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질주하는 불평등과 신분세습 차단할 장치 없는 게 한국의 딜레마”
“고속 질주하는 불평등과 신분세습 차단할 장치 없는 게 한국의 딜레마”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06.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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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1회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내수는 여전히 살아나지 않는다. 물가는 치솟고, 노동자 월급은 제자리다. 부동산 정책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20년간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시대가 돼버렸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까지 자연스럽게 회자될 정도다. 소득불평등과 사회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약효는 미지수다. 소득을 올리려면 경제민주화의 기초부터 단단히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 바탕 위에 ‘복지’라는 기둥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이 역대 최대로 급감한 반면 소득 상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역대 최대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분배지표가 2003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악이다.

통계청은 얼마 전 '1분기 가계동향'을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평균 소득(명목 소득)은 476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늘어났으며 지난 2014년 1분기 5.0% 이후 16분기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명목 소득은 2015년 3분기 이래 10분기 연속 0%대 증가율을 보였다가 지난해 3분기 2.1%, 4분기 3.1%로 소득 증가율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명목소득의 증가는 고소득층의 소득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최하위층의 소득은 도리어 감소했다.

소득 최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128만67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 줄었는데 이는 2003년 통계집계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특히 최하위층의 근로소득이 47만3000원으로 13.3%나 급감했다. 최하위층은 빈민과 가난한 노년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1015만1700원으로 9.3% 증가했다. 이 역시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특히 최상위층은 근로소득이 12.0%, 사업소득은 17.3%나 급증했다. 소득 분배가 역대 최악으로 치달은 것이다.

“한국의 불평등은 그동안 압축적이고 속도가 빠르게 진행돼 왔다. 폭발직전의 ‘압축불평등’이다. 이런 현실은 도처에서 체감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사생아인 ‘흙수저-금수저’가 새로운 신분제도가 됐다. 신분세습과 함께 자본세습 속도도 아주 빠르다. 한국의 딜레마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불평등과 신분세습을 차단할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정태인 소장이 지적하는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1994~1995년부터 시작된 양극화는 자본시장 개방과 외환위기, 한‧미 FTA 등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체제와 함께 반영구적 상태로 고착화됐다. 노동 소득도 악화일로다. 최저임금은 지난해에 비해 16.4% 인상됐지만, 따지고 보면 월 10만원 인상된 것에 불과하다. 작은 불씨로 거대한 고목을 태울 수는 없다. 밑바닥 경제가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정태인 소장은 “1990년대 초반 한국은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평등한 나라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난 2018년 현재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8% 고도성장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5%로 떨어졌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3% 이하로 더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이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먼저 1차 분배인 임금의 몫을 늘려야 한다.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임대료나 개인부채를 갚고 나면 실제로 늘어난 몫은 없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자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정태인 소장. 정 소장은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노무현 정부 초기 경제정책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에서 정태인 소장을 만났다. 심각해지는 불평등, 양극화, 소득분배 문제와 문재인 케어, 청년실업, 남북경협 문제 등에 대해 들어 본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속하게 바뀌면서 바쁘실 것 같다.

▲ 북한대학원에 갑자기 가고 싶어져서 공부중이다. 아무래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민간교류 등이 활성화 되면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요즘 언론에서도 북한관련 담론들이 부쩍 늘었고,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남북경제협력이나 민간교류, 중국과 러시아, 유라시아철도 등에 관심이 많아졌다. 정부도 그렇지만 경제단체나 우리 같은 사회경제연구소에서 좀 더 깊이 북방문제에 대한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

 

-연구소 이름 맨 앞에 붙은 ‘칼 폴라니’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

▲ 1886년 헝가리에서 출생한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물리학자이자 화학자, 철학자다. 서구의 전통적 경제사조에 반대한 헝가리 지식인이었다. 철도산업으로 부를 쌓은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행동지식인이면서 다방면의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 재학 중 급진적인 ‘갈릴레이 클럽’을 결성했다. 나중에 게오르크 루카치, 칼 만하임 등과 같은 사상가들과 교류했다. 서구의 시장체계를 분석한 책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고, 1914년에 헝가리 급진당을 창당해 당 비서를 맡았다. 월간지 ‘공존’(Coexistence)을 창간하는 등 언론활동도 했다.

