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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루고 사는 꽃대궐

<전라도닷컴> 세 할머니의 집-이상노 할매의 놀라운 갤러리①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6.1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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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그림처럼 날아다니는 듯 환상적인 꽃병은 식당의 ‘대비 종우’를 보고 그린 것. 꽃 먼저 그리고 이파리는 나중 그렸다. 배깥에 꽃 돌보듯이 방안에 꽃도 새록새록 정성을 보탠다.

봄꽃이 색색으로 흐드러진 마당을 지나 흰 종이꽃과 넝쿨을 오려붙인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뭐슬. 암것도 아녀. 우솨 우솨.”

할매는 그리 겸양하시는데 우습지 않다. 장엄한 그림집이다.

 

“자꼬자꼬 끼적거리다 보니 이러고 되아불었어”

방을, 부엌을, 목욕탕을, 온 집을 화폭으로 삼아버린 화가는 이상노(83) 할머니. 고창 성내 큰톳날서 시집을 왔다. 마을에서는 성내떡이라 불린다.

“스물 두 살에 왔어. 그때로는 노큰애기여. 중매여. 글 때는 연애 걸지도 몰르는 시상이여. 내가 못 배와서 울 아그들은 논 닷마지기 팔아서 갈쳤어.”

다섯 살 위 할아버지는 50년 넘게 해로하시다 먼저 가신 지 대여섯 해가 지났다.

“할아버지 가시고 내가 느닷없이 우울증이 걸려서 우두거니로 살았어. 어디가 아픈지도 몰르게 아퍼. 꼭 애기 서는 속마니로 밥도 순전 못 먹고.”

한 달 이상을 입원해 있다 퇴원을 했는데 종일 멍하니 넋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러고 있는디 서울 사는 딸들이, 우리 근숙이하고 근순이가 ‘그림 그린 것이 사람게다 좋다네’ 험서 크레용허고 그림 공책을 큰 놈으로 사다줘. 거그다 추미를 붙였어. 대처나. 아픈 디가 다 얼로 가불었어. 머슬 그리고 있으문 거그다만 정신을 다 쓴게 다른 생각은 한나도 떠오르들 안혀. 사람들이문 다 잘혔다고 혀. 딸들이 질로 좋아라고 허지. 이거이 다 재작년 시한부터 그린 것이여.”

여든 한 살 할매가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다.

“밤에도 열두 시까지 앙거서 그려.”

 

 

눈만 뜨면 그리고 있으니 스케치북은 금방 바닥났다.

“저 많헌 놈을 거그다 어치게 다 그리겄어. 달력을 뒤집어서 그려. 회관에 달력이 많애. 석유공장에서도 갖다 놓고 농협에서도 갖다 놓고. 안가지간 놈 내가 갖고와. 밤낮으로 막 문대고 있은게 크레용도 모지래. 시내 문방구점에서 사다 써. ‘어디다 쓰시요’ 물으문 거짓말을 허지. 늙은이가 그림 그린다 글문 웃지, 긍게 ‘우리 손지 사다줄라 그러요’ 그래. 색 모지랜 놈만 개래 갖고 사. 내가 빨간 색을 많이 쓰드만. 저런 꽃을 많썩 그린게.”

할매는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다.

“글자도 안 배왔지. 전에는 여자는 갈치들 안했어. 갈치문 시집가서 시집살이 사나문 편지질 헌다고. 그림을 어디서 배와. 기냥 끼적거려 본 것이지. 내가 조깨 배우고 그랬으문 더 낫게 그렸을 란가.”

“자꼬자꼬 끼적거리다 보니 이러고 되아불었네” 하는 이상노 할매의 그림집. 벽만 아니라 침대 머리판에도 싱크대 문에도 방문에도 신발장에도 목욕탕 타일벽에도 창고의 선반 아래벽에도 어디 하나빈틈이 없이 그림들로 빼곡하다.

 

▲ 순정하고 또한 장엄하다. 방을, 부엌을, 목욕탕을, 온 집을 입체적인 화폭으로 삼아버린 통큰 화가 이상노. 어느 한 자리 빈 곳 없이 그림으로 빼곡한 놀라운 갤러리.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아니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다채롭고 대담하게 쓴 색채와 구성이 강렬하다. 섬세한 세부 묘사는 들여다볼수록 아름답다.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천진하고 소박하고 순정한 그림에 무장해제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뭇 경이롭고 경건해질 정도다.

가만 보면 벽 위에 그냥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서 가위로 오린 것을 투명테이프로 붙인 것이다.

