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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메고 학교에 가는 주인집 딸, 그리고 아버지의 출현

<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김덕희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6.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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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머슴살이는 너무 힘이 들었다. 이제 갓 11살이 된 어린 나이의 키 작은 소년이 견디기엔 지나치게 가혹한 것들이었다. 특히 여름이 되면서 할 일들은 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유일한 낙은 하얀 쌀밥을 먹는 시간과 늦은 시간이나마 안방에 들어가 주인 식구들 눈치 보며 그 틈새에 끼여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사실 주인 몰래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주인들도 그런 나를 잡으러 오거나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많은 일을 시켰지만 그렇게 인정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매일 먹는 하얀 쌀밥을 먹지 못하게 될게 뻔했다. 이곳에 오기 전 배고팠던 시절이 떠올랐다. 하루에도 열댓번씩 굶주린 배를 잡고 방안을 뒹굴어야 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안돼! 절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야….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잠을 자기 위해 내가 사용하고 있던 광으로 들어가 바닥에 드러누우면 옆에선 누에들이 뽕잎을 먹는 소리가 사그락 사그락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사람도 누에나 토끼처럼 뽕잎이나 풀잎을 뜯어 먹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 집 딸들이 예쁜 운동화를 신고, 끈이 달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 부러웠다. 4학년 이후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학교가 떠올랐다.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도 떠올랐다.

난 그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순간, 지게를 메야 했다. 지게엔 낫, 삽, 톱 등의 연장들만 가득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지게를 메고, 학교 대신 들로 나갔다.

 

 

그들이 저만치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한번은 눈물이 왈칵 솟기도 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도 그들처럼 공부할 수 있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내가 처한 현실은 그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난 더 우울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밥 한끼를 얻어 먹으려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굶주림에 허덕였던 지난날의 기억들도 조금식 멀어져갔다. 그리고 어느날 내 생각에 조그마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머슴살이를 자청했지만 그게 해결되고 나니 내 미래가 떠올랐던 것이다. 생각의 궁극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뭔가 다른 걸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에서 보았던 색다른 세상도 그런 의식에 단단히 한 몫을 한 게 분명했다. 첩첩산중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접한 것이었기에 다른 세상은 나에게 더 큰 충격과 동경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에 왔으니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맞고 있는 셈이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도 사뭇 궁금해졌다. 하지만 잠시라도 집에 다녀올 틈이 없었다. 바쁜 일과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나셨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가을 어느날, 들에서 빨간고추를 따고 있을 때였다. 집주인 아저씨와 아버지가 함께 고추밭에 오신 것이었다. 난 갑작스런 아버지의 출현에 깜짝 놀랐다. 꿈이 아닐까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겁도 났다.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고 야단을 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나를 덥석 안으셨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중엔 울음소리까지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폭포수처럼 아버지의 옷깃을 적셨다.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응어리가 한꺼번에 풀어지는 듯 했다. 이제 11살의 소년은 너무 지쳐 있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내 등을 그저 하염없이 토닥이고 계실 뿐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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