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노숙자 할아버지가 예수님 아닐까요?
엄마! 노숙자 할아버지가 예수님 아닐까요?
  • 유형선
  • 승인 2018.06.07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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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유형선 칼럼

큰 딸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자신의 침대 옆에 권정생 선생님의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권정생 글, 신혜원 그림, 산하, 2000)를 놓아두고 있습니다. 자신의 침대 옆에 쌓아 놓은 책은 이른바 베스트 컬렉션입니다. 큰 딸은 지금도 시시때때로 권정생 선생님의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를 자기 전에 읽는답니다.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큰 딸에게 사 주었답니다. 2012년 겨울, 당시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한 큰 딸에게 인터넷으로 구입해 주었답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2012년 여름부터 시작했던 직장 파업이 140일이 넘어 성탄절 며칠 앞두고 끝이 났습니다. 파업이 끝났으니 다시 정상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가장 먼저 딸들에게 책을 사 주었습니다. 꽤 여러 권을 샀는데, 이 책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권정생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파업 중에 우연히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그림책을 아내의 소개로 읽었는데 참으로 마음 깊이 감동했습니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그림책이지만 그 어떤 인문고전보다도 깊고도 그윽한 감동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명작을 쓰신 권정생 선생님이 지은 동화이니 당연히 훌륭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를 주문했을 겁니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다

큰 딸은 책 제목과 표지가 처음에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답니다. 재미있는 학습만화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하느님’ 또는 ‘예수님’ 같은 종교적 단어가 들어간 책은 어지간해서 집어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호기심에 문득 펼쳤다가 푹 빠져들었답니다. 큰 딸이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던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엄마를 따라 파주에서 서울로 나들이를 나가면 서울역 근처에서 마주치는 노숙자에게 큰 딸은 자신의 용돈을 남김없이 주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받은 1만원을 그대로 노숙자 옆 깡통에 넣었습니다.

“수민아! 용돈을 드리는 건 좋은데, 전부 드리지 말고 일부만 드리는 게 어떻겠니?”

라고 아내가 이야기를 해도

“엄마! 노숙자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예수님 같지 않나요?”

라며 마치 명탐정 코난이 사건을 추리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답니다. 이 모든 게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덕분입니다.

 

서울로 간 하느님과 예수님

▲ 권정생 선생

저는 최근에 우연히 권정생 선생님을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과 인문고전을 엮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작년 겨울에 어느 도서관에서 받았고, 지난 5월 아내와 함께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준비를 하면서 권정생 선생님의 생애와 작품들을 읽으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던 중에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동화책을 큰 딸이 인생 책으로 손꼽고 있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이 동화의 내용은 이 땅에 다시 오신 하느님과 예수님, 즉 성부와 성자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이나 아마겟돈처럼 무서운 이야기 아니라 오히려 기발한 상상력과 번뜩이는 해학이 끊이지 않는 마당놀이나 시트콤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늘나라에 사는 하느님이 땅 위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사는 모양새가 참으로 기가 찹니다. 이 천 년 전에 아들을 보내서 30년쯤 살다가 오게 했지만 세상은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갑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에게 다시한번 세상으로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해도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 때 당했던 십자가 고통을 생각하니 예수님은 식은땀이 납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그 때 일이 미안했기 때문에 십자가처럼 힘든 일은 다시 시키지 않을 테니 함께 내려가서 보통 사람처럼 살아 보자고 제안합니다. 보통 사람처럼 살자는 말에 예수님도 승낙하고 하느님과 함께 지상을 향해 출발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당초 이스라엘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결국 대한민국 어느 시골 수박밭에 떨어집니다. 하느님 엉덩이에 수박도 부서집니다. 배가 고픈 하느님과 예수님은 부서진 수박을 한껏 먹고는 수박밭 주인에게 들키기 전에 서둘러 도망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로 가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고추도 따고 밭도 메며 서울 가는 차비를 모읍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서울 변두리 철거지역에서 살면서 용하다는 점쟁이 집도 가보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교회에도 갑니다. 예수님은 어렵게 청소부 일자리를 구합니다. 몸이 아파도 병원비가 없어 그저 끙끙 참아가며 앓아눕기도 하고 철거 단속에 집이 부서지면서 강변에 천막을 치고 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과일장사를 하다가 단속반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지고 하느님이 면회를 갑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듣고도 분명 눈치채셨을 겁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 하며 무소부재하시기에 매번 승리하는 울트라 수퍼 파워를 가진 하느님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을 양식을 걱정하며 몸 누일 곳조차 변변치 않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하는 하느님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이런 동화를 쓰셨습니다.

