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비채

어둠에 잠긴 비정한 도시, 차가운 말을 툭툭 내뱉는 무심한 탐정,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 자타공인 일본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 스타일리스트 하라 료! 그의 첫 등장을 알린 전설의 데뷔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가 전면 개정되어 새롭게 한국 독자들을 찾는다. “평소 나는 번역이라는 작업을 가옥에 비유해, 이십오 년이면 슬슬 보수를 시작하고 오십 년에는 크게 개축 혹은 신축하는 게 대체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해왔다”라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에 대한 조언처럼, 비채에서는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출간 십 년을 맞아, 구석구석 정성스레 보수하고 부분에 따라서는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새로운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완성했다. 원문의 ‘아우라’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번역문을 세심하게 다듬었고, 신작 장편소설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와 나란히 꽂을 수 있도록 시리즈의 일체감을 살린 세련된 표지로 소장 가치를 더욱 높였다.

도쿄 도심, 화려한 고층빌딩숲 외곽의 허름한 사무소.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가 홀로 의뢰인을 맞는다. 처음에는 두 명이서 시작한 사무소였지만, 전직 경찰이자 동업자인 와타나베는 대량의 마약을 폭력단으로부터 빼돌리고 현재는 도피중이다. 간간히 종이비행기로 접은 전단지에 몇 줄의 메모로 근황을 전해올 뿐. 오른손을 주머니에 감춘 낯선 사내는 어떤 르포라이터가 이 사무소를 찾은 적이 있냐고 물은 뒤 20만 엔의 현금을 남긴 채 사무소를 뒤로한다. 알 수 없는 의뢰인과 영문 모를 의뢰 내용에 당황하는 사와자키. 그런데 이내 유력 미술평론가의 변호사가 그 르포라이터의 행방을 알기 위해 역시 그를 찾아오고, 르포라이터의 실종은 당시 세상을 발칵 뒤엎어놓은 도쿄 도지사 저격사건과 맞닿아 있음이 밝혀지는데……. 얽히고설킨 복잡한 플롯, 수수께끼를 안은 매력적인 등장인물, 철저하게 계산된 대사, 현실감 있는 전개가 어우러진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고품격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탐정 사와자키의 활약상은 나오키상을 수상한 《내가 죽인 소녀》로 이어져, 이후 《안녕, 긴 잠이여》《천사들의 탐정》《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등으로 계속되며, 일본에서만 150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계란 완숙(Hard Boiled)을 뜻하는 ‘하드보일드’는 자연주의적인 혹은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태도로 마주한 채 불필요한 수식은 일체 걷어내고 신속하고도 거칠게 사실만을 쌓아올리는 문학적 스타일을 지칭한다.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등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에서도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의 광팬임을 자청하는 하라 료는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의 권말에 단편 <말로라는 사나이>를 수록하여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전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페르소나 ‘필립 말로’의 “남자는 터프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다”라는 대사를 직접 인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가 오마주 혹은 아류에서 머무르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라 료는 서양이 아닌 동양, 고전이 아닌 현재로 무대를 옮긴 채, 하드보일드의 단점으로 꼽히는 추리소설의 즐거움까지 배가하여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새로운 스타일을 성취해냈다. ‘하라 료를 만난 이후 다른 소설로는 만족을 모르게 되었다’는 평단의 극찬을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야마 아키라, 유즈키 유코, 노리즈키 긴타로 등 수많은 작가들이 경애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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