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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임경섭 지음/ 창비 이주리 기자ljuyu22@weeklyseoul.netl승인2018.06.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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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단의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온 임경섭 시인의 신작 시집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가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죄책감』(문학동네 2014)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에서 “세계를 향한 집요하고도 끈덕진 시선”으로 “삶 속에서 제 부재를 말하는 것들의 공간을 촘촘히 구축해”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묘한 현실주의”(송종원, 해설)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형식의 시세계를 선보인다. 서사를 이루지 못하고 점멸하는 메마른 현실을 응시하며 “아무것도 없는 곳, 그 시간과 공간에 다시 서사를 기입”함으로써 “이방의 드넓은 아름다움”(김혜순, 추천사)이 오롯이 펼쳐지는 시편들이 자못 산뜻하다.

시집을 펼치면 우선은 곳곳에 등장하는 외국 인명들이 낯설다. 시인은 통상적인 시적 화자인 ‘나’의 자리에 거의 모든 작품마다 의도적으로 낯선 이름을 집어넣는다. 게다가 시적 공간도 대개가 “너무나 먼 곳”(「페달이 돌아간다」)인 이방(異邦)이다. 그런데 시에서 관습적 이름에 가까운 ‘나’의 부재가 오히려 ‘나’와 관계를 맺는 세계의 존재감을 더욱 강화하면서, 화자와 관계를 맺는 모든 존재와 풍경들이 더욱 또렷하게 모호해지는 기묘한 현실감을 드러낸다. 이로써 시인은 이름과 내밀하게 결속하던 관계들이 새롭게 열리는 다른 차원의 현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페달이 돌아간다」)는 ‘먼 곳’의 세계로 나아간다.

시인은 ‘나’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나’로부터 멀리 달아난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멀어졌다가는 다시 돌아올 것들”(「원탁」)이기에 시인은 멀어진 삶을 억지로 당겨오지 않고 오히려 더 먼 것으로 만들어 그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삶의 실체를 뚜렷이 응시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달아날수록 갇히고 있다는 사실”(「침」)을 알기에 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아무도 없는 곳엔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다”(「풀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세상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듯, “하면 할수록 고민은 계속 과거가 되”고 “우리는 결국 현재를 벗어날 수 없”(「아파트먼트 도나트」)는 환(幻)의 세계일 듯싶다.

임경섭의 시는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느린 걸음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시인은 기존의 언어가 품고 있는 은유와 문장이 지니는 실효성을 찬찬히 의심하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포도는 건포도가 될 수 있지만/건포도는 포도가 될 수 없다”(「Mr. Vertigo」)는 시인의 말은 ‘삶은 언어화될 수 있지만, 언어는 곧 삶이 아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관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경계와 경계들이 놓여 있는/경계의 안쪽”(「라이프치히 동물원」)을 포착해내는 정밀한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계속 새로운 문턱을 넘는”(「바시코프스카의 일흔여섯번째 생일」)다. 시인은 지금, ‘이상한 현실주의’를 실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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