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용 배터리로 엿본 또다른 세상
충전용 배터리로 엿본 또다른 세상
  • 김덕희
  • 승인 2018.05.29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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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11살 머슴살이의 소년의 일과는 대충 이랬다. 일어나는 시간은 이른 새벽. 내가 그 집에 오기 전까지 집주인 아들이 했던 쇠죽 쓰는 일을 내가 대신해야 했다. 그리고 소에게 먹이를 먹이고 나면 그 다음은 아침식사. 그리고 곧바로 들로 나간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논·밭 일을 했다. 집에서 키우는 누에에게 먹일 뽕잎 따기도 내 일과였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 되었다. 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다시 소에게 먹일 쇠죽을 끓여야 했다. 쇠죽을 다 끓여 소에게 먹이고 나면 보통 늦은 밤이 됐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황.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이른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었다. 항상 식모로 일하는 누나가 나를 깨우러 왔는데 난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부비며 일어나야만 했다. 아직 어린 나이의 내가 감당하기엔 많이 힘이 부쳤던 모양이다.

물론 기쁜 일도, 즐거운 일도 많았다. 이전에도 얘기했듯 가장 기쁜 일중 하나는 바로 먹는 문제였다. 그 근처에서 꽤 부잣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보니 항상 흰쌀밥이 상 위에 올라왔고 내가 집에 있을 땐 감히 상상도 못할 다양한 반찬이 등장했다. 물론 주인집 가족들과 다른 상을 따로 받아 먹었지만, 식모 누나의 배려로 난 아주 배불리 맛있는 식사를 항상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은 바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집 역시 산골이라 아직 전깃불이 들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있었고 볼 수도 있었다. 바로 커다란 충전용 배터리 덕분이었다. 텔레비전은 아마 14인치 쯤 되는 작은 크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그 집 안방에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는데, 그 집 식구들은 일이 끝난 저녁이 되면 항상 안방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았다. 나도 일을 마치고 나면 눈치껏 안방으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보았다. 주인들도 나무라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종일 쌓였던 고단함도 모두 잊혀질 정도로 즐거웠다.

그 당시 텔런트 김세윤씨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임금님의 첫 사랑`이라는 사극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면 임성훈·최미나씨가 진행하는 `쇼는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당시 송창식씨의 `왜 불러` 이은아씨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등 여러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 속 그런 모습들은 내가 처한 현실과는 너무도 달랐다. 낮에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전날 가수들이나 연기자들의 연기를 떠올리면서 `나도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 연기하고 노래 부를 수 없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가끔 충전용 배터리가 다 닳아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땐 집주인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충북 음성 읍내에 있는 배터리 충전소에 가 재충전을 해오곤 했다. 어쩌다 배터리 충전이 빠른 시간에 안돼서 며칠씩 걸릴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보던 프로그램의 내용들이 궁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텔레비전 외에 머슴살이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는 또 한가지가 있었다. 그런 바로 집에서 가져온 하얀색 토끼 두 마리였다. 두 마리의 토끼는 그 집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낮에 들판에서 일을 할 땐 틈나는 대로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수 있게 토끼풀을 잔뜩 뜯어왔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그 녀석들에게 달려갔다. 하루 종일 굶고 있어서인지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난 뜯어온 풀을 한움큼씩 집어서 토끼장 안으로 넣어주었다. 지금도 풀을 넣어줄 때마다 입을 오물거리던 그 모습들이 그립다.

어느 무던히도 더웠던 한여름날엔 들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쓰러진 적도 있었다. 뽕밭이었다. 무거운 농약 분무기를 지고 뽕나무에 농약을 치다가 고꾸라지고 만 것이었다. 농약 기운에 취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또하나는 조그만 몸집에 너무 크고 무거운 농약 분무기를 등에 진게 이유이기도 했다. 그 땐 정말 집이 너무 그리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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