평선(또는 수평선) 위에서 평행으로 이동하다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떠오른다. 이게 진짜 백야인 것이다.

백야는 단지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의 의미보다 그 태양이 인간과 대지에 직접 드러나는 시간의 의미가 강하다. 즉 일조량의 문제다. 스웨덴의 6, 7, 8월은 건기다. 가끔 소나기가 잠깐 오기는 하지만, 3개월여의 시간동안 새파란 하늘에는 예쁜 모양의 새하얀 구름 조금과 극단적으로 빛나는 태양뿐이다. 워낙 습도가 낮다보니 찜통더위는 없어도 햇볕은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그런데 올해는 태양의 마음이 바빴다. 이미 지난 4월 중순부터 스웨덴의 날씨는 빛났다. 지난 해에는 4월에 심심찮게 눈까지 내렸고, 5월에도 흐린 날씨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올해 5월은 스톡홀름 기준으로 흐린 날이 단 3일 뿐이었다. 심지어 하늘에 구름이 50% 이상을 덮은 날이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스웨덴의 하늘이 찬란하게 빛나면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호숫가 바위나 짙푸른 초원은 물론 도심의 카페와 술집의 바깥자리며, 하다못해 거리의 벤치와 건물의 계단에도 몰려있다. 이미 집 발코니 뙤약볕 아래서 그릴을 꺼내 고기를 굽고, 훌훌 옷을 벗어던진 채 손에는 맥주를 들고 태양을 만끽한다.

 

▲ 스톡홀름 대학교 캠퍼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실내 도서관이나 카페보다도 푸른 풀밭에서 독서하고, 토론하고, 과제를 한다. 그들의 의상을 보면 학교가 아니라 해변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별로 옷을 많이 입지도 않는다. 해변이나 강가가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최소한의 옷을 입는다. 그렇게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대로 거리에서, 숲에서, 호숫가나 건물의 발코니에서 온몸으로 태양을 받는다.

아무리 뙤약볕이라도 그늘을 찾는 이들은 없다. 아마 어느 공원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한국 사람을 비롯한 아시아 사람일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그늘을 피해 햇빛을 찾는다. 해바라기라도 저렇게까지는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6, 7, 8월에 스웨덴 사람들이 ‘집단 과다 노출증’에라도 걸린 양, 뙤약볕에 제 살 익히는 카니발리즘 환자인 양 온몸으로 태양을 찾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가을과 겨울과 봄을 이어온 긴 어둠과 흐린 날씨 때문이다. 백야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극야 때문이다.

다시 위도 얘기를 해보자. 북위 67도에 있는 스웨덴의 북부 도시 키루나는 9월 20일 경인 추분부터 다음 해 3월 20일 경인 춘분까지 거의 하루 종일 밤이다. 이 시기 오전 11시가 넘어야 해가 뜨고, 오후 2시면 해가 지는 날이 많다. 세 시간 쯤 해가 떠 있다고는 하지만 낮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흐린 날이 부지기수라 어슴푸레 하다. 동지를 즈음한 12월 20일에 이르면 사실상 아예 해가 뜨지 않는다.

스톡홀름의 경우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북위 59도인 스톡홀름은 북극권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남쪽이지만, 12월에는 보통 오전 9시가 돼야 해가 뜨고, 오후 3시 30분이면 해가 진다. 마찬가지로 흐린 날이 많아 그나마 해가 떠 있는 시간에도 해를 보기는 쉽지 않다. 결국 백야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극야 또한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의 의미보다 그 태양이 인간과 대지에 직접 드러나는 시간의 의미가 강하다. 일조량이 절대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 스톡홀름 인근 시그투나라는 오래된 마을의 호숫가 공원. 가족이 함께 나와 불밭에서 태양을 만끽하고 있다.

 

일조량은 비타민의 자연 섭취와 직결한다. 태양을 온몸으로 받지 않은 사람은 태양을 온몸으로 받은 사람에 비해 대체로 비타민이 부족하다. 비타민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것은 의학계 정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복지 국가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 과거 한국 보다 자살률이 높았던 것, 유럽 최고의 우울증 발병률 국가인 것이 바로 그 태양 때문이다. 6, 7, 8월을 뺀 나머지 9개월의 상당부분 태양을 접하지 못하고 사는 환경 때문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6, 7, 8월만 되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미친 듯이 해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옷이 몸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겨울잠에 들기 전의 동물처럼, 그 몸에 햇빛을 충분히 저장해야 했다. 그것은 ‘태양을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앞서 언급했듯이 올해는 두어 달 일찍 태양의 향연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은 8월이 끝나고도 두어 달 더 태양의 향연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는 기상학자들의 예측도 있다. 스웨덴이 한층 더 행복의 함성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별로 축복받지 못한 자연 환경 속에서도 가급적이면 밝고 친절하다. 그런 극단적인 자연 환경 조차 신에게서 받은 축복으로 생각하고, 그 축복을 즐기려고 애쓴다. 과거 자살하거나 자살하려는 사람도 많았고, 우울증이 범람한 탓에 길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래도 스웨덴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가 보편적이다.

그래서일까? 예년보다 훨씬 태양의 축복이 빨리 찾아온 스웨덴의 거리는 사람도, 자연도 밝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해가 지지 않는 황홀함 아래서 맥주 한 잔 움켜쥐고 충분히 웃는다. 이 여름을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긴 어둠의 시간에도 행복하려고.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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