 

- 연구소는 언제 설립됐나.

▲ 1964년에 작고한 폴라니는 2차 대전 후에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1947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6년간 교수로 지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노동운동가 일로나 두크즈네카의 공산주의 이력 때문에 미국 입국이 거부됐다. 부인은 캐나다 몬트리올 퀘벡에 머물렀다. ‘칼폴라니연구소’는 그의 딸이 세웠다. 지금 94세다. 60년이 넘은 본사 격인 연구소도 퀘벡에 있다. 한국연구소는 4년 전에 설립했고 최초의 아시아지부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국제학회를 열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 유럽지부가 한 곳 있다.

 

-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났다. 먼저 경제학자로서 ‘J노믹스’를 평가한다면.

▲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외환위기 전까지 8% 고도성장을 기록했던 나라다.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5%로 떨어졌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3% 이하로 더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나빠진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인데,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1차 분배, 즉 시장에서의 임금 몫이 늘어나야 한다. 최저임금을 16.4%까지 올렸지만, 소비로 연결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임대료 상승이나 개인 부채를 갚기 위해 쓸 뿐, 소비를 살릴 ‘군불’ 역할은 어렵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도 사실이 아니다. 분배악화도 하위 20% 고령층들에 해당하는 얘기다. 이들은 근로소득이 없다. 복지비중도 떨어진데다 분배도 악화됐다. 결국 복지문제다. 고령자에게 일을 시킬 수도 없다. 노인일자리가 있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 복지다.

 

- 어느 정권이든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렵다. 현 정부의 두 가지 핵심축인 ‘안보’와 ‘경제’, 어떻게 보는가.

▲ 처음에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문재인 정부가 ‘운이 참 좋다’고 봤다. 그런데 점점 ‘운도 기술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다. 일이 너무 잘 풀렸다. 또 주변국들의 정세변화에 따른 영향도 있었다. 꽉 막혔던 남북관계에 평창올림픽이 길을 열어주었다. 제가 2003년 대통령 비서관으로 있을 때만 해도 지지율 30%를 어떻게 달성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문 대통령은 70∼80%에 육박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문 대통령의 정치기조는 천운(天運)으로 닦은 것이다. 실제로는 별로 한 일이 없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물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13 지방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경제정책을 펴겠다고 했고, 대통령도 경제민주화팀을 꾸렸다. 향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중소기업 지원을 상당히 강조했는데, 지금까지 뚜렷한 정책은 없다. 물론 중소기업은 워낙 숫자가 많고 세부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클러스터’(Cluster, 산업단지)를 하겠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방향은 맞는데 네트워크가 없다. 중소기업의 임금인상도 중요한 사안이다. 대기업 임금을 뚝 잘라서 중소기업에게 던져줄 수는 없다. 중소기업 임금을 올리고 하청단가 협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산업정책으로서의 중소기업 정책도 나와야 한다.

 

- 산업경제 부문이 취약하다. 한국GM도 폐쇄절차에 들어갔다.

▲ GM은 이전부터 공장폐쇄를 하겠다고 전략상 발언을 했다. 노동자 문제와 기업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대기업 제조업체가 대상이다. 이것을 부드럽게 해결하려면 이직할 노동자들을 다른 산업 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사회복지비용 지출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거나 증설해야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방법은 두 가지다. 다른 산업으로의 이동과, 증세를 통해 실업보험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정부가 어느 쪽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2.8~2.9% 경제성장이 예측되고 있고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노동자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사회적 불만도 커질 것이다. 실업자도 증가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준비가 없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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