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2018년 연초부터 세상이 바뀌려는 조짐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면서부터 새로운 시대가 오려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핵무장으로 군사 전략 강화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았으나, 앞으로는 경제력 강화를 정책의 목표로 삼겠다면서 변화의 새로운 움이 돋아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기에는 그동안 쌓인 불신 때문에 많은 국민이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하고, 북한의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면서, 믿지 않겠다던 우리들의 생각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남북의 선수들이 단일팀을 구성해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년사의 진실성을 조금씩 믿어주었는데, 급기야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의 정상들이 서로를 껴안으면서 남북의 공동선언문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기에 이르자, 이제는 그들의 말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중간에 서 있으면서 온갖 요구를 늘어놓고,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일삼으면서 급기야 북한의 말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라고 여겼는데, 5·26남북 정상의 두 번째 만남으로 북한의 말을 믿어도 되는구나로 또 바뀌어 갔습니다.

남이 하는 말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는 말하는 사람의 성실성(誠)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맹자(孟子)가 말했습니다. “지극히 정성스러운데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없다(至誠而不動者 未之有也) 정성스럽지 않고서야 감동받을 사람이 없다(不誠未有能動者也:『孟子』)”라는 말에서 성실성, 정성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산은 『중용(中庸)』을 인용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신임을 얻으려면 도(道)가 있으니 벗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의 신음을 얻지 못하고, 벗들의 신임을 얻는데도 도(道)가 있으니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벗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 부모에게 순종하는데도 도가 있으니 제 몸을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순종할 수 없다. 제 몸을 성실히 하는 데에도 도가 있으니 선(善:착함)에 밝지 못하면 제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한다…”라고 말하여 착한 마음, 착한 행동으로 자신을 성실하게 처신할 수 있어야만 남들이 믿어주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북한도, 미국도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이 착한 마음, 착한 행동으로 남북의 무력 대결과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아 번영으로 가겠다는 성실성은 우리가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지극한 정성으로 미국으로 가고, 북한으로 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지극 정성이 일을 성사시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맹자도, 주자도, 다산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온갖 정성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모든 것을 ‘쇼’라고만 비꼬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한 번 더 사려 깊은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쇼’로 끝난다고 해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니 천명을 탓해야지 대통령을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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