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뻑뻑해지고, 숨도 쉬지 못하고…바로 이거야, 인생영화!
눈은 뻑뻑해지고, 숨도 쉬지 못하고…바로 이거야, 인생영화!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8.06.01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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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버닝’(이창동 감독)
▲ 영화 ‘버닝’ 포스터

상영시간 내내 숨을 제대로 쉬었는지조차 모르겠다. 혼자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뻑뻑하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깜빡거리지도 않고 집중했다. 간만에 제대로 된 한국 영화 한편을 건졌다.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들뜬 기분이 영화관을 나오고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버닝’이다.

지난 4월 12일 제 71회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버닝’을 경쟁 부문에 초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창동 감독은 지금까지 연출한 여섯 작품 중 총 다섯 작품이 칸 영화제에 초대되는 전대미문의 감독이 됐다. 2000년 제 53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 ‘박하사탕’, 2003년 제 56회 칸 영화제 비평가협회 특별초청작 ‘오아시스’, 2007년 제 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밀양’, 2010년 제 63회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시’, 그리고 여기에 ‘버닝’이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8년 만에 선보이는 복귀작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입증했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이 세 사람의 만남과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담았다. 종수와 해미의 삶에 불쑥 들어온 벤이 두 사람의 인생에 균열을 일으킨다. 자신의 취미를 비밀스럽게 고백하는 벤, 흔들리는 종수, 벤이 고백했던 날 이후 사라진 해미까지. 이창동 감독 작품에서는 접한 적 없었던 미스터리한 스토리를 힘 있게 밀고 나간다. 영화 중반부 해미의 실종 이후부터 전개되는 종수의 벤을 향한 의심과 추적, 그리고 벤의 행적들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종수의 끈질긴 의심은 결국 관객들이 “해미를 사라지게 만든 것은 혹시 벤이 아닐까?”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과연 그 미스터리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끝끝내 마주치고야 마는 강렬한 결말은 영화의 정수로 남는다.

‘완득이’, ‘사도’, ‘베테랑’ 등을 통해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유아인. 이번 작품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순수하고도 예민한 주인공 종수로 완벽 변신했다. 배우로서의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몰입도가 대단하다. ‘완득이’에선 완득이로, ‘사도’에선 사도세자로, ‘베테랑’에선 조태오로 완벽히 변신했던 그다. 이번 역시 완벽한 종수다. 그의 연기는 파워풀하고, 안정적이다. ‘배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란 사실을 증명해내는 대단한 연기자다.

그의 파트너로 나온 전종서. 어디서 갑자기 이런 무서운 신예배우가 튀어나왔을까 싶다.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해미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한발 더 나아가 캐릭터를 한층 더 매력적이게 만들어냈다. 그녀가 대마초에 취해 노을을 바라보며 맨몸으로 춤을 추는 장면에선 넋을 놓았다. 특히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에서 고독한 표정으로 느릿한 변이는 그가 신인이라는 점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놀랍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 몸짓 하나하나가 잊히지 않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 영화 ‘버닝’ 스틸컷

 

여기에 인기 미국 드라마 시리즈 ‘워킹 데드’에 출연하며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배우 스티븐 연. 이번에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미스터리한 면모를 지닌 캐릭터.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지적인 매력을 더해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정체불명의 남자 벤 캐릭터를 완성했다. 약간은 어눌한 한국어가 오히려 캐릭터와 더 잘 어울렸다. 항상 미소를 짓는 얼굴이지만 그 얼굴엔 부드러움과 살기가 공존했다. 영화의 긴장을 주도한다. 읽기 어려운 표정에서 더욱 미스터리함이 느껴져 한층 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그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인기를 모으는 이유를 다시 입증했다.

세 배우들의 시너지는 대단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영상미는 영화 전체의 퀄리티를 높인다. ‘마더’, ‘설국열차’, ‘곡성’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홍경표 촬영감독. 캐릭터의 심리를 담아내는 섬세한 촬영뿐만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 워킹으로 호평을 받으며 한국 영화평론가협회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촬영상 등을 수상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촬영감독이다. 이번 영화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조명 콘셉트는 자연광을 기본으로 하되,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광선을 찾아서 그 순간을 담아내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바로 종수, 벤, 해미가 나란히 앉아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거의 한달 가까이 노을 촬영에 집중했다고 한다. 조명 하나 설치하지 않은 현장. 해가 서서히 지면서 시작되는 감미로운 재즈 풍의 음악, 그리고 음악과 분위기에 취한 세 젊은이가 숨겨진 욕망과 비밀을 드러내는 장면은 관객들을 완전히 빨아들인다.

최근 영화중 가장 영화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 한국영화 중엔 딱히 ‘인생영화’라 칭할 게 없었는데 이제 당당히 내세워도 될 듯하다. 생각보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절대 기회를 잃지 말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제목처럼 활활 타오르는 정말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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