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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전라도닷컴> 세 할머니의 집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6.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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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갔어도 ‘그 아까운 솜씨’는 남아 있다. 박길님 할매의 손길과 세상을 뜬 할배의 손길이 여전히 이 채반에서 만나고 있다.

힘없는 존재들의 힘센 연대. 나 홀로가 아닌 항꾼에.

몽당빗지락 두 자루가 합해져 한몸을 이루었다. 할매의 손길이 빚어낸 이 세상 유일무이한 명품.

한번 내게 온 인연은 쉬이 내치지 않는다. 서로를 길들이며 함께 늙어왔다. 할매와 키. 허물어진 자리일랑 조각조각 덧대 가며 보듬어 왔으니 할매의 ‘사랑땜’엔 종료기한이 없다. 닳고 닳을지언정 아조 못씨게 되는 그 순간은 할매들한테 도통 오지 않는 시간이다.

 

▲ 서로를 길들이며 함께 늙어왔다. 심계순 할매의 키.
▲ 힘없는 존재들의 힘센 연대. 심계순 할매의 손길이 빚어낸 명품

 

모든 물건들이 제 명대로 사는 세상은 덜 버리는 세상이다. 자본이 부추기는 소비를 덜하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세상이다.

할매들한테 ‘버려 마땅한 것’은 없다. 낡고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깨어져도 한사코 꿰매고 잇고 보듬는 손길.

재활용의 정신에 투철한 할매들은 ‘쓸 만하지 않은 것’을 ‘쓸 만한 것’으로 만드는 달인들이다.

 

▲ 제 한몸 아낌없이 바쳐 모든 티끌을 쓸어내고, 그곳을 정(淨)히 지킨다. 박길님 할매의 일동지
▲ 낡은 수건은 걸레로 쓴다는 공식을 뛰어넘었다. 가상이 나달나달한 헌 수건에 다망다망 꽃송이를 오려붙여 만든 전화기 덮개. 이상노 할매의 작품이다.
▲ 거센 물살도, 질척질척 들러붙는 진흙같은 생의 무게도 헤치며 이 생애를 건너왔다. 심계순 할매의 이력(履歷)이 이 굳세고도 애잔한 신발에 담겼다.

 

그 유정한 손길 덕에 낡음은 누추하지 않고, 생긴 대로 당당하다.

그렇듯 당당하게 늙은 물건들이 암시랑토 않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 할매의 집.

노상 ‘곁’에 끼고 사는 것들에 쌓인 그 세월의 무늬가 그이들의 삶의 ‘결’이려니.

몇 번이고 꿰매 얽은 고무신. 거센 물살도, 질척질척 들러붙는 진흙 같은 생의 무게도 헤치고 이겨나온 발걸음. 작은 신에서 불굴(不屈)의 이력을 읽는다. 거인의 신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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