 

불의가 가득 찬 천국 가느니 깨끗한 지옥에서 살자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는 1989년 7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새가정>이라는 기독교계 월간지에 연재했는데, 하느님을 욕되게 표현했다는 꾸지람을 독자들에게 여러 차례 들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이 작품은 예수님의 신성한 권위를 향한 도전으로 밖에 읽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은 이러한 비판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이현주 목사님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 옮깁니다.

“현주야, 우리 성서라는 책을 맹신하지 말자. 아닌 것은 아니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분명히 말하자꾸나. 우리는 그래서 비굴하지 말자. 하느님이란 권력 앞에 아첨하는 못난 인간이 되지 말자. 우리는 천국에 못 가도 영혼을 죽일 수는 없다. 불의가 가득 찬 천국 가느니보다 깨끗한 지옥에서 살자.”(<권정생의 삶과 문학> 원종찬, 창비, 319쪽)

권정생 선생님은 평생을 시골 작은 교회의 종치기로 살면서 주일학교 교사생활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만을 외치는 개신교의 입장과는 다르게 부처님과 민간신앙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수 믿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이른바 교회의 축복신앙이 도깨비 설화 같은 전통적인 한국 민담에서 보여주는 인과응보적 신앙관과 차이점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뿐이라고 개탄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신앙관과 교회관을 엿볼 수 있는 글 한 구절 옮깁니다.

“예수는 종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거지와 친구가 되자면 거지가 되어야 하고, 과부 사정은 동무 과부가 가장 잘 안다. 훌륭한 사람이란 바로 상대와 제일 가깝게 사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상대는 바로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있는 나의 이웃들이다. 그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에 군림하기 위해 앞서는 것이 행복이고 축복이라면 기독교는 빨리 망해 없어져야 한다. 아니다. 벌써 기독교는 망해버렸고 죽어버렸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허수아비 하느님이다. 지금 우리가 거대하게 지어 놓고 모이고 있는 교회는 망한 교회, 죽은 교회이다.”(<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녹색평론사, 52쪽)

지난 5월 17일로 권정생 선생님 소천하신 지 벌써 11주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말 그대로 가난과 질병으로 평생을 고통 받았습니다. 스무 살 무렵 결핵과 폐병으로 이미 온몸이 망가져 평생 오줌주머니를 달고 살았습니다. 평생을 토담집에서 살면서 작은 교회 종치기 생활을 하며 가난과 병마와 끊임없이 싸웠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끊임없이 창작하여 <강아지똥>, <몽실언니> 같은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받은 돈은 당연히 어린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며 성서에 나오는 ‘거지 나자로’와 같은 극빈한 삶을 마지막까지 고집했습니다. 현재 선생님이 남긴 재산은 유언에 따라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에서 관리하며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해 드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동화책도 좋고 <강아지똥> 같은 그림책도 좋습니다. <빌뱅이 언덕>이나 <우리들의 하느님>같은 산문집도 아주 좋습니다. 소천하신 후 민들레꽃이 되셨을 지 아니면 하늘의 별이 되셨을지 모를 권정생 선생님을 선생님이 남기신 책으로 꼭 만나 뵙길 권합니다. 선생님의 시 한 편 옮기면서 마치겠습니다.

가을하늘

아침나절
양지 쪽에 앉아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는데
저쪽 가장자리에
둥글넓적한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하느님이 똥 누고 계셨다

오늘 아침
늦잠 주무신 모양이다

(<빌뱅이 언덕>, 권정생, 창비, 338쪽)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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