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청춘, 취업준비생을 만나다-간호사 지망생 정민이 1회

‘취준생’은 한 단어로 요약되는 사람이다. 사회문제나 특정 계층으로 치환되어 개개인의 존재는 지워지고, 어떤 사람인지, 인생관이 무엇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일단 취업준비를 시작하면 주변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취준생 A’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와 삶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없는 것이기에 직접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청춘의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다.

 

 

‘취준생 시리즈’를 기획하자마자 떠오른 건 오래된 친구 정민(가명)이었다.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정민은 주변인들 중 가장 취업 준비에 열심이었다. 방학이 되어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고, 시험기간이거나 실습 중이라는 간단한 소식만 주고받았다. 한 동네에서 이웃처럼 자란 친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건 꽤 섭섭한 일이었다. 우리는 절대 맞출 수 없을 것 같은 스케줄 속에서 간신히 시간을 내어 만났다.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인 할 일을 잠시 내려둔 상태였다.

고등학생 정민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여유롭지 못한 형편이 발목을 잡아 취업이 보장되는 간호학과를 가기 위해 하향지원을 했다. 그 탓에 정민은 신입생 때부터 공부가 맞지 않는다며 힘들어했고 실습을 가기 전에는 주사를 놓을 자신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어느 날, 정민의 아버지가 쓰러져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으셨다. 걱정스런 마음에 아버지의 안부부터 물었는데, 정민은 대뜸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 이제 정말 간호사가 되고 싶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당황해서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정민을 쳐다보았다. 정민은 담담하게 실습을 하면서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마음이나 몸이 아파서 온 환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웃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분들의 곁에서, 일상에서 도움을 드리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민이 아버지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는 것과 곧 가장이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아픈 환자들이나 자신처럼 웃음을 잃은 환자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정민을 보며 그녀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는지, 학교생활을 힘겨워했는데 친한 친구는 생겼는지 말이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써. 방학이 되면 또 자기소개서를 쓰고 SAT(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를 준비하고 토익 공부를 하지. 실습기간에는 실습을 하고.”

간호사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직업군이라 대학 성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매학기 긴장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스스로 선택하거나 조율하지 못하고 학과에서 정해준 커리큘럼과 시간표를 소화해야 한다. 잠깐 쉬고 싶어도 한 학기를 휴학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아예 1년을 쉬어야 해서 선뜻 휴학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있는 방학은 각종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라 실습까지 나가면 1년이 가득 채워진다. 정민에게 쉬는 날이나 친구를 사귀는 것은 사치였다.

“토익 때문에 방학에 학원을 다닌 거구나?”

“비용이나 시간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되니까 처음엔 독학을 했어. 근데 시험을 보니까 영어 실력보다 기술이 더 중요하더라. 그래서 학원을 다녔는데 결국 실습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한 달밖에 다니지 못했어. 틈틈이 자투리 시간에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특히 토익이나 SAT는 일반 기업에서만 요구하는 줄 알았는데 간호사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1차 관문과도 같단다. 게다가 요즘은 인성도 스펙이 되는 세상이기에 봉사 동아리나 외부 봉사단의 활동도 필수적이다. 취업을 하려면 그냥 열심히 잘 하는 수준이 아니라 만능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간호학과는 취업률이 높다는 이유로 경쟁률이 치열한데 수능이 끝나고 대학생이 되어도 고생길만 열리는 셈이다. 그러나 의대생들만큼 그 고생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지는 의문이다. 간호학과 학생들은 물론 우리에게도 악명이 높은 간호학과의 실습 현장은 또 어떤 풍경일까.

“실습은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병원과 기간을 정해줘서 채워야 하는 시간이 있는 거야. 간호사 선생님들이 인수인계나 차트 정리 같은 일을 하시는 걸 관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를 재는 간단한 일들을 직접 해. 그것 외에도 선생님들이 시키시는 일이 있거나 위급상황이 생기면 대처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사실상 이론밖에 배우지 않은 학생들을 무서운 현장으로 내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환자들은 인내심이 없고 일하느라 바쁜 간호사들은 더더욱 정신이 없다. 학생들은 방해되지 않도록 눈치껏 행동하면서 매순간마다 긴장하고 퀘스트를 해결해나간다. 필자는 치과대학에 다니는 지인이 있는데, 그는 3학년이 되면 본과에 진입하고 학교 내에 위치한 현장에서 실습을 진행한다. 학생들만을 위한 현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담당 교수들이 직접 가르치면서 현장을 책임지고 지휘하고 환자들도 학생들의 실습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반 치과병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를 진행하지만 담당 교수가 매 과정에 참여해서 위험하지는 않다. 물론 의사와 간호사가 하는 일이 다르고 위험성의 차이가 있겠지만 간호사를 양성하는 인프라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 아닐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환자, 예비 간호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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