“눈 뜨문 그리고자퍼. 한정없이 그려놓고 저 놈을 띠어불고 요 놈을 붙일끄나 그 궁리를 허고 살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입체적인 화폭을 있는 대로 다 사용하고도 모자라 오래된 살림의 구석구석까지 할매의 예술혼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이러저러 손때 묻은 세간 살림과 흔연스러운 조화가 빛나는 것이 이상노 작품세계의 미덕이다.

 

만화방창 꽃대궐에 온갖 새 날아드는

“어디 가서 뭐슬 보문 ‘저 놈 그렸으문 좋겄다’ 그 생각이 들어가. 약을 지으러 가서 지달리고 있는디 요만헌 상지에 저 나무가 그려져 갖고 있어서 그려봤어. 저 꽃은 쟁반에다 뭐슬 갖다 먹음서 본게 있어. ‘참 이쁘네 요놈 그리문 쓰겄네’ 허고 그렸지. 요 감은 봉감 상지 보고 내가 보태서 내 자유로 그린 거여. 대봉감이라 커. 한나 다 묵으문 새가 배불르게 커.”

샤갈의 그림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듯 환상적인 꽃병은 식당의 ‘대비 종우’를 보고 그린 것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렸어. 보문 머릿속에 박아져. 거그다가 내 자유로 꽃송이를 많이 너갖고 그렸어.”

 

▲ 어느 한 마리도 같지 않다. 저마다의 날개옷을 입은 새들. “이 새는 딸기 찍어묵으라고, 이 새는 감 찍어묵으라고.” ‘그림의 새’ 앞에 먹을 것을 내어 대접하는 그 맘이 다정하다.

 

꽃을 좋아하는 할매.

“모랑모랑 크는 것을 딜다보문 찌긋찌긋 헌 것이 없어져불어. 이삐게 키울라문 손 놔둘 새가 없어. 심어서 내둬불문 지대로 안커.”

한번은 동네 아주머니가 꽃을 한 송이 갖다 주었다.

“성내떡은 꽃 좋아헌게 이 놈 보고 기리라고. 글서 눈앞에다 놓고 그렸제.”

그 꽃 한 송이는 폴세 시들었지만 지금 할매의 방 벽에 송이송이 지지 않을 꽃으로 남았다.

“꽃 모냐 붙여 놓고, 넝쿨 뻗는 것은 난중에 그려서 붙였어. 아, 꽃만 있느니 넝쿨이 있어야 쓰겄구나 의견이 들었지.”

마당의 꽃을 돌보듯이 방안의 그림꽃에도 새록새록 정성을 보탠다. 사철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 할매의 그림집.

 

▲ 이러저러 손때 묻은 세간 살림과 더불어 흔연스러운 조화가 빛나는 것이 이상노 작품세계의 미덕이다.

 

“이 넝쿨은 이리 가고 이 넝쿨은 저리 가고 물 주고 키우는 것 같지. 사람들이 놀러오문 그려. 꽃 좋아헌께 방에도 꽃, 배깥에도 꽃이라고.”

울긋불긋 꽃대궐을 스스로 이루고 사는 할매. 할매가 그린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활짝 핀 꽃송이 안에 씨방이 보석같이 들어 있다.

“그것이 있은게 봄마다 새로 와서 활짝 피어나지. 꽃 보고 내가 말혀. 사람은 한번 가문 다시 못오는디 너그들은 죽었다가도 새로 와서 새로 피는구나 글케 말이 나와.”

지지 않는 꽃들 사이로 새가 날아든다. 어느 한 마리도 같지 않다. 저마다의 날개옷을 입은 새들이다.

“이 새는 딸기 찍어묵으라고, 이 새는 감 찍어묵으라고.”

‘그림의 새’ 앞에 먹을 것을 내어 대접하는 그 맘이 다정하다.

날개가 우아한 한 쌍의 새는 장롱 문을 보고 그린 것이다.

“요 앞집이서 집을 지슴서 농을 뿌스가. 본게 농짝 문에 요 새가 있어. 글서 ‘아저씨 나 요 웃고닥(위판)만 뜯어줄 수 없소. 내가 조깨 쓸라고 그러요’ 그래갖고 그 놈을 갖다놓고 요 새를 그렸어.”

원앙새는 폐백 상자에 마주한 것을 보고 그렸고, 오리 한 쌍은 이불 한복판에 노니는 것을 보고 그렸다.

“한나는 외로와. 둘이 마주봐야제. 요 사슴은 이불 가운데 똥그럼허니 한 쌍이 섰는 것을 보고 그린 것이여.”

시방 입을 맞추려 다가서는 중인 사슴의 눈썹은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다. 달력 종이에 엎드려 그 눈썹 한 올 한 올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할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장롱에서, 폐백 상자에서, 이불에서 쌍쌍이 노닐던 동물들은 ‘이상노식’으로 재해석되어 더욱 화사하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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